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군 수송기 격추' 진실공방

2024-01-25 10:34:04 게재

러 "우크라 테러행위, 74명 전원사망" … 젤렌스키 "우리 통제범위 아냐"

우크라이나 포로들이 타고 있던 러시아 군 수송기가 격추돼 전원 사망한 사건을 놓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공방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권의 테러 공격이라고 비난했지만, 우크라이나는 통제범위 밖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국제조사를 촉구했다.
러시아 국방부에 따르면 포로교환을 위해 벨고로드 지역으로 이동 중이던 우크라이나 전쟁 포로 65명과 승무원 6명, 동행자 3명을 태운 러시아 일류신IL-76 공수기가 모스크바 시간으로 24일 오전 11시경 야블로노보 마을 인근에 추락했다. 타스=연합뉴스


러시아 국방부는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접경지인 벨고로드에서 일류신(IL)-76 군 수송기가 추락해 우크라이나 병사 65명과 러시아인 승무원 6명, 호송 요원 3명 등 74명 전원 사망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포로교환을 위해 이송 중이던 수송기가 우크라이나의 테러 공격으로 격추됐다고 주장한 뒤 러시아 항공우주군 레이더에 우크라이나가 쏜 미사일 2기가 탐지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는 포로들이 이날 오후 콜로틸롭카 국경 검문소에서 러시아 포로들과 교환될 예정이었다면서 "우크라이나 지도부도 이날 자국 포로들이 교환을 위해 이송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러시아 외무부도 "우크라이나 정권이 또 다른 테러 행위를 저질렀다"며 "비행기에 대한 공격은 고의적이고 의식적인 행동이었다"고 비난했다.

안드레이 카르타폴로프 하원(국가두마) 국방위원장은 수송기가 우크라이나군 패트리엇 또는 IRIS-T 대공 미사일 3발에 격추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포로 192명씩을 교환할 예정이었으나 이 사고로 중단됐다면서 "우크라이나가 포로 교환을 방해하고 러시아를 비난하기 위해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정치권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우크라이나를 테러 국가로 지정하는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권력과 돈을 지키기 위해 자국 군인과 포로를 쉽게 죽인 것"이라고 비난했다.

사고 발생 후 침묵하던 우크라이나군은 약 8시간 만에 발표한 성명에서 "오늘 포로 교환이 예정돼 있었던 것은 맞다"라면서도 "추락한 러시아군의 IL-76 수송기에 무엇이 실려 있었는지와 관련해서는 신뢰할 만한 정보가 없다"고 밝혔다. 사고 초반에는 하르키우 폭격을 위한 S-300 미사일을 운반하던 러시아 수송기를 격추한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우리는 지난번 포로 교환 때와 달리 벨고로드 주변 지역의 항공 안전을 보장해 달라는 요청을 받지 못했다"며 "우크라이나 상황을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해 러시아의 계획된 행동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인 사격 가능성을 열어 둔 설명이다.

그러나 이날 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텔레그램에 올린 메시지를 통해 "이번 비행기 추락 사고는 우리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러시아 영토에서 발생했다"며 "이런 것들을 포함, 모든 사실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 포로들의 인명, 그리고 가족들과 우리 사회의 감정을 갖고 장난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사고 책임을 러시아에 돌린 것이다.

우스템 우메로프 국방장관, 발레리 잘루즈니 군 총사령관 등과 긴급 회의를 가졌다고 밝힌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제는 팩트가 핵심이다. 우크라이나군 정보국(GUR)이 진상을 파악하고 있으며, 외무장관에게도 관련 데이터를 동맹국에 전달하라고 지시했다"면서 "우리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국제적인 조사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은 IL-76 수송기 추락 사고를 언급하지 않은 또 다른 성명에서 벨고로드 지역의 러시아 군사 시설을 겨냥한 조치를 지속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의회 드미트로 루비네츠 인권위원장은 페이스북에 게시글을 통해 "각 매체와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말고 공식 출처만 신뢰해달라"며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퍼뜨려서는 안 된다"라고 당부했다.

우크라이나의 이런 반응에 대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유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 소집을 요청했으며 국제사회가 러시아 주장을 믿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AP통신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정보를 엄격하게 통제하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전제를 하면서도 우크라이나가 국경 근처에서 미사일을 운반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군 수송기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례로 지난해 5월 러시아는 하루 만에 자국 영공에서 전투기 2대와 헬리콥터 2대를 잃었는데 키예프 관리들은 처음에는 부인했지만 나중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사용한 항공기 공격을 시인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또 러시아 언론 RT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구금된 자국 포로를 표적으로 삼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며 2022년 8월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옐레노프가의 수용시설에 대한 미사일 공격으로 50명이 사망하고 73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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