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폭언 듣고 투신사망 “업무상 재해”

2024-03-19 13:00:21 게재

법원 “업무·사망 사이 상당한 인과관계”

회사 대표로부터 반복된 질책과 폭언을 당해 직원이 투신 사망한 것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합의8부(이정희 부장판사)는 A씨 부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 거부처분 취소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2020년 7월 한 회사에 3개월 수습기간을 거친 후 채용한다는 조건으로 입사했다가 그해 10월 회사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입사 후 대표로부터 여러 차례 질책을 들었으며 사망 전날엔 다른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낯빛이 좋지 않다” “정신질환이 있냐”는 등 반복적으로 질책을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는 A씨가 업무상 스트레스 때문에 숨졌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공단은 “업무상 사유로 사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자 소송을 냈다.

부모는 재판에서 “회사의 대표가 자녀에게 심한 질책과 폭언을 해 정식 채용을 앞두고 해고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다”며 “이로 인해 자녀의 우울증이 급격히 악화됐고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으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A씨의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과 주치의 소견 등 증거를 토대로 “A씨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우울증으로 수차례 관련 처방을 받았는데, 직장 상사의 폭언이 이를 악화했다는 이유다.

재판부는 “A씨는 2017년부터 2020년 마지막 회사에 입사할 때까지 여러 차례 이직을 경험했고, 이 사건 회사에도 3개월의 수습기간 후 채용을 조건으로 입사했다”며 “그로 인해 A씨가 수습기간 중 해고당할 수 있다고 두려워하는 상황에서 회사 대표와 직원들의 폭언을 듣자 극심한 수치심과 좌절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감정의는 ‘A씨가 경험한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는 업무상 스트레스 외에도 대인관계에서 스트레스 또한 스트레스 인자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제시했다”며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으로 우울 증세가 악화했고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해 숨진 것으로 추단된다”고 밝혔다.

한편 A씨는 생전 자신의 일기에 “대표님의 말들이 자꾸 생각이 난다. 복기할수록 감정이 올라와서 힘들다”라며 “나도 일 잘하고 싶고, 안 혼나고 싶다”라는 내용을 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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