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사주’ 손준성 혼자 안고 가나

2024-02-01 00:00:00 게재

법원, 대검 수정관실 조직적 가담 판단

고발장 전달받은 김 웅 재수사 가능성

“윤 대통령·한 위원장 수사해야” 목소리도

법원이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으로 기소된 손준성 대구고등검찰청 차장검사(검사장)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검찰이 이를 어기고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점을 법원이 인정함에 따라 당시 윗선의 지시나 공모관계 등에 대한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김옥곤 부장판사)는 전날 공직선거법 위반, 공무상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손 검사장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공직선거법을 제외하고 일부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 대부분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검사가 지켜야 할 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위반해 검찰권을 남용하는 과정에서 수반된 것”이라며 “피고인은 당시 여권 정치인·언론인을 고발하거나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범행을 저질렀기에 사안이 엄중하고 죄책도 무겁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이 사건이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실(수정관실) 차원의 조직적 범행이라는 점을 사실상 인정했다.

재판부는 “전직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연구관인 임홍석 검사가 고발장을 작성했거나, 최소 고발장에 적힌 내용을 검토·수정하기 위해 판결문을 검색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고발장 작성에 대검 수정관실 검사들의 가담 가능성을 명시했다. 이렇게 작성된 고발장을 손 검사장이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였던 국민의힘 김 웅 의원에게 직접 전송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고발사주 의혹은 인터넷 언론 뉴스버스가 2021년 9월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 부위원장이었던 조성은씨의 폭로를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손 검사장이 21대 총선을 앞둔 2020년 4월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최강욱 전 의원과 유시민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범여권 인사를 고발하도록 야당에 사주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뉴스버스의 보도 이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손 검사장과 김 의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손 검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두 차례나 기각되는 등 수사의 어려움을 겪었고, 공수처는 2022년 5월 수정관실 검사들은 무혐의 처분하고 손 검사장만 기소하는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공수처에 기소권이 없는 김 의원은 검찰에 넘겨졌으나 검찰은 제3자 개입 가능성이 있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하지만 손 검사장이 김 의원에게 고발장을 직접 전송했다고 판단함에 따라 김 의원은 다시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재판부는 “(손 검사장과 김 의원 사이에) 설령 제3자가 있었다고 해도 중간에 끼어 있던 전달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검찰총장으로 고발사주를 지시한 ‘윗선’ 의혹을 받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수사 필요성도 제기된다. 당시 손 검사장은 고발장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반면 윤 대통령 부부와 한 위원장이 명예훼손 피해자로 고발장에 명시돼 있어 윗선의 고발사주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고발장이 김 의원에게 전달되기 전 한 위원장이 고발사주 관련 자료로 추정되는 60장의 사진을 손 검사장과 당시 권순정 대검 대변인(현 법무부 검찰국장)이 참여한 단체 대화방에 올린 것도 의혹을 키웠다.

하지만 공수처는 별다른 조사 없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지시자에 대한 판단없이 “피고발인들이 검찰을 비난하고 있어 손 검사장의 고발장 작성 동기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고 “검찰의 조직적인 선거 개입이 확인된 만큼 ‘국기문란 범죄’라 불러야 마땅하다”며 “공수처는 ‘윗선’으로 의심을 받았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등 당시 검찰 고위 간부들의 연루 의혹에 대해 재수사해야한다”고 촉구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