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책> ‘세이빙 Mr. 뱅크스’

2014-04-15 13:42:11 게재

‘메리 포핀스’에 대한 디즈니의 아름다운 항변

가족으로 인해 가슴 아팠던 일, 큰 실수로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창피했던 일, 비겁한 거짓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줬던 일 등 누구에게나 한 가지쯤 감추고 싶은 어릴 적 기억이 있지 않을까. 그 어둡고 아픈 기억을 애써 밝고 예쁘게 포장하고 있는데 이것을 누군가가 자꾸 건드려 불편하게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영화 ‘세이빙 Mr. 뱅크스’가 꼭꼭 숨겨둔 아픈 기억을 살짝 꺼내 잔잔하게 보듬어준다.

월트 디즈니와 ‘메리 포핀스’ 원작자의 따뜻한 만남
월트 디즈니(톰 행크스)는 딸들이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명작 『메리 포핀스』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영국에 살고 있는 원작자 트래버스 부인(엠마 톰슨)을 20년 동안 쫓아다니며 설득했다. 원작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마음대로 해석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트래버스 부인은 『메리 포핀스』를 손에서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워지자 결국 월트 디즈니의 미국 초대에 응한다.
『메리 포핀스』를 뮤지컬 영화로 만들려는 월트 디즈니사와 뮤지컬을 극도로 싫어하는 트래버스 부인은 사사건건 마찰을 일으키고, 설상가상으로 트래버스 부인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릴 적 아버지와의 가슴 아픈 기억이 자꾸 떠올라 힘들어 한다. 결국 영화 제작은 파국의 상황까지 치닫고 트래버스 부인은 영국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2주간의 갈등이 헛되지만은 않았는지 이후 이들의 소통과 교감은 뮤지컬 영화 ‘메리 포핀스’를 탄생시킨다. 

주연과 조연의 완벽한 하모니
명작 『메리 포핀스』는 요술을 부리는 유모가 말썽꾸러기 아이들을 착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로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저자 P.L. 트래버스의 유년 시절과 가족에 대한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세이빙 Mr. 뱅크스’의 스토리는 트래버스의 유년 시절인 1900년대 호주와 뮤지컬 영화 ‘메리 포핀스’ 제작 당시인 1960년대 LA를 오가며 전개된다. 주연과 조연 배우들은 ‘메리 포핀스’에 얽힌 두 시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메리 포핀스』의 원작자 트래버스 부인과 월트 디즈니라는 두 실존 인물을 연기한 엠마 톰슨과 톰 행크스는 실제 인물과 싱크로율 100%에 가까운 완벽한 비주얼을 선보였다. 특히 엠마 톰슨은 깐깐하고 고집스러운 트래버스 부인으로 완벽하게 변신하기 위해 가발 대신 자신의 머리를 뽀글이 파마머리로 만드는 열정을 보였다고 한다. 톰 행크스의 월트 디즈니 변신도 손색이 없지만 표정, 말투, 몸짓으로 겉으로는 시니컬하면서도 따뜻한 내면을 틈틈이 드러내는 트래버스 부인의 모습을 보여준 엠마 톰슨의 연기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두 주연배우 외에도 어린 트래버스의 아버지 역을 맡은 콜린 파렐은 그동안 ‘마이너리티 리포트’, ‘알렉산더’, ‘토탈 리콜’ 등에서 선보였던 선 굵은 연기와 달리 시와 딸을 너무나 사랑하는 감성적인 아버지 역할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60년이라는 세월을 감성으로 연결하는 콜린 파렐과 엠마 톰슨의 완벽한 연기 하모니가 인상적이다.

강렬하고 소중한 동화 속 추억의 각색
영화 ‘세이빙 Mr. 뱅크스’의 결말과 달리 실제로 P.L. 트래버스는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 의해 뮤지컬 영화로 만들어진 ‘메리 포핀스’를 싫어했고 원작을 달리 해석한 것을 비난했다고 한다. 영화 ‘메리 포핀스’가 트래버스의 소중한 유년 시절의 추억을 각색했다면, 영화 ‘세이빙 Mr. 뱅크스’는 『메리 포핀스』가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다시 한 번 각색한 것이 아닌가. 지금은 고인이 된 『메리 포핀스』의 원작자 P.L. 트래버스가 이 영화를 봤다면 뭐라고 깐깐한 혹평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이선이 리포터 2hyeono@naver.com
내일신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