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센티브는 교육적 개입 아니다

2024-04-17 13:00:12 게재

3월 11일 교육부는 ‘교사가 이끄는 교실혁명을 촉진하는 자율적 수업 혁신 지원 방안’을 제시했다. 수업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이 두드러지는 이번 수업 정책의 비전으로 ‘교사가 이끄는 교실혁명’을 말한다. ‘학교개혁은 왜 실패하는가’에서 마이클 풀란은 대규모 개혁을 위한 정부의 역할로 ‘책무성 관리’ ‘인센티브 제공’ ‘역량개발’을 꼽고 지속적 성과를 위해 모두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언뜻 교육부 정책은 위 세가지를 모두 담고 있는 듯하나 그렇지 않다. 특히 역량개발을 위해 교육부는 전문적학습공동체를 만들면 운영비를 지원하고 교내 수업 나눔의 참여를 ‘권고’하겠다고 한다. 결국 역량 개발을 위한 정책이 책무성 관리와 인센티브 제공으로 수렴된다.

이재호 강원 양양고 교사

교사 학습자 주도성 촉진, 교실에 힌트

교육부가 2028 대입 시안에서 언급한 ‘모든 고교 교사의 혁신적 평가 역량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역량개발’을 충실히 지원해야 한다. 정책에서 강조하듯 학교 단위 수업 나눔이 활성화되는 전문적학습공동체는 강력한 학습 조직이다. 그러나 수업 나눔이 자발적으로 이뤄지기란 어렵다. 교사라는 학습자의 주도성 촉진 여부에 이 정책의 성패가 갈리는 것이다. 그런데 정책에 ‘자율’이 들어갔음에도 교사의 자발적 참여를 촉진해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가. 학습자주도성의 개념으로 바라보니 이유가 보인다.

‘학습자 주도성, 미래교육의 거대한 착각(남미자 외)’에서 저자는 학습자 주도성을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자신의 개별성과 독특성을 유지하면서 함께-서로-존재할 수 있도록 비강제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공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학습자 주도성에서 중요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며, 방향성을 제시하고 이끄는 것은 공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한다. 학습자 주도성의 발현을 이끄는 다양한 맥락 가운데 결정적인 요소로 ‘교육적 개입’을 꼽는다.

현장 교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적어도 인센티브가 교육적 개입이 아니라는 것은 명료하게 판단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욕망을 공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라는 학습자 주도성의 정의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교사로서 주도성을 높이기 위한 수업의 과정은 교육부가 교사의 자율적 참여를 강조하며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과 크기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 ‘학습자주도성’의 신장이다. 그렇다면 교육부는 학습자로서의 교사 주도성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 수립 시, 교사가 학생들의 주도성을 촉진하기 위해 설계한 교실 수업상황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교사들이 여전히 교직에 남아 있는 이유는

주도성에 대한 오개념은 한때 수업에서 교사의 역할을 배제하고 학생이 ‘알아서’ 학습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불렀다. 교육부는 경쟁적 대입 정책이 바뀌지 않았고, 나아가 능력주의 사회가 그대로임에도 교사가 ‘알아서’ 혁명을 이끌라고 해서는 안 된다. 교육부는 인센티브가 아니라 ‘교육적 개입’으로 교사를 지원해야 한다. 혁신적 수업과 평가를 실천하려는 교사를 민원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그 예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중점은 ‘주도적인 사람’을 기르는 데 있다. 주도성을 높이는 수업을 위해 교사는 배움의 이유를 세심히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교육 변화를 위해 교육부는 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이 어디인지, 무엇을 위해 수업과 평가를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 교육 주체들을 설득하고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이 어떻게 좋아지는지 설명해야 한다.

주도성을 고려한 비전의 적합성에 대해서도 재고가 필요하다. ‘교사가 이끄는 교실혁명.’ 교사가 직접 교사의 목소리로 교실혁명을 이끌겠다는 것이 아니라 교육부라는 주체가 나서서 교사가 교실혁명을 이끌도록 하겠다는 이 비전에는 학습자로서의 교사 주도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는 현 정책이 학습자로서의 교사 주도성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근본 원인일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 교육을 만들어낸 68혁명은 대학 기숙사에서 연애를 금지한 것에 반발하는 학생들로부터 촉발되었다. 결국 혁명의 주체는 차세대의 아이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혁명을 논하면서 아이들을 빼놓고 있다. 아이들이 주도적인 학습자로 성장해야만 혁명은 일어난다. 교사는 교사대로, 교육부는 교육부대로 주도적인 학습자가 되어야만 진정으로 혁명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장교사로서 지난해 교직을 떠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교직에 남은 이유가 있다. 공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믿음,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하며 그 안에서 교사 또한 주도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 때문이다. 부디 교육 정책이, 교사가 여전히 교직에 남아 있는 이유에 초점을 맞춰 집행되기를 바란다.

이재호 강원 양양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