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 70주년

노동분쟁에 대한 행정부 지나친 개입 견제로 설립

2024-03-08 13:00:42 게재

6.25 전쟁 중 조선방직 쟁의사건 계기로 노동위원회법 제정 … “판정보다 화해 중심, 독자적인 인사·예산권 확보해야”

노동위원회가 올해 70주년을 맞았다. 노동위는 6.25 전쟁 중인 1953년 3월 8일 노동위원회법 제정으로 법적 기반이 마련했고 이듬해 2월 20일 중앙노동위원회가 설립됐다. 민법과 상법에 앞서 제정됐고 노동법 중에서도 가장 먼저 제정될 정도로 노동위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노동위는 올해를 노동위 역할과 기능 확대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자율적 분쟁해결과 공정한 노동질서 확립’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특히 대안적분쟁해결(ADR) 활성화와 법·제도 기반 마련, 맞춤형 분쟁 예방 서비스 확대, 디지털 노동위원회 구축, 해외 분쟁 해결기관과의 협력 강화 등에 힘쓴다. 노사 당사자의 자율적 분쟁 해결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K-ADR 스쿨을 통해 관련도 전문가를 육성하는 등 교육과 홍보도 강화할 예정이다.

김태기 중노위 위원장은 “노동위는 노동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70년을 달려왔다”면서 “이제 분쟁해결을 넘어 신뢰사회 구축에 앞장서는 노동위로 재도약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노동위가 디지털 시대에 복잡하게 변화하는 노동분쟁 양태에 적극적·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취약계층의 권리구제를 보다 실질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월 20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노동위원회 70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노사분쟁 해결 및 화합 행사를 하고 있다. 사진 중앙노동위 제공

노동위원회는 노·사·공익위원 3자로 구성돼 노동분쟁에 대한 조정과 심판을 통해 근로자의 권리를 구제하는 준사법적 행정기관이라는 법적 지위를 갖는 노동분쟁 해결기관이다.

◆미군정 시대 ‘노동조정위원회’가 최초 =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위원회는 해방 후 혼란 속에서 노동쟁의에 대응하기 위해 1945년 12월 8일 미군정 법령 34호에 의해 설치된 ‘노동조정위원회’다. 노동조정위원회는 중앙노동조정위원회와 도노동조정위원회를 두고 중앙노동조정위원회는 군정장관이 임명하는 의결위원 5명, 의결권 없는 상임감사 1명으로 구성하고 군정청 노무장교를 고문으로 선임했다.

중앙노동조정위원회는 1949년 현재 한국전력의 모태인 조선전업 노동자들의 노조결성을 둘러싼 쟁의사건을 조정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49년 6월 6일 이승만 대통령은 노동조정위원회 직제를 대통령령 126호로 발표했다. 노동위원회법(모법)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직제령이라는 편법형태로 노사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노동조정위원회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실제 노동위원회법은 1950년 6.25 전쟁(한국전쟁) 중 조선방직 쟁의사건을 계기로 제정됐다.

6.25 전쟁 중 임시수도 부산에서는 전쟁 이재민의 폭증과 극심한 식량난 등으로 사회혼란과 민생불안이 최고조로 달했다. 조선방직은 당시 군수·민수 공장으로서 국내 최대 면방직 생산공장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장기집권 추진을 위한 자금 마련과 조직력 확보를 위해 자신의 측근인 강일매를 조선방직의 관리인으로 임명했다. 강일매 임명 이후 해고, 임금 미지급 등 부당한 처우가 빈번하자 조선방직노조는 대규모 쟁의행위를 벌였다.

조선방직 쟁의사건을 계기로 정치권은 국난극복을 위해 노사 갈등관리 필요성을 인식하고 미군정시대의 노동관계법령을 대체하는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과 함께 1953년 3월 8일 노동위원회법이 제정·공포됐다. 근로기준법은 같은해 5월 10일 제정됐다.

