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지역 연구자로 성장 … 어린이 창작실험도

2024-02-01 00:00:00 게재

수필집 발간하며 문인으로 활동 … “도서관 전체가 흥미진진한 공간으로”

지난해 전국 300여개 도서관에서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이 진행됐다.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에 참여한 각 도서관들은 저마다 지역의 특색에 따라 기획한 인문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강의뿐 아니라 탐방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 후속모임을 꾸려 운영하며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인문학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산을 지원하며 한국도서관협회가 사업 운영을 맡아 진행해 공모를 통해 참여 도서관들을 선정했다. 한국도서관협회는 1일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우수사례에 대한 사례집을 이달 중 펴낸다고 밝혔다.

지난해 구로기적의도서관에서 열린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진 한국도서관협회 제공

◆지난해 참가인원 12만명 넘어 =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은 지난해 287개관(공공도서관 281개관, 대학도서관 5개관, 전문도서관 1개관)이 참여해 319개 프로그램을 4275회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4257회 중 강연은 3341회, 탐방은 498회, 후속모임은 436회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총 참가인원은 12만2629명에 이른다.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은 10년이 넘게 운영되면서 꾸준히 성장하며 시민들의 인문프로그램에 대한 수요를 충족해주고 있다. 2003년 121개관의 참여로 시작해 코로나19 상황 이전인 2019년엔 409개관까지 참여 도서관이 증가했다.

갈수록 다양한 유형의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은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의 꾸준한 성장 비결 중 하나다. 지난해에는 △자유기획형 △참여형 △사회확산형 △거점연계형 등 4가지 유형으로 구성했으며 자유기획형의 경우 △기본형 △중장기형 △보급형 등 3개 유형으로 나눠 도서관들을 선정했다. 자유기획형 중 기본형의 경우 강연과 탐방, 후속모임을 10회 이상 운영하며 중소도시나 농산어촌지역 혹은 신규 도서관 등을 대상으로 한 보급형의 경우 강연과 탐방, 후속모임을 5회 이상 운영할 수 있게 했다. 중장기형의 경우 3년 이상의 중장기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참여형의 참여자들은 인문 활동을 기반으로 한 성과물을 직접 제작하며 사회확산형의 경우 도서관이 위치한 지역사회 내 다양한 시설 및 기관과 협력해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거점연계형은 지역대표도서관 혹은 지역의 중앙도서관이 분관이나 작은도서관과 연계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관련 사업인 도서관 지혜학교는 심화된 인문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국 대학의 인문학 분야 강사 및 전공자들이 강사진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 대학 수준의 심화 강연을 12주 이상 들을 수 있다. 지역 공공도서관이 평생학교처럼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업으로, 인문 강사들을 활용할 수 있는 사업으로도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지난해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은 한미동맹 70주년 기념으로 미국에서도 진행돼 호평을 받았다.

◆지역의 삶, 글로 이어져 =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을 기반으로 참여자들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지역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의 경우, 참여자들이 지역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된다. 서울 강서구립 꿈꾸는어린이도서관은 2015년부터 꾸준히 길 위의 인문학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인문에 대한 관심을 가진 지역주민들 간 교류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독서토론회를 결성하게 됐다. 이어 참여자들과 강사진을 중심으로 지역의 역사를 공부하고 탐사하는 탐사단이 꾸려지며 지역 연구로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우수담당자로 문체부장관표창을 받은 정유진 강서구립 꿈꾸는어린이도서관 사서는 “수년간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 참여한 강사진과 수강생을 주축으로 탐사단이 구성돼 사전조사와 탐사 및 연구가 이뤄졌다”면서 “길 위의 인문학 참여자들은 인문학동아리 회원, 탐사단 단원, 지역연구자와 진행자로 거듭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뿌듯해했다.

지난해 우수도서관으로 한국도서관협회장상을 받은 남해화전도서관의 경우, 2020년부터 수필을 함께 쓰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지역의 작가들을 강사로 초청해 남해 지역을 살아가는 삶이 글로 연결되기를 기대했다. 나아가 길 위의 인문학을 통해 시작한 수필을 쓰는 작업이 지역 문인으로서 작품 활동까지 이어지기를 바랐다. 참여자들이 지역 문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강사진들 덕에 참여자들은 남해문학회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개인 수필집을 발간하거나 공모전에 당선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남해화전도서관 담당사서는 “해마다 2~3명의 참여자들이 남해문학회에 등단하고 있으며 수필작가 데뷔, 신춘문예당선 등 보다 큰 목표를 가지는 참여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참여자들이 지역 문인으로 성장해 다른 군민에게 화전도서관과 인문학이 지역 가까이에 있음을 알리고 남해군 문학발전에 기여하고 있기에 매우 가치 있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남해화전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참여자는 “강의와 글쓰기 수업이 있는 날에는 농사일과 계획한 일들을 서둘러 일찍 끝냈다”면서 “개인 수필집 발간의 꿈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더 노력해 수필가로 등단하는 꿈도 안고 산다”고 강조했다.

◆중요하지 않은 질문은 없다 =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중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도 있다. 지난해 우수도서관으로 한국도서관협회장상을 받은 부개어린이도서관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어린이들이 과학의 원리를 실험을 통해 습득하고 과학 세부 영역 간 융합 실험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단순한 주입식 교육이 아닌 실험하는 과정과 실수, 해결방안 등에 주력하고 어린이들이 충분히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프로그램 과정에서 생긴 궁금증들은 후속모임에서 ‘사생결단(사소한 일상에 생각하다보면 결국 세상을 변하게 만드는 건 단지 너야)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질문은 없다’를 기획해 어린이들이 실험에 대해 의견을 내고 창작실험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실험을 통해 완성된 작품들은 도서관에 전시해 참여자들은 물론 지역주민들과 함께 관람했다.

실험을 진행했기에 때론 도서관 전체가 약간은 소란스럽지만 흥미진진한 공간으로 변신했다. 부개어린이도서관 담당사서는 “전자레인지로 전구를 돌려보며 전자파에 대한 응용 실험을 실시하거나 건축 속 수학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하는 동안 도서관 전체가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흥미진진한 공간이 돼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 및 후속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져 진행하는 내내 즐거웠다”고 말했다.

부개어린이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어린이는 “집에서는 엄마한테 혼나서 할 수 없는 걸 많이 해보는 시간이라 다음에도 또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어린이는 “종이가 모이면 힘이 세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수학이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는 것도 신기했다”고 말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