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인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편집장 이인규

2015-01-15 17:19:32 게재

재건축아파트 속 사람이야기 기록하는 아파트키드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낡디 낡은 재건축 아파트를 향한 사람들의 솔직한 속내다. 허나 부동산이 아닌 집의 관점에서 아파트 스토리를 기록하는 이가 있다. 주인공은 강동의 둔촌키드로 자란 이인규씨(33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처럼 그는 둔촌주공아파트를 추억의 ‘꽃’으로 되살리는 중이다. 

 2013년 5월 첫 선을 보인 매거진북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에는 꼬맹이 이인규의 모습과 80년대 아파트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1982년생인 그는 둔촌주공에서 나고 자란 아파트키드다.

 나의 살던 고향 ‘아파트’ 잡지에 담다
 “곧 재건축이 될 테니 추억을 기록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게는 둔촌아파트가 즐겁고 푸근한 고향이니까요. 어찌 보면 아파트를 차가운 콘크리트의 성냥갑으로 비하하는 고정관념에 내 나름의 삐딱함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요.”
 1979년 지어진 6000여 세대의 둔촌아파트가 어린 시절 그에게는 가족, 친구, 이웃, 학교, 놀이터 같은 소중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우주’였다. 그 시절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 글쓰기와 사진 작업, 편집디자인까지 6개월 꼬박 작업해 자비출판으로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를 펴냈다.
 페이스북(/hibyeDCAPT)에 잡지 발간을 알리자 반향은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모두들 같은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둔촌키드’들이었다.
 “둔촌아파트에는 20년, 30년씩 산 사람들이 많아요. 나와 비슷한 코드를 가진 아파트키드들이 내가 벌인 ‘판’에 뜨겁게 반응하더군요. 3000명의 페북 친구들은 추억을 담은 장문의 글과 옛 아파트 사진을 올리며 둔촌의 추억을 공유했어요. 힘들 때마다 고향 같은 둔촌아파트를 찾아 힘을 얻는다는 고백부터 어릴 때 살던 424동 사진 좀 찍어서 올려달라는 외국에 살고 있는 젊은이의 부탁까지 사연도 각양각색이지요.”

둔촌아파트키드들의 ‘좋아요’ 봇물
 추억의 물꼬가 트이자 SNS를 타고 새로운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의 펀딩을 받아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두 번째 잡지가 출간됐고 2014년 3월에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기획전시에 시민 큐레이터로 참여해 둔촌아파트 이야기를 풀어냈다.
 덕분에 특별한 인연을 계속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아파트 공화국>을 쓴 프랑스 작가 발레리 줄레조로부터 의미 있는 작업을 한다는 격려의 이메일을 받는가 하면 공공건축가 정진국 한양대 건축과 교수와 특별한 만남도 가졌다.
 “현재 둔촌재건축에 참여하는 정교수님과 아파트 공동체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공감하는 가치들이 실제 들어설 아파트 예상 조감도에 반영도 됐고요. 많이 기쁘죠.” 이씨의 둔촌프로젝트는 아파트 주민뿐만 아니라 건축가, 도시학자, 사회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커리어 쌓기에 한창 몰두할 30대에 돈키호테적 발상을 실천에 옮기며 ‘하고 싶을 일’에 골몰하는 ‘인간 이인규’에 호기심이 일었다.
 “대학시절 이후 줄곧 ‘집, 공간’이 내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더라고요.” 연세대에서 생활디자인, 주거환경을 전공한 그의 첫 직장은 건축자재회사. 국내외 주거디자인 리서치를 위해 전국의 모델하우스를 샅샅이 훑으며 주거 트렌드를 모니터링하며 보고서를 썼다. 대형 광고대행사로 옮겨서도 공간 디자인 기획 일을 계속 하고 있는 중이다. 자연스럽게  주거공간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는 안목이 길러졌고 그 힘으로 1인 잡지 아이디어를 냈다.




 ‘마을에 숨어’ 아지트 만들어 주민들과 소통
 최근에는 아파트 주민들과 특별 이벤트까지 열었다. “높이 5m의 기린 모양의 미끄럼틀은 둔촌아파트의 상징인데 안전 문제로 철거하게 됐어요. 아쉬운 마음에 페이스북에다 불꽃놀이로 작별인사를 하자고 글을 올렸는데 그날 밤 100명이 넘게 모였어요. 서로서로 불꽃과 불꽃을 이으며 손편지를 적으며 기린 미끄럼틀을 보내는 아쉬움을 나눴죠.” 1월에 발간된 세 번째 잡지에는 이 같은 사연들이 차곡차곡 담겨있다.
 둔촌아파트 상가 3층에다가 아지트도 마련했다. “둔촌(숨을 遁, 마을 村)이란 지명은 고려 말 학자 이집 선생이 신돈을 피해 숨어 산 데서 유래했어요. 역사에서 힌트를 얻어 공간 이름을 ‘마을에 숨어’로 정했지요.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아티스트를 초대해 기타, 일러스트, 캘리그라피 강좌를 매주 열고 토요일 오후에는 공간을 오픈하고 있다. 그의 둔촌 프로젝트는 지난 12월 문체부 주최 ‘2014 문화디자인 지원사업’에서 대상까지 받으며 ‘사회적 의미’를 인정받고 있다.
 “3호까지 나온 잡지는 둔촌아파트가 재건축될 때까지 계속 발행할 겁니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의 ‘안녕’은 굿바이(Goodbye)인 동시에 하이(Hi)라는 중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재건축이 단절이 아니라 추억의 이어짐이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았지요.” 둔촌 기록 대장정에 나선 그의 멋진 한마디였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사진 : 이인규, 김기수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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