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매각 결렬 한달, '플랜B' 안보인다

2024-03-08 13:00:28 게재

세계 해운계는 해운동맹 재편 분주 … HMM ‘낙동강 오리알’ 우려

사실상 공기업 … 해수부 책임 커졌지만 “어떤 방침도 결정된 게 없다”

지난달 6일 HMM 매각이 결렬된 이후 한 달이 지났지만 해양수산부가 변화하고 있는 해운시장에 대응하거나 새로운 상황에 맞게 준비된 ‘플랜B’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세계 주요 선사들은 기존 해운동맹을 해체하고 새로운 동맹을 맺는 등 합종연횡하고 있다. 동맹 재편 과정에서 HMM이 속한 해운동맹 ‘디 얼라이언스’ 소속 하팍로이드(독일)와 ONE(일본)는 각각 머스크(덴마크), 완하이(대만)와 새로운 동맹을 맺거나 협력하기로 했다. HMM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18번째 민생토론회에서 논의된 항공·해운·물류 발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강 장관은 이 자리에서 "HMM 재매각 계획은 현재 없다"고 말했다. 사진 연합뉴스

◆“언젠가는 민간에 매각” vs “재매각 계획 현재는 없다” = 강도형 해수부 장관은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생토론회 후속 브리핑에서 “HMM과 관련된 재매각 계획은 현재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HMM은 국가의 재정이 투입된 회사이기 때문에 건전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세워간다는 정도만 말씀을 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6일 하림그룹과 매각협상이 결렬된 후 HMM 경영은 해수부가 설립한 한국해양진흥공사(KOBC. 해진공) 관리 체계로 계속 운영되고 있다. 최대 주주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고, 해진공은 2대 주주다. 사실상 공기업 체계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재매각 계획이 없다’는 식의 강 장관 발언이 알려진 후 기자들 질문이 집중되자 해수부는 “재매각 관련 어떤 방침도 결정된 바 없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해수부와 해진공은 HMM 매각협상에서 적극적으로 매각하겠다는 의사를 가진 산업은행과 달리 까다로운 매각조건을 붙였고, 하림그룹이 인수의사를 접게 된 계기를 제공했다. 인수 후 제대로 경영할 능력이나 의사가 부족한 곳에 매각해 자칫 제2의 한진해운 사태를 되풀이하면 안된다는 논리가 강했다.

계속 공기업 체계로 운영 하겠다는 의사도 밝히지 않고 있다. 해수부와 해진공 관계자들도 “언젠가는 민간에 매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상태에 머물러 있다.

HMM 진로와 경영에 대한 해수부의 책임은 커졌는데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재매각을 한다는 것인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도 하지 못 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김 신(오른쪽) HMM 컨테이너사업부문장은 지난 3일 서울 본사에서 독일 물류기업 헬만 글로벌 FCL의 노이만 총괄과 탄소 감축량을 제공하는 ‘그린세일링 서비스’ 계약을 체결했다. 사진 HMM 제공

◆HMM 소속 해운동맹 ‘디 얼라이언스’ 원심력 커져 = 그 사이 세계 해운계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고 HMM이 속한 해운동맹 ‘디 얼라이언스’는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HMM 안팎에서는 HMM이 동맹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동맹을 맺지 못하고 고립되면 망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15일 일본 선사 ONE는 대만 완하이라인과 함께 아시아~북미서부 항로를 연결하는 새로운 ‘아시아 태평양 1’(AP1) 서비스를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ONE는 HMM과 함께 디얼라이언스를 운영하고 있는 선사다. ONE와 완하이는 새로운 서비스를 공동 운영하기 위해 각각 2척, 5척의 선박을 배치할 예정이다.

HMM은 디얼라이언스 소속 선사들이 동맹을 이탈하거나 독자적인 활로를 모색하는 모습을 보이자 당황하고 있다. 디얼라이언스의 주축인 독일 하팍로이드는 HMM 매각협상이 한창이던 지난 1월 17일 동맹을 떠나 덴마크 선사 머스크와 새로운 해운동맹 제미나이를 내년 2월 출범한다고 발표해 세계 해운계에 충격을 줬다.

변화는 코로나 팬데믹 막바지인 지난해 1월 예고됐다. ‘2M’이라는 세계 최대 규모 해운동맹을 운영해 온 스위스 MSC와 머스크가 내년 1월 동맹을 해체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양사는 선복량 기준 세계 1, 2위 규모다.