“행정관청인 사회부가 관권으로써 또는 독단적으로 조정이나 지도하는 것은 노동자의 이익보다는 오히려 자본, 즉 사용자의 편을 들어서 사용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까닭에 국회 사회보건위원회는 사회부가 노동위원회의 결의에 의해 결정된 바에 따라 명령 또는 감독할 수 있도록 구상했다.”

1953년 1월 24일 제2대 국회 김익기 사회보건위원장이 노동위원회법을 상정하면서 발의한 내용이다. 노동분쟁에 대해 행정부의 지나친 개입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노동위원회가 설립됐다는 취지다.

노동위원회법은 제정 목적으로 “노동운동에 있어 최후수단인 노동쟁의에 있어 이를 조정하고 중재하며 일반 노동행정의 민주화를 위한 정책입안 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노동위원회를 설치하여 근로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향상과 노사간의 협조를 기하기 위하여”라고 명시했다.

◆초기 준사법적 심판기능 없어 = 노동위원회는 노동조합법과 노동쟁의조정법에서 위임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서울시 소속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먼저 만들어지고 중앙노동위원회는 1954년 2월 20일 설립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위원회는 미국 일본과 달리 현재와 같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준사법적 심판기능을 담당하지 않았다. 노동위원회 준사법적 기능은 1963년 부당노동행위 구제 제도가 도입되면서 확대됐다.

1989년 부당해고 구제, 2008년 비정규직 차별시정, 2010년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2022년 고용상 성차별 등으로 준사법적 기능이 확대됐다. 이러한 측면에서 다른 선진국과 다른 한국형 노동분쟁 해결기관으로 발전했다

이상복 중앙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은 “현재 노동위원회가 처리하는 대부분의 사건은 심판사건”이라며 “노동위원회법 제정시 없었던 준사법적 기능으로 점진적인 역할 확대는 우리나라의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의 변화속에서 특수성과 사회적 요소를 담은 것으로 신속성과 비용측면헤서 탁월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위원회의 권한과 기능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이유는 △법원의 절차보다 신속하고 저렴해 근로자들이 활용하기 편리한 점 △노·사·공익 3자 위원으로 구성·운영돼 심판위원회에 대한 노·사의 신뢰 축적 △노동사건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기관으로서 일반법원과 비교해 공익위원 조사관 등이 전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분쟁 95%, 법원 거치지 않고 해결 = 하지만 고용노동청 법원 등 노동분쟁 해결기관과의 관계에서 노동위원회가 어떠한 기능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부족해 노동법원 설립론과 같이 노동위원회 정체성에 도전을 받기도 했다.

곧게 뻗은 직선은 판정과 심판을 상징하며 13개의 스트라이프 라인은 중앙노동위원회와 13개 지방노동위원회를 나타낸다. 역삼각형 문양은 노·사·공 세축을 통한 균형을, 두 팔을 벌린 모양은 국민을 섬기는 봉사정신을, 민트색은 평화를 의미한다. 노동위 70주년을 기념해 권일현 한국폴리텍대학 교수가 헌정했다.

이 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노동분쟁사건이 약 95%는 법원을 거치지 않고 노동위원회에서 해결될 정도로 노동위원회는 노동분쟁해결 전문기관으로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면서 “하지만 현행 노동위원회는 창설 당시 조직과 구성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기능상의 한계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노동시장의 글로벌화, 고용의 다양화·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노동분쟁의 형태도 공정대표의무를 둘러싼 문제와 같은 노노갈등을 비롯해 원·하청 문제, 비정규직·특수형태근로자·플랫폼조사자 문제 등 매우 복잡하고 다양화되고 있다”며 “이해당사자들이 자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판정중심의 운영보다는 대안적 분쟁해결방식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구체적 제도 개편방안으로 △공익위원에 대한 전문성과 중립성 강화를 위해 위촉방식(노사단체에 의한 교차배제) 개선 및 조사관 직렬 신설 △적용대상을 특고·플랫폼종사자까지 확대해 노동분쟁해결의 사각지대 해소 △전문성 제고를 위한 교육과 시설투자 △구제명령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이행강제금, 긴급이행명령 제도 확대·적용 △정부조직으로부터 독자적인 인사권과 예산권 확보 등을 제안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