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유럽연합 날선 신경전

2024-03-20 13:00:01 게재

EU, 러 동결자산 활용 ‘무기지원’ 검토 … 푸틴 “친우크라 시효없이 처벌”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가 18일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 본부에서 열린 외교이사회(FAC) 회의에 앞서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째에 접어들어서도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와 유럽연합(EU) 사이에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EU는 러시아에 대한 직접 제재 외에도 러시아 동결자산의 이자수익을 활용해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에 사용하려던 당초 방향을 틀어 ‘무기 지원’에 쓰자는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1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들과 만나 20일 회원국들에 러시아 동결자산에서 발생한 수익의 90%를 우크라이나 지원용 무기 구입에 사용하자는 내용의 제안서를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나머지 10%는 EU 특별기금인 ‘유럽평화기금’(EPF) 예산으로 이전한 뒤 우크라이나 방위산업 역량 강화에 사용하자고 제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자 수익 전액을 우크라이나 지원용 군사자금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27개 EU 회원국은 이미 러시아 동결자산 수익 활용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당시에는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 비용으로 쓰자는 게 중론이었다.

EU 고위 당국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작년 12월만 하더라도 재건, 그리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생존’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하는 것에 관한 논의였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지금은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고 무기가 물밀듯 끊임없이 전달되는 게 훨씬 더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렇게 될 경우 2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하다. 보렐 고위대표의 제안을 토대로 오는 21일 EU 정상회의에서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 자산 가운데 주요 7개국(G7) 회원국, EU, 호주 등에 약 2820억달러(약 375조원) 상당이 증권과 현금 등의 형태로 묶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금리 수준을 고려하면 2027년까지 동결자산에서 150억유로(약 21조 8000억원)에서 최대 200억유로(약 29조원)의 세후 이자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돈을 압류해 우크라이나 지원용으로 사용하자는 게 EU의 구상이다. 다만 역내 예치된 제3국 자산이나 파생 수익을 ‘임의로’ 활용하는 것이 거의 전례가 없고 법적으로도 쉽지 않다는 반론도 적지 않아 만장일치 동의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EU 당국자도 “공식 제안이 내일(20일) 이뤄질 예정인 만큼 모레 정상회의에서 이 아이디어가 살아남는다면 그 자체로 일단 성공적”이라며 논의 과정이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의 반발과 반격도 예상된다. 최근 5선에 성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5월 중국 방문을 계기로 북중러 협력을 강화하고, 4~5월로 예상되는 튀르키예 방문을 통해 서방의 균열을 부추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튀르키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자 EU 가입을 희망하면서도 러시아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푸틴의 대선 승리에 대해 미국과 EU 등 서방진영이 대부분 불법선거 운운하며 비판적 시각을 유지한 반면 중국, 이란, 북한,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아프리카와 중남미 일부 국가들이 축하를 보낸 것도 서방 주도의 세계질서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러시아가 이런 균열 조짐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당장 푸틴 대통령이 친우크라이나 반정부 무장세력을 ‘쓰레기’라고 부르며 “공소시효 없이 처벌하겠다”고 경고를 보낸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또 푸틴 대통령은 서방 제재를 받는 러시아 기업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얼마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파병할 가능성을 거론해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세르게이 나리시킨 러시아 대외정보국(SVR) 국장은 “(파병 프랑스군은) 러시아군의 우선적이고 합법적인 공격 표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프랑스가 이미 우크라이나에 파병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초기에는 약 2000명 규모 병력을 보낼 것이라는 정보가 있다”면서 “이미 우크라이나에서 많은 프랑스인이 사망했다. 관련 수치가 공개될 경우 프랑스에서 시위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프랑스 국방부 관계자는 “우리는 이런 종류의 도발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이 발언은 러시아발 ‘허위 정보’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고 말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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