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실 업무보고 대기줄이 사라졌다

2015-08-11 10:34:17 게재

동작구 대면보고·종이회의 없애

서울시 행정시스템 바꿔 효과 톡톡

오후 5시. 단체장 집무실 앞에서 업무보고용 서류를 끼운 결재판을 든 채 순서를 기다리는 국장 과장 팀장. 지자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전결권한이 구청장에게 있는 업무 관련 보고를 하고 서명을 받기 위해서다. 서울 동작구는 다르다. 구청장실은 물론 국장실에도 업무보고 대기줄이 없다. 행정시스템을 바꿔 대면보고와 종이회의를 없앴다.

동작구가 모든 결재과정을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업무시스템을 도입,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다. 이창우 구청장이 집무실에서 노트북으로 결재를 하고 있다. 사진 동작구 제공


1년 전만 해도 동작구청장실 풍경은 여느 지자체 단체장실과 마찬가지였다. 이창우 구청장이 취임하면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사용하던 전자업무관리시스템을 떠올리며 서울형 시스템을 동작형으로 바꾼 '동작 이(e)지'를 도입했다. 부서간 '칸막이'가 높은데다 의사결정을 위한 토론과정도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선 '토론문화'를 정착시켜야겠다 싶어 부서별로 돌아가며 구청장부터 직원까지 참여하는 연쇄 토론회를 열었다. 부서별 평균 3시간 34개 부서를 모두 돌았고 부서별로 팀장급 직원들을 혁신담당관으로 지정해 조직 내 문제점을 스스로 진단, 개선점을 찾도록 했다.

직원 치유 워크숍에서는 정치 경제 시사 등 자유로운 주제를 정해 극한토론 대결 '썰전'을 펼치기도 했다.

조직문화 개선과 함께 업무체계를 바꾸기 위해 1년여간 준비해온 게 '동작 이지'다. 지난 6월 한달간 시범운영을 거쳐 7월 전격 도입했다. '동작 이지'의 가장 큰 특징은 정책결정 과정이 모두 온라인으로 처리되고 각 단계를 거치면서 나온 모든 의견이 그대로 기록된다는 점이다.

올해 10월 설립 예정인 '동작구 어르신 행복 주식회사' 준비과정만 해도 당초 문서 기안은 한상혁 사회적경제팀장이 했고 민영기 일자리경제담당관이 1차 결재를 했다. 민 담당관은 결재와 동시에 '조례 제정과 정관 작성 등 회사설립 절차를 조속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붙여 어르신복지과장과 청소행정과장 기획예산과장 주민생활복지국장 기획재정국장 행정관리국장까지 병렬협조 요청을 했다. 부구청장 검토와 함께 의회에 충분한 협조요청을 하라는 의견을 덧붙인 구청장 결재까지 만 하루만에 끝났다.

반려된 문서도 삭제는 안된다. 서울형 업무관리시스템에서 이력관리 기능을 강화, 문서 기안자가 임의대로 정책결정 변화과정을 없애지 못하도록 했다. 결재자나 협업부서에서 붙인 의견도 지울 수 없다. 의사결정에 책임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회의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진행한다. 어느 회의건 큰 화면에 회의자료를 띄워 논의하고 그 자리에 나온 의견은 바로 기록한다. 결재가 끝난 다음날이면 전 직원들이 보안문서를 제외한 전체 문서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대신 당초 보고문서 작성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해 '보고서 표준 양식 작성 기준'을 마련했다. 행사 기획 동향 등 분야별 양식을 별도로 마련해 직원들이 참고하도록 했다. 부서별 혁신담당관은 매달 한차례 '이달의 보고서'를 선정, 전자업무시스템에 공개한다.

정책결정 과정을 바꾸면서 업무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직원들 부담이 줄었다. 각 부서를 찾아가 업무협조를 요청해야 하는 불편도 사라졌다. 이해남 홍보전산과 주무관은 "담당 직원 입장에서는 업무가 훨씬 편해졌다"며 "특히 여러 결재과정을 거치면서 정확한 지시사항이나 지적사항이 뭔지 애매해지는 일이 없어졌다고들 한다"고 전했다.

인사고과나 승진 시기에 구청장에게 '얼굴 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관례상 초기에는 반발도 있었다.

이창우 구청장은 "1주일 이상 결재가 올라오지 않아 담당 부서장에게 확인을 했더니 온라인 결재로는 못하겠다고 하더라"고 돌이키며 "새 시스템이 자리잡게 되면서 종이보고서가 사라졌고 부서간 장벽이 허물어졌다"고 말했다. 이 구청장은 "아직까지 사용자가 시스템에 맞춰야 하는 부분이 많다"며 "시와 구가 함께 업무관리시스템을 고도화하는 전담반을 꾸린다면 직접 팀장을 맡을 용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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