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가자 휴전’ 막는 미국 성토

2024-02-21 13:00:18 게재

미국 거부권 행사 대안제출 … 러·팔레스타인 “이스라엘에 살인면허 주는 것”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20일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가자 지구의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에 손을 들어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예상했던 대로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가자휴전 촉구 결의안이 무산됐다. 20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는 회의를 열어 알제리가 초안을 작성한 휴전 촉구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거부권에 발목이 잡혔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이날 회의에서 “여러 당사국이 민감한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며 “지금은 이 결의안을 통과시킬 때가 아니며 이는 협상 노력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알제리 제출안에 대해 반대하는 대신 다른 대안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미국 제출 결의안은 알제리 제출안이 담은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휴전 요구 대신 하마스가 모든 인질을 석방하는 방식에 근거한 임시휴전을 촉구하는 내용과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테러 행위 비난, 하마스의 가자 통치 반대, 팔레스타인 주민 강제이주 반대, 이스라엘의 라파 지상군 공격에 대한 우려 등이 포함됐다.

미국은 자국 제출안의 표결을 서둘러 추진하지는 않는다는 방침이다.

이날 표결을 전후해 진행된 토론에서 각국은 가자지구의 참혹한 상황에 대한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결의안을 주도한 아마르 벤자마 알제리 유엔대사는 “이 결의안은 살인과 증오를 옹호하는 사람들에 맞서는 진실과 인류애를 상징한다”면서 “이 결의안 초안을 지지하는 투표는 팔레스타인인의 생명권을 지지하는 것이고 이에 반대하는 투표는 그들에게 가해진 잔혹한 폭력과 집단적 처벌을 지지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미국의 거부권 행사를 강하게 비판하며 “침묵은 실행 가능한 선택이 아니다”며 “지금은 행동이 필요한 때이자 진실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팔레스타인 유엔 대사 리야드 만수르는 “오늘 거부권을 통해 이스라엘에 주어진 메시지는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살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더 많은 아기들이 죽거나 고아가 될 것이며, 더 많은 어린이들이 굶주림, 추위, 질병으로 사망할 것이며, 더 많은 가족들이 추가 강제 이주 위협을 받을 것이며, 가자 지구의 230만 인구 전체가 음식, 물, 의약품, 피난처 없이 남겨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길라드 에르단 이스라엘 대사는 “안보리가 휴전 요구라는 동일한 결함있는 주제로 반복적으로 회의를 가졌다”면서 “(결의안은) 하마스의 생존만을 달성할 뿐이며 이스라엘과 가자 사람들에게는 사형 선고가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휴전은 영유아 살인범과 강간범들에게 면책만 제공하고 하마스가 재집결하고 재무장할 수 있도록 한다”면서 “결의안 초안이 채택된다면 인질들의 가족과 100명 이상의 다른 사람들이 포로로 남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워싱턴이 약 3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망하고 2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기근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거부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 큰 비난을 받았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그러면서 미국이 제출한 대안에 이스라엘의 가자남부 라파 공격에 대한 우려를 구체적으로 담은 것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네타냐후 이스라엘 행정부에 대한 조바심이 커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국제위기그룹(International Crisis Group) 사무총장인 리차드 고완은 “미국인들에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라며 “그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면적인 공격을 되새기는 안보리 회의를 불과 며칠 앞두고 거부권을 행사해야 했다. 이는 미국의 이중 잣대에 대한 논의를 촉발할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네벤지아 러시아 대사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계속해서 살인면허를 주고 있다면서 “오늘 우리는 안보리 역사상 또 다른 검은 페이지를 목격했다. 미국이 ‘중요한 중재 노력’을 거론하며 아무리 애를 써도 그 결과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워싱턴에 있다”고 말했다.

알리야 아흐메드 사이프 알 타니 카타르 대사도 “(가자지구에서) 우리는 세계 역사상 최악의 인도주의적 재난을 보고 있다”면서 “알제리가 제출한 결의안을 채택하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장쥔 중국대사는 “즉시 휴전을 소극적으로 회피하는 것은 계속되는 학살에 청신호를 켜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고, 프랑스 대사인 니콜라 드 리비에르는 “현장의 비참한 상황을 고려하여 결의안이 채택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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