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첫차 타고 출근해도 일하니 행복

2024-04-01 13:00:02 게재

서대문구 지역과 협업, 노인일자리 창출 구청 앞에 김밥집, 청년공무원 복지일환

“살면서 새벽에 첫차는 처음 타봤어요. 재료 다듬고 손님맞이 준비하고…. 그걸 영업 시작하기 전에 다 해야 하니까.”

이성헌 구청장이 구청 앞에 문을 연 김밥집에서 종사자들과 함께 맛과 가격 모두를 잡은 먹거리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서대문구 제공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주민 우계자(75)씨는 연신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다 김밥 전문가로 방향을 튼 참이다. 한식집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동료 심혜길(67·연희동)씨는 “젊어서 김밥집도 해봤다”며 “한식은 다 같다”고 자신했다.

1일 서대문구에 따르면 우씨와 심씨를 비롯한 노년층 주민 12명이 연희동 구청 앞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서대문시니어클럽과 함께 시작한 시장형 일자리사업 ‘영미김밥 서대문시니어점’이다. 지역에 연고를 둔 업체와 협업해 식단을 그대로 전수받은 건 물론 사전 직원교육, 위생관리 재료준비 매장점검 등에서 도움을 받는다.

구청 앞에 장기간 비어있던 건물에 주목해 주민과 지역사회 공공까지 상생할 방안을 찾았다. 간편하면서도 물리지 않는 먹거리인 김밥을 택했다. 살림 경험이 있으면 누구나 손쉽게 도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성헌 구청장은 “서대문지역에서 유명한 김밥집 두곳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 중 한곳이 지역사회를 위해 나서겠다고 화답했다”고 설명했다. 노인 일자리 창출이라는 뜻에 공감한데다 마침 2호점을 구상하고 있던 차였다고 한다.

시니어클럽에서 희망자를 모집했다. 요리경력 위생관념 적극성 등을 따져 선발한 주민들은 본점에서 2주 교육과정을 거쳤다. 영업 전 준비부터 손님이 몰리는 아침과 점심, 오후와 폐점준비 등 시간대별로 나눠 근무경험을 쌓았다. 지난달 중순에는 구청 맞은편 36.36㎡ 공간에 ‘서대문시니어점’ 간판을 내걸고 본격적인 영업 준비에 나섰다.

정식 개장 전에 서대문구 공무원들만을 대상으로 시식회 겸 시범영업을 했다. 3500원부터 시작하는 채소 참치 제육 등 김밥 6종을 선착순 80명에게 선보였는데 공무원들이 길게 줄을 설 정도로 호응이 컸다. 인근에 마땅한 식당가가 없어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층이 즐겨 찾을 것이라는 판단이 통한 셈이다. 우계자씨는 “처음에는 긴장이 많이 됐는데 자신감이 생겼다”며 “본점 사장님도 지원해줬는데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성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점은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동일한 맛을 유지하도록 지속적으로 살피고 시니어점에서는 김밥집 명성 유지에 최대한 주력하고 있다. 구 관계자는 “양쪽이 서로를 고려하는 셈”이라며 “김밥이 손에 익으면 분식류까지 확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시니어클럽에서 남성 노인 중심으로 진행 중인 배달사업과 연계한 상승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5월이면 취약계층 주민들에게 질좋은 식사를 제공하는 동행식당으로 서비스를 확대한다. 무료 경로식당에 대기자로 등록돼 있는 주민들이 동행카드를 이용해 무료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서울시와 서대문구가 절반씩 지원하는 사업이다.

시장형 일자리라고 하지만 단순 돈벌이와는 다르다. 사회생활을 유지하면서 주 2~3일 일을 하고 월 52만원 가량 용돈벌이를 하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다. 심혜길씨는 “복지관 수업도 듣고 문화센터에서 운동도 하고 있어서 이 정도가 딱 좋다”며 “열심히 해서 시니어점을 10호점까지 확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대문구는 올해 김밥집을 비롯해 총 192억여원을 투입해 지난해보다 500개 많은 노인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은 “폭포카페 등 직영공간을 활용하고 시니어클럽 등 각 기관과 손잡고 5500개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며 “더 많은 어르신들이 일자리에 참여하시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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