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주변국 공습, 미국 향한 메시지

2024-01-18 10:32:25 게재

이라크·시리아 이어 파키스탄 폭격 … 주변국 반발에 무력충돌 가능성도

미국이 이스라엘을 앞세워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물론이고 예멘의 후티 반군,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 친이란 세력에 대한 공습을 강화하자 이란은 대 테러를 명분으로 이라크 시리아 파키스탄까지 공습해 긴장이 격화하고 있다. 이란과 미국이 직접 맞붙는 양상은 아니지만 주변국들까지 공습의 불똥이 튀면서 무력충돌이 벌어질 수 있는 개연성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이 17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회의에서 한 세션에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란의 정예군사조직인 혁명수비대(IRGC)는 15일(현지시간)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 지역 에르빌을 미사일로 공격한데 이어 16일에는 파키스탄에 미사일과 드론(무인기) 공격을 퍼부었다. 이라크를 공격하기 전날인 14일에는 시리아 이들리브주에 대한 공습도 감행했다.

이란은 각각의 공습에 대한 명분도 달리 제시하고 있다. 시리아에서는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을 지목했고, 이라크에서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첩보시설을 목표로 삼았다고 밝혔다. 또 파키스탄에서는 이란의 수니파 분리주의 무장조직 '자이시 알아들' 근거지를 공격했다고 전했다. 이란의 잇따른 공습은 이 달초 벌어졌던 이란의 국민영웅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 4주기 폭탄테러로 10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한 것에 대한 보복 성격이 짙다.

폭발사고 후 IS가 자신들 소행이라고 밝혔지만 이란은 IS 배후에 이스라엘과 미국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공습을 받은 주변국들은 강경한 반응이다. 파키스탄은 이란 공습으로 어린이 2명이 숨지고 3명의 여자아이가 다쳤다며 "주권침해는 결코 용납할 수 없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파키스탄은 17일 수도 이슬라바마드 주재 이란 외교관을 소환해 강력 항의했다.

이라크 역시 이란의 군사작전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이란이 폭격한 지역이 민간인 거주지역이었다고 밝혔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이라크의 쿠르드 자치지역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 모사드의 활동에 대해 이라크와 정보를 공유했었다"고 말했고, 파키스탄 공습에 대해서도 반이란 수니파 분리주의 무장조직에 대한 이란 혁명수비대의 공습이었다고 해명했다.

아미르압돌라히안 장관은 "이란 테러단체인 자이시 알아들이 표적이었다. 우호적인 형제의 나라 파키스탄의 국민 중 누구도 이란 미사일과 무인기(드론)의 표적이 아니었다"고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파키스탄 관리들과 수 차례 논의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교적 우호관계에 있던 3국을 완전히 등을 돌리게 할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신 친이란 세력을 위협하는 미국과 이스라엘 등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밝혔다. 모하마드 레자 아쉬티아니 이란 국방장관은 일련의 미사일 공격 후 "우리는 국익과 국민을 수호하는 데 아무런 제한이 없다고 생각하며 이를 확실히 권위있게 수행할 것"이라며 "위협이 어디에서 오든 우리는 대응할 것이며 대응은 반드시 비례적이고 단호하며 강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미르압돌라히안 장관 역시 "가자지구 전쟁이 즉각 중단돼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모두가 다칠 수 있다"며 "전쟁이 멈춘다면 이스라엘을 겨냥한 '저항의 축'의 공격도 멈출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이란의 이 같은 주변국 공습이 미국과 이스라엘과 직접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압박을 가하는 방법으로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6일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마스로르 바르자니 쿠르드 자치정부 총리를 만나 이라크에 대한 이란의 무모한 탄도미사일 공격을 강력히 규탄했다.

카트린 콜로나 전 프랑스 외무장관도 "그들(이란)이 역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며 "이를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분석가인 테헤란 대학교 모하마드 마란디 교수는 러시아 언론 스푸트니크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인들은 장거리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통해 이스라엘과 미국 정권은 물론이고 그들의 대리인 모두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무력충돌이 100일 만에 레바논, 예멘, 시리아, 이라크, 파키스탄 등 5개국까지 옮겨붙은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을 한 축으로 하는 세력과 무장정파를 지원하는 이란이 물러서지 않고 유혈 대리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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