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ELS 사태’가 남긴 숙제

2024-03-06 13:00:03 게재

은행들이 고객들에게 충분한 설명없이 판매해 거액의 손실을 안겼다는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금융정의연대,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등 시민단체들이 금융감독원에 대한 ‘공익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했다. 난이도가 높은 금융상품을 은행들이 신탁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대규모 피해를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신속하게 조처하지 않아 피해규모를 키웠다”는 게 이들 단체의 주장이다.

금융회사들의 투자자 기만행위 근절돼야

문제가 된 상품은 홍콩증시의 항셍(H)지수에 투자손익을 연계, 주가가 오르면 수익을, 하락하면 손실을 떠안는 구조로 설계됐다. 그런데 약정기간 중 H지수가 급락하면서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게 됐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시중은행에서 해당상품을 구매한 투자자들의 손실액이 5000억원을 넘어섰고, 평균 손실률도 50%를 훨씬 웃돈다. H지수가 현재 흐름을 지속할 경우 전체 손실액이 7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은행에서 판매하는 상품이어서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매수했다”며 은행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감독당국 및 은행들의 자체 확인 과정에서 일부 창구직원들이 고객들에게 “안정적으로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상품이 있다”며 매입을 유도한 사실이 확인됐다. 수익이 확정된 것이 아니며 상황에 따라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사례도 적발됐다.

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가 한달 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어서 정치권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다수의 서민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어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은행들을 압박하고 있다. ELS 불완전판매 논란이 총선정국을 타고 정치이슈로 비화하는 모양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금융투자의 자기책임 원칙’이다. 주식 채권 등 운용성과에 따라 수익률이 변동하는 금융상품에 돈을 맡길 때는 투자자 자신이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이다. 확정적인 금리가 보장된 은행 등의 예금상품 외에 모든 금융상품에 돈을 맡기는 것을 ‘위험투자’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잘 굴리면 은행예금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원금 손실)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은행예금 다음으로 많이 돈을 맡기는 주식도 전형적인 ‘위험상품’으로 불린다. 전반적인 시황이나 해당기업의 경영상황에 따라 주가가 수시로 변동하기 때문이다. 우량주로 믿고 투자해서 기대했던 대로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보다 예상외의 변수에 허를 찔려 ‘쪽박’을 차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금융회사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의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개별 주식 외에 이들을 여러 방법으로 한데 묶거나 지수와 연동시켜 기대수익을 더 높이는 ‘구조화’ 상품을 앞다퉈 내놓는다. 논란의 ELS도 그런 복합상품의 일종이다. 금융투자 기법이 발달하고 고도화되면서 상대적 위험을 낮추거나 리스크를 분산시켜주는 신종금융상품이 속속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감춰선 안 될 게 있다. 아무리 ‘안전장치’를 매단다고 해도 금리가 확정된 예·적금 상품이 아닌 한 운용과정에서의 손익 변동 자체를 막을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고위험-고수익’ ‘중위험-중수익’ ‘저위험-저수익’이 금융자산 운용의 기본원칙으로 꼽히는 이유다.

‘투자의 자기책임원칙’ 분위기 조성 과제

금융당국이 위험투자 상품 피해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사후대책을 내놓는 것 못지않게 해야 할 일이 있다. ‘투자의 자기책임원칙’을 모든 투자자가 확실히 인식하고 지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다. 금융회사들의 투자자 기만행위를 일벌백계로 다스리는 것 못지않게 이런 풍토가 갖춰져야 ‘위험’을 본질로 하는 자본시장의 건강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이학영 경제사회연구원 고문 전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