부정·조작 점철 … 일본 자동차업계 민낯

2024-01-15 13:15:48 게재

다이하츠 품질인증 부정사건 여진 지속 … "수익우선, 단기개발 성과에 집착한 결과"

지난해 12월 20일 일본 도쿄, 오쿠다이라 소이치로 다이하츠자동차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고객에게 커다란 심려를 끼치고, 신뢰를 저버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회사의 실질적 지배회사인 도요타자동차 도요다 아키오 회장도 이틀 후 태국에서 회견을 갖고 "일본 자동차회사의 대표로서 사과한다"고 말했다.

다이하츠자동차 품질인증 부정사건의 여파가 지속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25일부터 일본내 4곳의 공장 가동과 출하를 전면 금지했다. 언론과 부정사건 조사위원회 등은 이번 사태가 일본 자동차산업과 제조업계 전반에 확산된 상명하복의 조직풍토에서 '수익우선'과 '단기개발'의 성과에 집착한 것이 근본적 문제였다고 분석했다.


다이하츠, 64개 차종 174개 부정 발각

품질인증을 둘러싼 부정의혹을 조사하기 위한 제3자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0일 보고서를 통해 "부정행위의 시작이 1989년부터 시작됐고, 2011년 이후 더 심각해졌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보고서는 부정의 원인으로 "수익우선에 따른 '단기개발'이라는 기업내 고질적인 문제가 장기간 이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다이하츠는 2011년 판매를 시작한 경자동차 '미라이스' 신화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당시 미라이스는 기존 자동차 대비 연비를 40% 향상시켜 리터당 30㎞를 갈수 있는 획기적인 상품이었다. 가격도 다른 경차에 비해 80만엔(약 720만원) 가량 쌌다. 판매를 시작한 지 불과 1개월 만에 목표의 4배인 4만대를 판매했고, 같은 해 다이하츠가 최고 영업이익을 내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아사히신문은 "일반적으로 가솔린 자동차는 3만개가 넘는 부품이 필요하고, 신차를 개발하는 데 최소 3~4년이 걸린다는 게 자동차업계의 상식"이라며 "다이하츠는 당시 1년 6개월 만에 신차를 개발하는 성과를 냈다"고 했다. 하지만 사내 고위직과 중하위직 직원, 연구직 등 다양한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의 내용은 가혹한 개발스케줄과 최고경영진의 압박이 작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 관리직 사원은 "자동차를 가볍게 해서 연비를 향상시키기 위해 '3도어'를 계획했지만, 경영진의 압력으로 소비자가 선호하는 '5도어'로 계획을 변경했다"며 "하지만 계획의 변경에도 불구하고 시간표는 이미 정해져 있어 개발기간을 1년 6개월로 맞춰 신차를 내놨다"고 증언했다. 다이하츠 내부에서는 이러한 개발일정을 '선표(線表)'라고 불렀고, 최고경영진으로부터 "개발 일정이 늦춰지는 일은 절대 안된다"는 강한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인증인력 70% 줄이고 "무조건 합격시켜라"

또 다른 관리직 사원도 "상식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개발기간이 주어지면 영업부서 등에서 일하는 직원도 대강당에 모여 죽도록 개발에 나섰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초단기간에 가능했기 때문에 무리한 일정을 밀어붙이는 문화가 회사 내부에 정착되는 계기가 됐다"고 증언했다.

보고서는 당시 미라이스 성공 경험으로 인해 "더욱 단기간 개발이 요구됐다"고 평가했다. 경차는 품질과 적정한 가격, 이른바 가성비가 생명이다. 값싸게 팔아도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비용을 줄이거나 많이 팔아야 한다. 미라이스는 그러한 전형을 보여줬고, 다이하츠는 더욱 '빨리빨리'에 매달렸다. 특히 2011년 혼다자동차가 경차 'N-BOX'를 출시하면서 경쟁은 더욱 격화됐다. 일본 경차시장에서 선두권을 달리던 다이하츠와 스즈키에 혼다가 가세하는 형국이 됐다. 다이하츠는 2014년 단기개발을 통해 새로운 경차 6개 차종을 한번에 내놨다. 이 과정에서 다이하츠의 품질 부정은 급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개발일정(선표)이 고정돼 있기 때문에 앞의 공정이 시간을 잡아 먹으면 뒤의 공정은 그만큼 시간을 잃게 된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도달한 지점은 결국 부정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최종 공정인 품질인증 부문에서 대부분의 부정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내부 분위기와 일처리에 대해 제3자위원회 보고서는 '인증시험에서 절대적으로 합격해야 한다는 압력'이라고 표현했다.

