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4월 28일은 ‘산재 노동자의 날’

2024-04-18 13:00:02 게재

1993년 5월 10일 오후 4시 즈음 태국 나콘 파톰(Nakhonpathom)주에 있는 한 공장에서 불이 났다. 담뱃불에서 시작한 불은 삽시간에 번졌다. 봉제인형을 만드는 이 공장에 천과 솜, 플라스틱 등 불에 타기 쉬운 재료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케이더 그룹(開達集團)은 마텔과 같은 외국 회사의 주문을 받아 디즈니 캐릭터나 심슨 봉제 인형 등을 생산하고 있었다.

이 화재로 188명이 목숨을 잃었고, 469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참사로 60여명의 아이가 고아가 됐다. 188명 희생자 가운데 186명이 여성이었다. 하루 125바트(약 4000원)의 저임금으로 노동을 시키는 공장에는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하고 어린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일하는 여성들이 인형을 훔쳐갈 수 있다며 공장 문을 외부에서 잠궈 탈출하기 힘들었다. 담배로 불을 낸 직원은 징역 10년형을 받았지만 공장문을 걸어 잠근 공장주와 관계자들은 벌금형에 그쳤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96년 4월 28일,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촛불이 켜졌다. 케이더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촛불이었다. 당시 유엔본부에서 매년 ‘지속가능한 발전위원회’에 참석했던 국제자유노련(ICFTU) 대표들이 케이더 공장 산재 희생자들을 잊지 않고 나섰다. 노동자들이 산재로 희생을 당하는 현실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은 없기 때문이다.

유엔본부 앞에 켜진 추모의 촛불

국제노동기구(ILO)는 2003년부터 4월 28일을 산재 희생 노동자를 추모하고 산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기념일로 삼고 있다. 태국은 1993년 5월 10일을 법정 ‘산재 사망노동자 추모의 날’로 지정했다. 이외에 대만 캐나다 미국 영국 등 19개 국가도 산재 노동자의 날이라며 법정기념일로 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15살 문송면군이 수은중독으로 목숨을 잃은 사례를 들어 매년 7월을 ‘산재추방의 달’로 정해왔다가 2002년부터 4월을 산재추방 운동 기간으로 삼아왔다. 근래에 4월 28일 ‘산재 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법정기념일인 ‘산재 노동자의 날’로 제정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산재는 계속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2023년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잠정)’를 보면 2023년 사고사망자는 598명, 사망사고는 584건이었다. 매년 500~600명이 산재사고로 희생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1년 1월부터 지난 9월까지 총 2292명에 대한 산재 신청이 승인됐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1843명이었는데 전체의 80.4%다. ‘산업재해 현황 분석’(고용노동부)을 보면 2022년 업무상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874명인데 이중 365명(41.7%)이 5~49인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50인 이상 사업장(167명)의 2배 이상이다. 2023년 3분기까지 재해 사망 사고는 449건이고 이 가운데 50인 미만 사업장이 261건이어서 50인 이상 사업장(188건)의 1.3배가 넘었다.

소규모 업체들은 산재 예방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움 정도가 아닌 목숨이 달린 것이다. 산재예방도 중요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 강화도 필요하다. 특히 50인 이하 소규모 작업장에 대한 담당 조사와 수사 인력이 매우 부족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강화할 필요

중대재해처벌법은 ‘업무상 사고’와 ‘업무상 질병’을 수사대상으로 삼는데 겉으로 명징한 ‘업무상 사고’와 달리 잘 드러나지 않는 ‘업무상 질병’은 증명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홀대해서는 안된다.

김헌식 중원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