유럽~아시아, 유럽~북미, 유럽~아프리카 항로를 단독 운항할 수 있는 규모로 덩치를 키운 MSC와 달리 415만TEU 규모에 머물러 있는 머스크는 새로운 동맹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하팍로이드가 손을 잡았다.

디얼라이언스에 남은 HMM과 ONE, 그리고 대만 선사 양밍에게는 △급격히 줄어든 동맹세력을 유지하거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동맹 밖의 선사를 동맹 안으로 데려오거나 △각자 살 길을 찾아 움직여야 하는 선택지가 놓였다.

HMM은 우선 3사 중 가장 규모가 큰 ONE를 잡아두기 위해 나섰다. 하팍로이드가 동맹 탈퇴와 새로운 동맹 결성을 선언한 직후 HMM 고위 임원은 싱가폴에 있는 ONE 본사로 가서 동맹결속을 다졌다.

하지만 ONE는 HMM과 만나는 순간에도 독자적인 활로를 모색하고 있었다는 게 완하이와 협력발표에서 드러났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공동으로 새로운 항로 서비스를 개설하는 일은 적어도 3개월에서 6개월은 논의해야 하는 일”이라며 “지난해 1월 ‘2M’ 해체 선언 이후 주요 선사들이 새로운 전략을 구상하고 동맹을 재구성하고 있을 때 HMM은 속수무책이었다는 게 드러난 셈”이라고 지적했다.

◆취약점 드러난 HMM 리더십 = HMM의 리더십은 탈탄소에 대응한 친환경 전환, 지정학적 변화와 세계 공급망 개편에 따른 세계물류·해운동맹 변화 등에 속도감있게 대응하는 데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해운동맹 재편이 예고됐지만 HMM은 이에 대응하기 보다 매각 이슈에 빠져들었다. 최대주주인 산업은행과 2대 주주이자 경영관리를 하고 있는 해진공은 매각에 대한 입장도 통일하지 못했다. 산업은행은 빨리 매각하려 했고, 해진공과 해수부는 신중한 매각을 주장했다.

매각이 결렬된 뒤에도 시장변화에 대응은 느리다. 그 사이 프랑스 선사 CMA-CGM과 중국 코스코(COSCO) 등이 구성한 해운동맹 ‘오션 얼라이언스’는 지난달 27일 2027년까지 운영하기로 한 동맹운영기간을 5년 더 연장하기로 합의·발표했다. 동맹 재편기에 소속 해운사들의 원심력을 막고 동맹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서둘러 동맹을 추가 연장한 것이다. 오션얼라이언스는 CMA-CGM 코스코 외에 대만 에버그린, 홍콩 OOCL 등 4개 선사로 구성돼 있다.

매각협상이 한창일 때 HMM 관계자는 “민간이면 민간, 공기업이면 공기업 어느 한 쪽으로 정리가 돼야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로 매각이슈가 길어지면 대우조선해양처럼 경쟁력이 급격히 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해수부는 매각이 결렬된 후 “우선 급하고 중요한 것은 내년 해운동맹 재편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현실에서는 재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게 아니라 해외 글로벌 선사들이 움직이고 나면 뒤쫓아가며 허둥대는 모양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ONE가 손잡은 대만 완하이라인은 아시아~유럽, 아시아~미주 항로같은 원양해운서비스를 하는 곳이 아니라 한국의 장금상선이나 고려해운처럼 아시아 역내 서비스를 하는 선사였지만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1만3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 9척을 투입하며 원양서비스에 진출하고 있다”며 “HMM 입장에서는 새로운 경쟁자가 생기는 것인데 ONE가 그 경쟁자 손을 잡아주고 키워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해운동맹 재편기에는 먼저 합종연횡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주도적으로 새 판을 짜야 하는데 HMM이 계속 한 발 늦게 끌려가고 있는 모습이어서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다. 머스크 하팍로이드 CMA-CGM 등이 탈탄소 전환 속도를 높이면서 새로운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HMM은 2026년까지 15조원을 투자해 컨테이너선단 규모를 120만TEU로 확대하고 벌크선단도 55척으로 확대해 사업을 다각화하기로 한 계획도 이행해야 한다.

한편, HMM은 이달 28일 전후 주주총회를 열고 임기가 다 된 사내이사 2명(김경배 사장, 박진기 부사장), 사외이사 2명(우수한 교수, 정우영 변호사)에 대한 재신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사 5명 중 4명이 교체대상이지만 매각이 결렬되고 재매각 일정이 불확실한 상황이에서 이들의 진로도 불확실하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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