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로고 공기호 아냐” 차량 부착 무죄

2024-02-02 00:00:00 게재

1·2심 집행유예 … 대법, 파기 환송 “검찰 업무표장, 증명적 기능 없어”

검찰 로고와 ‘공무수행’이라는 표지판을 자동차에 부착해 공무수행 중인 것처럼 위장하더라도 공무소에서 사용되는 기호(공기호)를 위조한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공기호 위조, 위조공기호 행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고 2일 밝혔다.

A씨는 2020년 11월~12월 검찰 로고와 함께 ‘검찰 PROSECUTION SERVICE’, ‘공무수행’ 등 문구와 자신의 휴대전화를 적은 표지판을 인터넷으로 주문해 승용차에 부착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주변에 ‘검사로 일하는 사촌 형이 차량을 빌려 갔다가 붙여줬다’라는 식으로 둘러댔다고 한다.

이후 해당 표지판을 자신의 승용차에 부착하고 다녀 공기호 위조, 위조공기호 행사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는 징역 8개월과 집행유예 2년, 보호관찰과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각 표지판을 차량의 앞·뒷면에 부착해 사용했다”며 “이 사건 각 표지판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일반인으로 하여금 위 자동차의 검찰 공무수행차량과의 동일성 혹은 관련성을 오인하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이 기성완제품을 단순히 구매한 것이 아니라 상품 판매자에게 주문할 때 표지판에 넣을 마크를 고른 다음 피고인의 개인 휴대폰 번호와 차량번호를 작성해 전달했다”며 “피고인의 상품주문 및 제작의뢰, 정보 전달 등을 통해 각 표지판이 완성된 이상 위조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피고인은 ‘검찰 업무표장은 특정한 사항에 관한 증명성이나 특정성이 없어 공기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2심에서도 항소를 기각하며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공기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A씨의 상고를 받아들여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이 사건 각 표지판에 사용된 검찰 업무표장은 검찰수사, 공판, 형의 집행부터 대외 홍보 등 검찰청 업무와의 관련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며 “이를 통해 증명하는 사항이 구체적으로 특정된다거나, 그 사항이 검찰 업무표장에 의해 증명된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인들이 이 사건 표지판이 부착된 차량을 ‘검찰 공무수행 차량’으로 오인할 수 있다고 해도, 검찰 업무표장이 증명적 기능을 갖추지 못한 이상 이를 공기호라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공기호위조죄는 통상 자동차번호판을 위조하는 경우 적용되는 혐의다. ‘국가에 정상적으로 등록된 자동차’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증명하는 번호판과 달리, 검찰 로고는 차량에 부착한다고 해서 그것이 공무수행 차량임을 증명하는 수준의 기능은 없기 때문에 이를 공기호위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