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입법, 국민생활 불편없게 개선해야

2024-04-18 13:00:02 게재

우리나라 법률안 통계를 보면 1950년에 119개였던 법률이 이제 1600여개에 달한다. 법률안 제안건수도 14대 국회까지 1000건 미만이었으나, 21대 국회에서는 2만5000여건에 달할 정도로 대폭 늘어났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헌국회에서 정부발의 법률안은 전체 제안건수의 58% 수준이었으나, 21대 국회는 3.2%에 불과하다. 법률의 제・개정에 있어 정부보다 국회의 역할이 강화되어가는 추세를 엿볼 수 있다.

입법량 늘고 낮은 품질로 국민생활 혼선

입법은 헌법상 국회의 고유권한이고 국회의원과 정부는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으므로 의원입법을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의원입법이 늘어나는 이유로 정부부처 공무원이 국회에 청부입법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이는 정부 내 법률입안절차가 길고 복잡하며 입법과정에 부처 간 갈등이 첨예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급격한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법률이 신속하게 제・개정되는 것은 중요하다.

문제는 의원제출 법률안이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고, 공청회 같은 국민의견 수렴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로 의정성과 부풀리기식 법률안 제출이 남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법률안 제출이 날로 늘어나면서 입법비용은 차치하고, 내용이 어렵고 법률 간의 일관성 결여로 인해 국민과 경제생활에 혼선을 주는 경우도 잦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더라도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결국 기업인들에게는 사업기간을 장기화하고 경제적 비용만 늘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입법과 집행체계 전반에 걸친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보다 정교한 입법을 위해서는 전문성을 가진 정부입법이 활성화되도록 입법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정부부처 간의 정책프레임 차이로 인한 갈등을 원활히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의원입법보다 대개 긴 시간을 요하는 국민의견 수렴절차 또한 디지털시대에 맞게 충분하면서도 빠르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둘째, 의원입법은 보다 신중해져야 한다. 의원입법 과정에도 국민의견이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고 운영을 개선해야 한다. 법률 제·개정의 의미가 크지 않은 조항 한두개를 고쳐 발의건수를 늘리는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 이미 관련 법률이 존재하고, 정부정책으로 추진 가능한 사안마저도 의정성과를 위해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하는 관행도 바로잡아야 한다.

셋째, 입법분권화가 필요하다. 하위법령에 규정될 사항이 국회권한을 이유로 의원입법화하지 않도록 해야 수시로 변하는 사회적 요구에 보다 원활하게 대응할 수 있다. 지방분권화 추세에 맞춰 시민생활과 밀접한 입법은 조례에 적극 위임해야 한다. 공동체 안에서의 자율적 협력과 관련된 사안은 권력작용보다 구성원간의 협정방식이 활성화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넷째, 어떤 형태의 입법이든 규율하는 내용이 명확해야 한다. 수시로 고치는데도 건축행정 관련 질의답변 민원은 연간 2만여건에서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민간임대주택 분양가를 둘러싼 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다. 어려운 법률 용어를 쉽게 고치고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무원에게 재량권을 주더라도 권한이 남용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법령해석 또한 명확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입법 절차방식내용 선진화해야

법률은 곧 정책이고 정책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다. 그것이 규제건 규제완화건 간에 정확한 의사소통 및 신속한 문제해결의 수단이 되어야 제도를 관장하는 통치기구에 대한 신뢰가 쌓인다. 입법 환경 개선, 입법 품질 제고가 필요한 이유다. 또한 입법 분권화로 집행이 보다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체제를 갖추어야 운영비용이 최소화될 수 있다. 그것이 입법개선을 통한 선진화의 길이자 정부와 국회의 존재이유다.

유병권 서울시립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