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체불임금 해소, 일본에서 배울 점

2024-02-20 13:00:01 게재

지난해 우리나라 체불임금이 1조7845억원으로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임금체불은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근로자에게는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생계비 때문에 다중채무자로 전락하거나 가족관계에 금이 생길 수도 있어 자신이나 가족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뿐 아니라 경영자에 대한 신뢰도 붕괴돼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나 근로의욕이 떨어져 노사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기 기업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체불임금이 많이 발생한다는 보도를 접하면 자신에게도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해 정신건강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고용노동부는 2023년 임금체불이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한 데에는 경기 등 요인과 함께 체불사업주의 범법행위 인식 결여, 사회적 관대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고의나 상습체불은 무관용 원칙에 입각해 엄정한 법 집행과 강제수사, 근로감독 강화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고액·다수 체불사업장은 특별감독 실시를 원칙으로 하고 체불에 대한 범정부적 대응체계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꼭 실효성 있는 대응을 기대한다.

노동자 생활 최우선시 하는 일본 중소기업가동우회

일본의 경우 2021년도 체불임금은 약 516억원인데 단순 계산으로 우리나라의 2.89%에 불과하다. 일본의 임금 근로자수는 6114만명으로 우리나라 약 2145만명의 2.85배다. 근로자수를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체불임금은 일본의 약 100배(정확하게는 98.6배)다. 일본에는 왜 체불임금이 이렇게 적을까.

체불임금의 원인은 다양하겠으나 무엇보다도 경영자의 윤리의식(범법행위 인식 결여)이 가장 크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2005년부터 필자가 조사하고 있는 일본의 한 경영자단체 ‘중소기업가동우회’를 소개하기로 한다.

중소기업가동우회는 대기업에 편중된 경제정책을 시정하고 중소기업의 존립과 발전, 사회적 지위 향상을 꾀하고, 종업원의 인격존중, 노사협력에 의한 생산성과 생활 향상을 추구하기 위해 1947년 결성됐다. 현재 47개 도도부현 전 지역에 걸쳐 약 5만개의 회원기업이 가입해 있다.

동우회에서 바이블 같은 책자가 있는데 ‘중소기업 노사관계 견해’(노사견해)가 그것이다. 거기에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경영자 책임으로서 ‘무엇보다 실제 일하는 노동자의 생활을 보장함과 동시에 높은 사기를 갖고 노동자의 자발성이 발휘되는 상태를 확립하는 노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노사관계의 대등성 원칙과 함께 임금도 사회적인 수준, 기업의 지불 능력, 물가동향을 고려해 성의를 갖고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지시키고 있다.

필자가 조사한 동우회 회원 기업은 임금체불이 일절 없었고 기업 경영이 어려울 경우 경영자의 보수를 스스로 대폭 감액하면서 노동자의 임금을 지불했다.

체불임금을 안고 있는 경영자는 대체로 중소기업일 것이다. 대기업과의 거래 관계, 경기변동,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 거절 등 중소기업 경영자가 겪는 어려움이 크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핑계로 자기 종업원에게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경영자는 자기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경영자가 임금체불은 절대 없다는 책임의식을 굳게 가질 때 어떤 경영환경에도 종업원의 임금을 지불할 수 있는 경영능력이 높아져 기업 경영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체불임금 발생시키지 않겠다는 경영자 윤리의식 중요

우리나라 근로감독관의 일은 대부분 체불임금 문제해결이라고 한다. 국민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근로감독관이 체불임금 문제 해결이라는 소극적인 역할보다는 산업안전, 생산성 향상 등 보다 생산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경영자의 윤리의식의 확립이 선결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의 중소기업가동우회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체불임금은 근로자와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있어서는 안될 문제다. 경영자가 먼저 체불임금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윤리의식을 보다 철저히 갖고 실천하면 경영기반이 더욱 견고하게 될 뿐만 아니라 노사신뢰가 깊어질 것이다.

오학수 일본 노동정책연수기구 특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