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태운 발전온배수가 재생에너지?

2014-09-19 10:12:53 게재

온배수 재생에너지 분류는 국제기준 '무시' … "RPS(신 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 의무량 채우기 위한 꼼수"

박근혜정부가 발전소 온배수를 신·재생에너지로 지정하려고 하자 환경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화석연료에서 파생된 온배수를 재생에너지로 인정하면 석탄을 더 태우라는 소리밖에 안 된다는 주장이다. 발전소 온배수란 화력발전이나 원자력발전 시 엔진과 장비의 열을 식히기 위해 사용한 바닷물이 폐열을 흡수해 고온으로 배출된 상태를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발전소 온배수를 신·재생에너지로 인정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국제기준 상 재생에너지는 자연에서 얻는(생물 기원) 에너지다.

환경단체들은 "국제적인 기준을 무시한 채 정부가 발전소 온배수를 신·재생에너지로 둔갑시키려 하고 있다"며 "이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 의무량을 채우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2012년에 도입된 RPS는 대형 발전사들이 전력 생산량의 일정 규모 이상을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과징금을 내야 한다.
정부가 발전소 온배수를 신·재생에너지 영역에 포함시키려고 하자 환경단체들이 국제기준에 반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강원 영월군 영월태양광발전소의 태양광을 전기로 만들어주는 모듈시설.


◆발전소 온배수가 신·재생에너지인 국가 '0'= 환경단체들의 연합체인 에너지시민회의는 18일 발전소 온배수를 신·재생에너지로 포함시키려는 정부 움직임을 규탄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에너지시민회의에 동참한 환경단체들은 기후변화행동연구소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환경정의 녹색교통 등이다.

에너지시민희의는 성명서를 통해 "발전소 온배수는 태양에너지나 풍력, 지열 등과 같은 재생에너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를뿐더러 기존 화력발전소에서 다량 배출되는 온배수가 신에너지일리도 없다"며 "이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대체할 수 있는 무공해 에너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는 개념이 다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등과 달리 생물 기원이 아닌 산업폐기물, 비재생도시폐기물 등을 재생에너지에 포함시킨다. 분해가 불가능한 비재생폐기물을 재생에너지 영역에 넣은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국제기구 등과 달리 화석연료를 변환시켜서 이용하는 에너지도 신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신·재생에너지에 포함시킨다. 국제기구에서 통용되는 '재생에너지' 개념과 달리 우리나라만의 별도 기준을 세운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발전소 온배수까지 재생에너지 영역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발전소 온배수를 신·재생에너지원으로 인정하는 '신·재생에너지법 시행령 개정령(안)'을 지난 7월 입법예고 했다. 또한 발전소 온배수를 인근 농가에 공급할 경우 RPS 의무이행으로 인정하고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발급할 계획이다. 발전사들은 빠르면 내년부터 자체 발전소에서 나오는 온배수를 RPS 이행실적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노건기 산업통상자원부 신재생에너지과장은 "재생에너지 정의는 해당 국가의 부존 자원 상황에 맞춰서 정해야 한다"며 "각 국가의 특성을 무시한 채 국제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노 과장은 "일본은 다른 나라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온도차 발전을, 핀란드는 이탄을 신·재생에너지로 지정하고 있다"며 "재생가능성과 비고갈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발전소 온배수를 신·재생에너지 영역에 포함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전사업자 입김 적용 의혹"=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는 발전사업자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에너지시민회의는 "RPS 공급의무 비율을 발전소 온배수로 채우려는 것은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포기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라며 "이는 RPS 의무 이행량을 채우기 힘들다는 발전사업자들의 하소연을 정부가 그대로 수용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 동안 발전사들은 육상 풍력발전 환경규제, 조력발전 민원 등으로 RPS 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끊임없이 호소해왔다. 2012년과 2013년 RPS 의무이행 실적 현황을 보면, 태양광을 제외한 비태양광 부문의 이행 실적은 각각 63.3%, 65.2%에 불과했다. 남동 중부 서부 남부 등 발전공기업 다섯 곳에서 RPS를 지키지 못해 올해 내야 할 과징금은 6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에너지시민희의는 "발전사업자가 RPS 공급의무비율 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정부가 '꼼수'를 만들어 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 과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발전사들이 발전소 온배수로 RPS 의무 이행량을 얼마나 채울지는 아직 알 수 없다"며 "발전소 온배수 활용도가 높아지려면 큰 열원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 함께 일어나야 하는데, 이 역시 어느 정도 규모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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