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원영애 극단 독립극장 대표

임시정부의 며느리, 정정화를 기억하다

2024-05-09 13:00:01 게재

6월 연극 '쉬이즈'(She is) 무대 올라 … "역사를 기억할 때, 삶은 미래로 향할 수 있어"

원영애 극단 독립극장 대표

2024년은 임시정부 105주년이 되는 해다. 6월에는 독립운동가 정정화를 그린 연극 ‘쉬이즈(She is)'(시즌 5)가 극장 씨어터쿰에서 막이 오른다. 원영애 극단 독립극장 대표는 1998년 연극 ‘아! 정정화’를 무대에 올린 이후 꾸준히 정정화를 주제로 한 연극을 무대에 올려왔다. 동시에 그는 매 시즌마다 정정화 역을 맡는 배우로 무대에 서고 있다.

원영애 극단 독립극장 대표는 연극 ‘쉬이즈’에서 화자인 ‘나’와 정정화를 함께 연기하며 1인 2역을 소화한다. 정정화는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했으며 198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원 대표는 정정화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그를 무대에 올리며 사회에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역할을 알렸다.

3일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센터에서 원 대표를 만났다. ‘쉬이즈’에 대한 소개와 함께 제작의 어려움 속에서도 독립운동가 정정화를 주인공으로 한 연극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는 소명의식에 대해 들었다.

원영애 극단 독립극장 대표. 사진 이의종

●연극 ‘쉬이즈’에 대해 설명해 달라.

‘쉬이즈(She is)’는 시즌 4 '달의 목소리'에 이은 강연식이자 다큐 형식의 연극으로, 관객들과 가깝게 긴 호흡으로 함께하는 소극장 연극이다.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화자인 ‘나’가 실제 역사 속에 들어가 정정화가 돼 백범 김 구 선생을 만나는 등 역사적 사실을 이끌어나가게 된다. 이번 시즌에서는 다양한 영상과 장르적 융합을 시도했다. 자료 영상, 창작 영상 등 다양한 영상이 역사극과 융합되고 배우가 노래도 한다. 관객들도 참여하는 참여형 연극으로 꾸며진다.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연극이기 때문에 강연과 연극적 요소를 융합해 무대에 올렸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비롯한 유럽의 경우, 나치 등 잊어선 안 될 역사적 사실들을 주제로 연극을 만들 때 강연식 연극을 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또한 일반적 무대가 아니라 돌출 무대로 극장을 변형했다. 돌출 무대는 일반 무대와 달라 배우에게 부담이 되고 일반 무대에 비해 객석 수도 줄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했다.

●정정화는 어떤 인물인가.

정정화는 1900년 태생인데 11살 되던 해 동농 김가진 선생의 아들 김의한과 혼인을 했다. 김가진 선생은 대한제국에서 대신을 지냈고 비밀독립운동조직 대동단 총재를 지낸 인물이다.

결혼하고 10년 후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죽게 된다. 김가진 선생과 남편은 그로부터 2달 후 말도 없이 상해로 망명을 한다. 정정화는 이를 나중에 알고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상해로 망명을 한다.

정정화는 상해에서 임시정부 어르신들을 살피는 것은 물론, 국내로 잠입해 독립운동 자금을 얻어 비밀 연락책인 연통제를 통해 다시 상해로 돌아가는 밀사 역할을 6차례나 해냈다. 그 어린 나이에 전대에 독립운동 자금을 몰래 숨기고 비밀 연락책을 통해 압록강 철교를 지나 신의주를 거쳐 상해로 어떻게 갔을까. 이에 그는 ‘임시정부의 며느리’ ‘한국의 잔다르크’ 등으로 불리게 됐다.

그는 밀사 역할을 하며 옥고를 치르기도 하고 해방을 맞이해서는 부역죄로 종로경찰서에 수감되며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91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칠 때까지 좀처럼 공적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 속에 살았다.

●처음 정정화를 어떻게 알게 됐나.

1997년 정정화가 쓴 자서전 ‘녹두꽃’을 우연히 처음 접하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가슴이 뜨거워지며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책을 읽고 중국에 가고 싶어졌다. 임시정부는 상해에서 시작해 중경까지 이동경로가 5800km나 된다. IMF 시절, 어렵게 돈을 모아 연출, 작가와 함께 중국을 방문했다. 당시 정정화의 아들 김자동 선생이 공항에 나와 기다려줬고 통역을 해줬다.

그렇게 중국을 방문해 일제에 저항했던 역사적 공간들을 방문하며 비애와 비감을 느꼈고 중경까지 방문했다.

이후, 정정화의 행적에 비해 그가 너무 알려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인으로 그의 삶을 무대에서 다양한 형태로 공연하며 알리고 싶은 마음에 그를 주제로 연극을 만들게 됐다.

●일본에서도 정정화를 그린 연극을 무대에 올렸는데.

2002년 ‘치마’를 무대에 올렸다. 8월은 일본이 패전을 한 달이고 우리는 광복을 맞이한 달이다. 그래서 8월에 일본에 가서 광복을 노래하고자 했다.

도쿄와 오사카에서 공연을 했는데 당시 언론에 의해 주목을 많이 받았고 일본인들의 반응도 좋았다. 모든 객석이 만석이었다. 당시 민단과 조총련이 모두 보러 왔다. 북을 통해서 상해로 이동하는 등 남이나 북이나 다함께 투쟁을 했던 것이 독립운동이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공연을 했는데 관객이 기대만큼 많지 않았다. 한국 사람으로서 씁쓸했다.

●꾸준히 정정화를 그리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역사를 알고 기억하며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사명감이 있다. 기억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기억을 하기만 해도 삶이 미래로 향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생각에 정정화를 그린 연극을 꾸준히 만들고 있다.

가난한 연극인이 연극을 통해 역사적 인물을 보여준다는 게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정부 후원을 받아 연극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극단 대표로서 늘 기업 협찬 등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럼에도 연극을 계속해서 올리는 신념은 정정화를 통해서 배웠다. 정정화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살아갔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신념이었을까.

연극을 통해 정정화를 최선을 다해 잘 표현해내서 관객들에게 많이 알리는 것이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장소: 씨어터쿰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253-7)

일시: 6월 20일~30일, 평일 오후 7시30분/토, 일요일 오후 3시/월요일 쉼

관객과의 대화: 6월 22일, 29일 오후 3시 공연 종료 이후 정정화 여사 손녀 김선현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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