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사모펀드들, 보험업계에 거액 베팅

2024-01-29 11:16:48 게재

아폴로·KKR·블랙스톤 등 … 이코노미스트지 "보험업계 활력 넣지만 금융리스크 부작용"

월가 대형 사모펀드들이 전례 없는 규모로 보험사를 사들이거나 보험사와 제휴하고 있다. 보험사들의 사업모델이 변하면서 금융안정성에 리스크를 제기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 따르면 현재까지 사모펀드의 관심은 미국 생명보험사가 제공하는 1조1000억달러 규모의 고정연금시장이다. 하지만 모간스탠리는 "사모펀드들이 결국 전세계 30조달러에 달하는 보험자산을 겨냥할 것"으로 예상한다.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아폴로가 선두에 있다. 아폴로는 2009년 버뮤다에 본사를 둔 신생 재보험회사인 '아테네'에 투자했다. 2022년 아폴로는 아테네와 합병해 미국의 다른 어떤 보험사보다 많은 고정연금을 판매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현재 아폴로는 3000억달러 이상의 보험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2023년 1~3분기 이 회사의 '스프레드 관련 수익'(보험계약자의 보험료를 투자해 벌어들인 수익)은 24억달러로 회사 전체수익의 2/3에 육박했다.

다른 사모펀드도 마찬가지다. KKR은 이번달 보험사 '글로벌 애틀랜틱' 인수를 완료했다. 블랙스톤의 경우 지분 인수를 선호한다. 블랙스톤은 1780억달러 규모의 보험자산을 관리하며 막대한 수수료를 얻고 있다. 브룩필드와 칼라일은 버뮤다에 기반을 둔 대형 재보험사에 투자했다. 텍사스퍼시픽그룹(TPG)은 보험사와 파트너십을 논의중이다. 소규모 사모펀드들도 참여하고 있다. 사모펀드가 소유한 생명보험사 자산은 약 8000억달러에 달한다. 반대 경우도 있다. 지난해 11월 캐나다 보험사 매뉴라이프는 사모신용 투자사인 CQS를 인수하는 계약을 발표했다.

이러한 제휴를 윈윈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경제선진국들에선 은퇴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기업이 퇴직자의 소득을 보장하는 확정급여형 연금은 수십년 동안 쇠퇴하고 있다. 생명보험사들이 사모펀드업계의 등장을 반기는 이유다. 생명보험사들은 매각 또는 재보험 거래를 통해 대차대조표를 늘려 주주들이 선호하는 자사주매입 등에 나설 수 있다. 동시에 사모시장 기업들은 막대한 자산을 확보하고 이를 관리하면서 안정적인 수수료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보험계약자와 재무안정성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보험산업은 주로 주정부 규제를 받는다. 보험사가 보유해야 하는 자본금 등 중요한 기준은 주 규제기관인 전미보험감독관협회(NAIC)에서 정한다. NAIC는 2022년 사모대출 투자, 역외재보험 거래 등 사모펀드 소유 생명보험사에 대한 13가지 규제 고려사항을 조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른 기관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2월 자본기준에 대한 일관된 규칙을 채택해 규제 차익거래 기회를 없애고 보험업계의 시스템 리스크를 주시해야 한다고 미의회에 촉구했다. 연방준비제도(연준) 연구원들은 생명보험사와 사모펀드의 제휴로 보험업계가 충격에 더 취약해졌다고 지적했다. 연준 연구원들은 보험사의 대출 활동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은행과 견주기도 했다.

은행예금과 달리 연금은 보험계약자가 빠르고 저렴하게 인출할 수 없다. 중도인출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가 크기에 생명보험사에 대한 대규모 인출사태 가능성은 낮다. 이 때문에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유동성이 낮고 수익률이 높은 보험사 자산을 매입하려 한다. 따라서 이들은 보험사 포트폴리오를 미국 채권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채와 회사채에서 벗어나 대출 풀에 기반한 '구조화(structured)' 신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정부 지원 부동산채권을 제외하면 미국 구조화 신용 시장은 총 3조달러에 달한다. 부동산 대출채권과 기업 대출채권 등을 담보로 발행하는 자산담보부증권(CLO)이 대부분이다. 이같은 유동화 논리는 간단하다. 위험대출 간 채무불이행 상관관계가 낮다면 투자등급 신용상품을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NAIC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사모펀드 소유 보험사의 대차대조표상 채권 중 약 29%가 구조화증권이다. 보험업계 평균인 11%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러한 자산은 시장패닉 상황에서 매각하기 힘들 뿐 아니라 가치평가도 어렵다. 신용평가기관 피치가 명확한 시장가치가 없는 부실자산에 적용되는 '레벨3' 회계로 분석한 결과 사모펀드가 소유한 10개 보험사의 평균 레벨3 자산은 전체 자산의 19%로 전체 보험사보다 약 4배 높았다.

