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주 2회 외출 “우울증 많이 없어졌다”

2024-04-19 13:00:10 게재

구로구 중장년 1인가구는 ‘중꺾마’

동네보물 찾고 반찬 만들어 나누고

“페르시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래요. 그림체가 취향에 맞아서 골랐어요. 여기저기 봄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니, 느낌이 좋아요.” “28분이면 나를 바꿀 수 있대요.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감동을 주고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거예요. 책을 보니 욕심이 나요. 여기서 다 읽고 가야겠어요.”

중꺾마 사업에 참여하는 1인가구 주민들이 자신을 담은 책을 한권씩 찾아와 공유했다. 사진 구로구 제공

서울 구로구 고척동 돔구장 지하에 위치한 서울아트책보고. 예술분야 책을 매개로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복합문화공간에 고척동과 궁동 등지에서 사는 중장년 1인가구들이 모였다. 전문서점부터 중정광장 전시관 열람실 북카페 등 시설을 함께 둘러본 뒤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책을 한권씩 찾아온 참이다. 표지나 제목에 담긴 자신을 찾아내 동료들과 공유하는 시간이다.

19일 구로구에 따르면 구는 중장년 1인가구 주민들이 고립감을 덜고 이웃과 관계망을 형성하도록 ‘중꺾마’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화요일마다 상담 교육 식사모임 반찬지원 지역탐방 나들이 등을 함께하며 생활 역량을 강화하고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는다. ‘중꺾마’는 ‘중년의 꺾이지 않는 마음’을 뜻한다.

구로구 전체 주민 가운데 혼자 사는 1인가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2018년 전체 가구 수 대비 36.5%였는데 2022년에는 41.4%로 늘었다. 1인가구 10명 중 4명 이상(42.3%)은 40~60대 중장년층이다. 구는 복지관 등을 연계해 숨은 1인가구를 발굴하고 면담을 거쳐 사회 복귀를 희망하는 주민들을 중꺾마로 엮었다.

동네 나들이는 1인가구 주민들이 집 밖에 나왔을 때 가볼 만한 곳을 함께 찾는 과정이다. 지난해 50플러스센터와 항동 푸른수목원, 지(G)밸리 산업박물관 등에 이어 올해는 아트책보고를 첫 방문지로 택했다. 황산하 구로가족센터 사회복지사는 “독서는 1인가구 주민들에게 있어 유일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며 “당초 도서관을 방문할까 했는데 너무 딱딱한 느낌이라 편안하고 열린 공간인 아트책보고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고척돔구장은 알지만 책보고는 모르는 주민들이 많다는 점도 작용했다.

아트책보고를 시작으로 매달 한차례 나들이를 한 뒤에는 ‘구로1지도’를 만들게 된다. 방문한 공간과 인근에 있는 맛집 소개에 각자 참여소감을 더하는 식이다. 동네에 있는 보물, 자신만의 보물을 찾고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우리동네 보물지도’라는 이름도 붙였다. 연말이면 소식지 형태로 제작해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이웃들에게도 추억을 나누어준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더해 반찬을 만들어 나누는 ‘씽글벙글 반찬’이나 혼자서는 해먹기 어려운 음식을 함께 조리하고 식사하는 ‘함밥웃음'에도 참여한다. 간단한 체조 등 체육활동, 정기적인 상담을 하며 주민들이 스스로를 돌보고 서로를 돌아보도록 한다.

2년째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백경윤(64·고척동)씨는 스스로가 밝아지고 긍정적이 됐다고 평가한다. 그는 “처음에는 남녀 구분해서 자리에 앉고 서먹서먹 했는데 가족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며 “화요일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박현수(57·궁동)씨도 “전에는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지금은 주 2회 이상 외출을 한다”며 “우울증이 많이 없어졌다”고 진단했다.

문헌일 구로구청장은 “중장년층은 어르신이나 청소년들에 비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며 “경제적 여건을 떠나 사회적 고립으로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역사회 역량을 총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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