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규제완화, 서울 재건축 공공성 ‘위기’

2024-04-22 13:00:03 게재

공공기여 완화하고 용적률은 대폭 상향

재건축 시장 위기에 각종 기준 전면 해제

법개정·공사비 발목, 명분·실리 다 놓친다

공사비 갈등 심화 등 재건축 시장에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서울시의 대응에 관심이 모인다.

22일 내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서울시는 최근 기존에 고수하던 재개발·재건축 관련 각종 기준을 대거 완화하고 있다. 공사비 상승 등으로 위축된 시장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서다.

시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재개발·재건축 사업지원방안’이 대표적이다. 사업성을 높이고 부담금 부담을 낮춰 사업 진행에 속도를 붙이는 한편, 그간 재개발 재건축이 어려웠던 지역도 족쇄를 최대한 푼다는 계획이다.

시 정책과 연계된 시설을 도입하는 경우 준주거까지 용도지역을 상향해주고 허용용적률 인센티브도 두배로 올려주기로 했다. 분양주택 수를 늘려 공사비 인상으로 생긴 부담금을 줄여 주려는 시도다.

7~8개에 달하던 각종 심의 절차는 한데 묶는다. 이른바 통합심의를 적용해 사업 지연 원인으로 지목됐던 건축·도시계획·환경·교육 등 위원회별 심의를 한번에 처리, 인허가 기간을 1년 6개월까지 크게 줄이겠다고 했다.

앞서 발표한 강북권 대개조 프로젝트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상업지역 총량제를 풀고 역세권 용적률을 최대 1200%까지 늘려주기로 했다. 사실상 규제완화를 중심으로 재건축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다.

서울시 규제완화는 정부 기조와 궤를 같이 한다. 정부는 지난 1월 10일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 경기 보완 방안’을 발표하며 규제완화 정책을 쏟아냈다. 안전진단 면제 등 파격적인 대책은 물론 재개발 노후도 요건 완화 등 정비사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각종 대책을 망라했다.

◆“지금 문제는 규제완화가 아냐” =

서울시는 물론 정부까지 나서 재건축 활성화에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시장 반응은 차갑다. 규제완화보다 더 큰 문제는 공사비 상승으로 인한 사업성 악화에 있다는 것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강남 핵심지역 일부를 제외하곤 시공사 선정을 위한 수주전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며 “조합의 요구나 서울시의 중재를 받아 들이기엔 시장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공사비 인상이 문제가 되지 않은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재건축으로 인한 추가 분담금 인상이 시급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실시된 상계주공5단지 재건축 조합장 선거에서도 핵심 공약은 시공사와 협의해 분담금을 깎겠다는 것이었다.

서울시는 공공기여 축소를 재건축 활성화를 위한 궁여지책으로 내놨지만 상황을 타개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얻는 것 없이 장기적인 서울 도시계획에 지장만 초래할 것이란 분석이다.

전직 서울시 관계자는 “재건축은 기본적으로 용적률 혜택을 받아 돈을 버는 대신 그에 합당한 기반 시설을 제공해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벌어지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용적률 혜택은 치솟고 반대로 그에 필요한 공공기여나 기부채납은 줄이면 건물 외에 도로 등 기반시설은 부족한 기형적 도시가 될 수 있다. 한마디로 도시계획의 퇴행”이라고 말했다.

●여소야대 국회, 법안 통과 미지수 =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규제완화에도 당장 재건축이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정부가 규제완화를 위해 추진하는 각종 법개정은 여소야대 국회에 막혀 통과가 불투명하다. 안전진단 통과 시기 조정을 위한 도정법 개정의 경우 벌써부터 국회 통과는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뿐 아니다. 재개발 촉진을 위해 소형주택 주택 수를 제외하고 주민 동의율을 80%로 낮추는 방안도 법(소규모주택 정비법)이 바뀌어야 가능하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현재 건설 시장은 규제를 푼다고 활성화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면서 “너무 넓게 펼친 정비사업 현장을 정돈하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 곳에 지원과 혜택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비사업 전문가인 전 서울시 관계자는 “규제는 규제대로 풀고 사업은 사업대로 막히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면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는 상황을 피하려면 현실을 감안해 냉정한 진단을 내리고 재건축 사업 전반에 대한 속도 조절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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