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가 추천하는 오늘의 책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씨앗은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

2014-10-10 11:44:57 게재
시대의창 / KBS스페셜 제작팀 지음 / 정현덕 기획 ; 장경호 엮음

'크리스마스트리로 유명해진 구상나무는 지구상에서 한라산에만 자생하는 고유종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초, 미국으로 종자가 유출되어 개량된 후부터는 오히려 우리가 미국에 로열티를 헌납하며 구매해야한다.'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초국적 종자회사들이 특허권을 내세워 많은 종자들을 독점하고 있는데서 오는 상황이다.

'농사꾼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종자를 베고 굶어 죽을지언정 결코 먹어 없애지 않는다'는 옛말에서 보듯 농민에게 종자는 매우 중요한 자산이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뚜렷한 사계절이 있어 다양한 종자를 자랑했다.

그렇다면 2014년, 우리의 종자는 안전한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세계는 종자를 둘러싼 소리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GMO의 위협, 자살하는 농민들

책의 서두는 충격적이다. 면화의 생산지 인도는 30분마다 1명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인도 농민들에게 일어난 이 비극은 급격하게 늘어난 부채로 인해서다. 미국의 거대 다국적 기업 몬산토는 유전자가 조작된 비티(bt)면화를 팔면서 생산비 절감을 홍보했다.

하지만 이 면화씨는 결과적으로 더 많은 농약을 필요로 하게 됐고, 고스란히 농민에게 지워진 빚이 되었다.

이를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일이었는데, 면화 종자생산기반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기업이 파는 비싼 종자를 매해 새로 살 수밖에 없었다.

책에는 종자의 덫에 갇힌 농민들의 여러 모습을 담고 있다. 과연 이것은 농민들만의 비극인가?

우리나라 것은 모두 신토불이?

청양고추는 청송과 영양에서 한 글자씩 따온 이름이다. 하지만 더 이상 청양고추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종자의 특허권을 몬산토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몬산토는 현재 우리 식탁에 자주 오르내리는 무, 배추, 고추, 양파, 오이, 당근과 같은 종자를 소유하고 있다.

특히 재배되는 감귤의 99%, 포도 98%, 토마토 90%가 외국산 품종이다. IMF를 계기로 대부분의 종묘회사가 다국적 종묘회사로 넘어가면서부터 생겨난 일이다.

우리 땅에서 난 식재료를 먹는 데에도 어마어마한 로열티를 외국에 지불해야만 한다.

'신토불이'는 옛말이 되어버렸다. 사실상 종자 식민지에 가까운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 많던 씨앗들, 어디로 갔을까

우리들의 먹거리는 기업의 편익으로 인해 단순한 노동력 생산수단으로 전락했다.

종자는 기업에게 생명을 담고 있는 씨앗이기보다는 생산물을 위한 원료에 불과하다. 기업의 탐욕으로 인해 수천 년간 진화를 거듭한 종자들이 사라지고 있다. 책은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화두를 던진다.

'씨앗은 기업이 개발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가, 수천 년 동안 농민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 내려온 인류 공동의 유산인가.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과 마주할 때마다 이 물음을 곱씹으며 생각해 볼 문제다.

독자들은 아마 이 책을 통해 종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것이다. 더불어 책의 행간에서, 씨앗이라는 단어가 주는 생명의 의미를 느끼리라 본다.

김혜린 국립중앙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