1892년 미국 캔자스에서 설립된 생명보험사 '시큐리티 베네핏'은 2017년 사모펀드 '엘드리지 인더스트리'에 인수됐다. 지난해 9월 시큐리티 베네핏이 보유한 460억달러의 금융자산 중 약 60%가 '레벨3' 자산으로 평가됐다. S&P글로벌에 따르면 이 회사의 260억달러 규모의 채권 포트폴리오 중 유동성이 높고 안정적인 미국채는 1100만달러에 불과했다.

대형 사모펀드들은 구조화증권을 매입하는 동시에 직접 발행하고 있다. 아폴로 자회사 아테네의 투자자산 절반은 아폴로가 만든 구조화증권이다. KKR은 글로벌 애틀랜틱과의 제휴를 통해 2020년 이후 구조화신용 운용규모를 7배 늘렸다. 시큐리티 베네핏은 엘드리지 소유 자산운용사인 파나그램이 만든 여러 CLO를 매입했다. 시큐리티가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채권은 9억1600만달러의 위험대출에 기반한 CLO다. 은행자본 건전화 방안인 '바젤 III' 개혁안이 도입돼 은행이 구조화신용 시장에서 속속 발을 뺄 경우 사모펀드의 활동 비중이 더욱 커질 수 있다.

문제는 금융부실이 생길 경우 이러한 부채가 어떻게 작동할지다. 신용등급 강등은 자본비용 증가를 의미한다. 눈에 띄는 채무불이행이 발생하면 보험계약자의 보험금인출이 쇄도할 수 있다. 금융시장은 올해 기준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있지만 많은 변동금리 대출자, 특히 상업용부동산 담보 대출자들은 여전히 고금리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구조화신용 시장은 금융위기 이전보다 단순해졌다. 다른 구조화증권으로 뒷받침되는 구조화증권은 이제 과거사가 됐다. 또 보험사는 일반적으로 구조화증권 중 투자등급 트랜치를 매입하기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하지만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분석가 크레이그 시젠탈러는 "투자자들이 적절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견뎌내기 전까지는 이러한 접근방식에 대해 확고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규제가 못 따라가는 경우도 있다. 현행규정에 따르면 보험사가 CLO의 기초자산을 매입한 경우보다 CLO의 모든 트랜치를 매입한 후 보유해야 하는 자본이 더 적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복잡하고 비유동적인 CLO 상품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보험업계 전반적으로 역외재보험이 확산되면서 투자 리스크 평가가 더 어려워졌다는 지적이다.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2022년 말까지 약 8000억달러에 달하는 역외재보험 계약이 체결됐다. 역외재보험은 한 보험사가 해외에 기반을 둔 다른 보험사 또는 자사가 소유한 종속보험사(captive insurer)에 위험을 이전하는 계약이다. 자본요건이 느슨한 버뮤다는 이러한 거래가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지역으로 사모펀드와 관련된 보험사가 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생명보험사가 사모펀드 지원 재보험사와 제휴한 대규모 재보험 거래가 여러 건 있었다. 2023년 5월 생명보험사 '링컨 내셔널'은 칼라일의 지원을 받는 버뮤다의 재보험사 '포티튜드 리'와 280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발표했다. 같은 달 또 다른 대형 보험사인 메트라이프는 KKR의 글로벌 애틀랜틱과 190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9월에는 또 다른 대형 사모펀드인 워버그 핀커스가 보험사인 프루덴셜의 지원을 받아 버뮤다에서 자체적으로 역외재보험 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대형 생명보험사 '노스웨스턴 뮤추얼'은 NAIC에 보낸 서한에서 "역외재보험 거래가 투명성을 떨어뜨리고 업계의 자본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규제당국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영국 규제당국은 역외재보험을 제한할 수 있는 새로운 규칙을 제안했다. 아폴로 사장 마크 로완도 "보험사의 역외재보험은 우려사항"이라고 인정하면서 "버뮤다가 관련 규제를 강화하면서 일부 회사가 규제 차익거래를 위해 케이맨제도로 이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규제당국이 가장 우려하는 사례는 버뮤다가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발생했다. 영국 사모펀드 신벤(Cinven)은 2015년부터 유로비타 등 이탈리아 여러 생명보험사를 인수합병했다. 유로비타 자산은 2021년 말 200억유로(230억달러)에 달했다. 그 후 금리상승으로 채권 포트폴리오 가치가 하락했고, 고객들은 더 높은 수익률의 투자를 찾아 보험을 잇따라 해지했다. 자본 부족에 시달리던 유로비타는 2023년 3월 이탈리아 규제당국의 특별관리 대상이 됐다. 일부 보험은 새로운 회사로 이전됐다.

생명보험업계와 사모펀드업계의 빠른 결합속도를 고려할 때 유로비타사태보다 더 큰 파장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자산확보 경쟁으로 일부 보험사들은 연금을 넘어 사모펀드의 구조화증권으로 눈을 돌릴 수 있다. 보험사가 무너지면 그 여파는 금융시장 전체에 미친다"고 우려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