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가습기살균제 국가배상 책임 첫 인정

2024-02-07 00:00:00 게재

“국가, 유독물 아니다 성급한 발표 후 10년 방치”

국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의 피해에 대해 손해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국가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1심 판결이 뒤집힌 것이다. 그동안 손해배상 판결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와 판매사의 책임만 인정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9부(성지용 부장판사)는 6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김 모씨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일부 인용했다. 국가로부터 이미 구제급여를 받은 원고 2명의 청구는 기각하고 나머지 3명에 대해 각각 300만~500만원의 위자료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환경부 장관 등이 이 사건 화학물질에 대해 불충분하게 유해성 심사를 했음에도 그 결과를 성급하게 반영해 일반적으로 안전성을 보장하는 것처럼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고시했다”며 “이를 10년 가까이 방치한 것은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거나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해 위법하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언급한 화학물질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나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으로,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옥시레킷벤저키저(옥시)제품에 사용된 성분이기도 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2008~2011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뒤 원인 모를 폐 손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받거나 가족을 잃으면서였다. 이 사건 피해자들은 2014년 국가와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들 가운데 하나다. 원고들은 환경부가 1997년과 2003년 살균제 원료인 PHMG이나 PGH에 대해 각각 유독 물질이 아니라고 고시한 것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1심은 2016년 제조업체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국가에 대한 청구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이후 원고 10명 중 5명이 국가를 상대로 패소한 부분만 항소해 2심이 진행돼왔다.

2심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에 쓰인 화학물질에 대한 유해성 심사·공표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원고측 주장을 받아들여 인정했다.

재판부는 “당시 해당 물질 자체의 독성 등 유해성이 일반적으로 충분히 심사·평가된 것도 아니었음에도 일반화해 공표한 것”이라며 “용도와 사용 방법에 관한 아무런 제한 없이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공표하는 경우 국민의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역학조사 미실시,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의약외품 미지정 등과 관련해서는 1심처럼 공무원의 위법행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송기호 변호사는 선고 후 “국가가 단순히 피해자들을 시혜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배상해야 하는 법적 책임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큰 판결”이라며 “국가는 이 판결에 상고하지 말고 피해자 배상을 최종적으로 국가의 법적 의무로 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환경부 관계자는 “판결문 검토 및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상고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아영 서원호 기자 o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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