비용절감을 위한 인원감축도 이뤄졌다. 2014년 충돌시험 등을 담당하는 담당부서 인원은 가장 많았던 2010년 대비 60%나 줄었다. 2022년에는 70% 가까운 인원이 줄었다. 인증신청을 담당하는 '법규인증실' 인원도 2009년부터 2015년에 걸쳐 60% 줄었다.

개발이나 인증의 현장 부담이 늘어나는 한편에서는 만성적인 인원부족에도 불구하고 '할 수 없다는 말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확산했다. 충돌시험 데이터 조작 등 인증시험의 부정은 2014년 이후 급증했다. 도요타그룹의 히노자동차에서 2022년 3월 대규모 연비 부정사건이 발각된 이후 인증절차의 점검과 강화를 요구받았지만 다이하츠는 "문제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도요타 책임론과 만연한 자동차업계 부정

다이하츠는 1938년 오사카부 이케다시에 있는 과수원에 공장을 세워 출발한, 창업 90년 가까운 자동차기업이다. 2022년 연간 생산대수는 170만대 수준으로 일본 8개 완성차업체 가운데 5위에 해당한다. 도요타가 100% 지분을 가진 완전 자회사다.

일본 안에서는 이번 사태와 관련 도요타 책임론이 강하다. 하지만 지난해 말 사과 기자회견에서 도요타 책임론은 크게 거론되지 않았다. 당시 회견에서 가이아미 마코토 제3자위원회 위원장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다이하츠 경영간부"라며 "도요타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부정사건으로 인정된 1989년 이후 다이하츠 역대 회장과 사장 12명 가운데 도요타 출신이 8명이나 될 정도로 압도적이다. 다이하츠 한 사원은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도요타에서 온 사람이 지금의 다이하츠를 만들었다"며 "왜 다이하츠만 부정의 주어로 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도요타는 2007년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고 생산대수에서 처음 세계 1위에 올라선 이후 2010년대 들어 그룹차원에서 '연간 1000만대 생산 목표'를 돌파하자는 말이 나왔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다이하츠는 적절했다. 다이하츠 전직 간부는 "도요타에 비해 인건비를 포함해 비용이 적게 들었다"며 "2013년 이후 도요타로부터 주문자생산방식(OEM)도 늘었다"고 했다. 경차와 소형차에 강점이 있는 다이하츠는 동남아 등 신흥국 시장을 중심으로 도요타의 원군이 됐다.

도요다 아키오 회장은 지난해 4월 다이하츠 부정이 처음 사회문제화 됐을 때 회견을 갖고 "다이하츠뿐만 아니라 도요타를 포함한 문제"라고 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랬던 아키오 회장이 사과 기자회견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에 대해 사내에서는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자동차업계에서는 그동안 각종 부정사건이 거의 해마다 발각돼 논란이 됐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2022년 8월 발표된 히노자동차 특별조사위 보고서에서는 "몸에 맞지 않는 사업전략이 추진돼 개발일정이 절대시되면서 부정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며 "단기간 무리한 개발을 요구받고도 '할 수 없다는 말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직의 풍토가 됐다"고 했다. 이번 다이하츠 제3자위원회의 보고서와 거의 비슷한 내용이다.

2016년 발각된 미쓰비시자동차 연비시험 데이터 부정 조작문제도 이러한 관행과 비슷하다. 당시 특별조사위 보고서에 따르면 경합하는 타회사의 저연비 신차정보를 얻을 때마다 개발중인 상품의 연비목표가 반복적으로 올라가는 것이 부정을 낳았다. 보고서는 "상사로부터 검토를 지시받은 사항에 대해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풍토가 됐다"고 했다.

와세다대학 대학원 오사나이 아츠시 교수는 "현장에 한번 무리하게 일을 시키고, 그게 가능하면 '어느정도 무리는 효과적'이라는 해석을 해버리는 경영의 문제는 특정 제조업계를 가리지 않는다"며 "상명하복 풍토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관행은 자동차업계에만 그치지 않는다"고 했다. 미쓰비시전기의 품질부정 보고서에서도 "사내에서 목소리를 높여도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말하면 손해라는 문화가 있다"고 발표했다.

한편 다이하츠자동차는 올해 1월 말까지 국내 생산이 정지된 상태다. 언제 생산이 재개될 지 시기는 아직 불투명하다. 약 8000개에 이르는 다이하츠의 하청 및 협력업체는 불안한 상황을 안고 새해를 맞았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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