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탄소중립, 소모적 논쟁 아닌 행동할 때

2024-02-28 13:00:01 게재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의 순간은 결정의 순간이다. 필자는 대학 1학년 때 교양과목으로 전산학을 배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프로그램 입력 방법을 배우면서 흐름도(Flow chart)라는 것을 경험했다.

전산 프로그램 작성과정을 도식적으로 표현하는 흐름도는 순서도라고도 했다. 논리의 흐름을 따라가거나 역추적하면 문제가 된 부분을 찾아내 수정할 수도 있어서 참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했다.

흐름도를 따라가다 보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꼭 ‘예’와 ‘아니오’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프로그램이 복잡할수록 그 선택할 것은 더욱 많아졌다. 전산 프로그램은 입력, 실행과 수정을 반복하면서 원하는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어 재미있었다.

흐름도는 전산 프로그램을 작성할 때 말고도 일의 진전 여부를 판단하고 사안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흐름도를 알게 된 후 필자는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선택의 기준과 선택할 시점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전산 프로그램과 달리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선택과 결정의 논리는 훨씬 복잡했고 어려움도 컸다. 사람들은 전산 프로그램에서와 달리 기대한 대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드물었다.

실행과 수정을 반복할 수도 없었다.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묻거나 요구할 때 대개는 자기에 대한 유불리를 선택의 기준으로 예, 아니오를 선택했다. 필자가 굳이 ‘대개’라고 한 이유는 때때로 인류공영의 숭고한 정신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일반적인 사람의 판단이라고 보기에는 난해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수의 선택'을 따르는 의사결정 시스템

조직의 범위가 더 커져 국가적 차원에서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에 우리는 더욱 더 다양한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인류 역사에서 오랜 기간 수많은 논의와 갈등을 통해 정해진 의사결정 시스템은 ‘다수의 선택’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다수의 선택이라는 결과물이 생성되는 동안 거기에 참여한 자 중에는 개인적 이익이 최우선인 이도 있을 것이고 자신의 선택이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주변의 분위기를 보면서 따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니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심각한 것은 다수가 선택해 결정된 것에 대해 ‘내가 선택하지 않았으니 그 결정은 내게 무효하다’는 태도다.

탄소중립을 통해 지구건강을 지키려는 전쟁이 한창이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수단의 기술적 가능성과 경제적 가능성에 대한 각양각색의 주장이 백가쟁명이다. 탄소중립 이행 수단에 대한 수많은 선택과 결정의 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전산 프로그램 흐름도는 구체적인 실물의 이동이 없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있고 그 결과가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수정할 기회도 있다.

하지만 지금 전인류가 치르는 ‘지구 지키기 전쟁’은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첫째, 선택과 결정에는 실행이 따르고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 둘째, 그렇게 나온 결과는 또 다른 선택과 결정을 요구한다. 셋째, 선택과 결정에 따른 결과를 수정하기에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지구지키기 전쟁’ 수정할 시간 별로 없어

탄소중립 수단에 관해 많은 것들이 선택되었고 결정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탄소중립을 위한 수단의 선택 과정에 관해, 자기가 선택한 것인지 아닌 것인지에 관해 소모적 논쟁에 빠지지 말고 결정을 이행해야 할 것이다.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