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세계문화유산에 '걸림돌' 된 돈의문뉴타운

2014-08-20 00:00:01 게재

"고층아파트, 경관 해쳐"

발굴 문화재 보호도 문제

서울시가 한양도성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지만 도심 최대 규모의 돈의문뉴타운이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층아파트가 인왕산 구간 경관을 해치는데다 건축과정에서 발굴되는 문화재 보호가 어렵기 때문이다. 문화재 보호와 개발담당 부서가 달라 내부에서도 목소리를 모으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일 서울 종로구 돈의문뉴타운 1구역 정비사업조합에 따르면 이르면 올해 말 2400여세대 아파트를 분양한다. 인왕산에서 경희궁으로 이어지는 경사면에 지상 10~21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도심 최대 규모'다. 투자자들은 솔깃할 만한 얘기지만 서울시 입장에서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잠정목록 등재까지 해놓은 한양도성 자락에 초고층 주택단지가 들어서는 게 반가울 리 없다.

뉴타운사업이 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있지만 세계문화유산 등재에는 최대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경사면을 따라 최고 21층에 달하는 아파트가 들어서면 도심에서는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 자락은 물론 인왕산 정상부 성곽 조망도 어려워질 수 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지금 상태에서)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절대 안된다"며 "다수가 성곽을 볼 수 있도록 탄력있게 층고를 조정하고 공사과정에서 나오는 문화재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도 "유네스코에서 현지 실사를 할 때 주변 경관도 중요한 요소에 해당한다"며 "국내법상 문제가 없어도 세계문화유산 가치를 보는 차원에서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주변부 개발로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무산된 사례는 아직 없다. 그러나 개발 때문에 등재가 취소되거나 취소 위기에 처한 사례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으로 주목을 끌었던 독일 드레스덴이 대표적이다. 엘베계곡 양쪽을 잇는 다리를 건설하면서 유네스코가 2009년 역사적 가치와 경관이 훼손됐다는 이유로 등재를 취소했다.

독일 쾰른 대성당도 비슷한 위기에 처했다. 2004년 성당과 마주보는 라인강 건너편 지역에 쾰른시가 고층건물을 추진하면서 '경관을 훼손할 가능성'이 제기돼 '위험에 처한 세계문화유산'으로 격하됐다. 쾰른시가 녹지확충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자 유네스코는 2006년 지정 해제를 시사했고 결국 시는 계획을 대대적으로 변경, 성당 주변에는 엄격한 고도제한을 적용하고 있다.

예멘 자비드 역사도시는 '도시화로 역사도시로서 가치를 잃고 있다'는 이유로 2000년 '위험유산'으로 등록됐다. 국내에서도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앞에 초고층건물이 들어서는 것과 관련해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이 유네스코측에 재실사를 요청하는 편지를 띄웠다.

서울시 역시 이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문화재보호와 재개발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달라 조율이 쉽지 않다. 뉴타운 진행 과정에서 한양도성 자락에서 드러난 '월암바위'가 시 문화재로 지정됐지만 보호여부는 불투명하다. 월암바위를 보호하자면 그 위쪽으로 나있는 도로 일부나 이미 조성돼있는 근린공원을 축소해야 하는데 해당부서에서 의견이 갈려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관계자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불협화음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정부 내 조율, 시민사회와의 소통이 좋은 결과물로 이어진다"고 조언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온전하게 보존된 구간, 재현·복원 구간, 멸실구간이 혼재돼있어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절충해 문화유산으로서 최고 가치를 발현할지가 관건"이라며 "자문위원회에서도 등재 구역을 정하는 문제부터 주변 개발을 어디까지 제어할지 계속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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