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문 뉴타운 강제철거에 세입자 분신

2016-04-14 11:02:23 게재

또 터진 뉴타운의 비극 … 낮은 보상비, 대책없는 재개발, 강제집행으로 '참사' 재연

서울 종로구 돈의문 뉴타운 지역에서 강제 퇴거에 항의하던 상가 세입자가 분신자살했다. 낮은 보상비와 대책없는 강제철거로 무수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던 뉴타운 사업이 또다시 '참사'를 낳은 것이다.
서울시는 돈의문1구역 조합으로 부터 기부채납 받기로 한 근린공원을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강제철거에 반대하는 상가세입자들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남준기 기자


16년째 장사하던 곳 강제퇴거에 격분 = 13일 돈의문 뉴타운 지역에서 일식집을 경영하던 고 모(68)씨가 분신 자살했다. 고씨는 전일 오후 1시 20분쯤 자신이 운영했던 일식집에서 명도집행(명도소송후 강제집행)에 항의하면서 인화물질을 몸에 뿌린 후 분신했다.

고씨는 화상전문병원인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하루를 넘기지 못한 채 13일 오전 7시 50분 경 사망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철거용역회사 한 직원은 "이날 명도집행은 오후 1시쯤 시작됐는데 고씨는 이 사실을 모른 채 가게에 왔다가 강제퇴거가 집행되는 것을 보고 격분하며 가게 근처에 있던 인화물질을 몸에 뿌리고 불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과거 철거가 시도될 때 고씨가 시너를 사서 창고에 두는 것을 봤다'는 가족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유가족에 따르면 고씨는 1999년부터 16년째 돈의문 지역에서 일식집을 운영해왔다. 처음엔 아내와 함께 영업하다 식당이 자리를 잡자 직장에 다니던 아들이 합류해 함께 가게를 꾸려왔다. 하지만 뉴타운 사업 추진으로 권리금 등 재산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내쫓길 상황에 처하자 고씨는 세입자 대책위위원장까지 맡으며 뉴타운 재개발에 대한 항의를 해 왔다. 고씨는 지난주까지도 조합 측과 보상금액 등에 대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전 통보 없이 강제집행이 이뤄지고 가게 안에 있던 집기가 끄집어내진 것을 보고 화를 참지 못해 분신한 것으로 보인다.

부인 유 모씨는 "마지막 남은 협상만 잘 마무리한 뒤 재개발과 관련한 일은 다 잊고 새로 이사간 곳에서 장사에 열중할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겨 너무 황망하다"며 슬퍼했다.

"사회적 폭력이며 타살" = 돈의문 뉴타운 지역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다 강제철거를 당했던 김대수씨는 "나이 칠순이 다 된 사람에게 제대로 된 보상도 없이 20년 가까이 터 닦은 자리를 나가라고 하면 죽으라는 것과 똑같다"며 "턱도 없이 낮은 보상비를 주고 강제퇴거를 집행한 것은 명백한 사회적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김씨의 말대로 조합에서 주는 보상비와 이주비로는 인근 지역으로 가기에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실제 인근 지역에 같은 면적의 식당을 임대하기 위해서는 권리금만 해도 몇 억원이 들어가는 실정이다. 임대료 등을 포함하면 영업보상비를 받고도 최소 수억원을 추가 지출해야한다. 그런데 몇 천만원에 불과한 보상비는 세입자들이 다른 곳에서 장사를 시작하기에 터무니 없이 모자란다. 조합측에서는 돈의문 뉴타운단지 내 상가를 조합원 분양가로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평당 3000만원 대의 상가를 분양받으려면수십억원의 돈이 필요해 전혀 현실성이 없는 대책에 불과하다.

전국 대부분의 뉴타운에서 돈의문 뉴타운과 유사한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뉴타운 사업이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 때문이다. 뉴타운 사업은 민간인인 뉴타운조합에게 자신들의 수익을 위해 재건축 재개발을 추진함에도 다른 민간인의 재산을 강제수용할 수 있는 수용권(명도집행)을 주었다. 수용당하는 자의 반발이 불가피하다. 더욱이 헌법 23조 3항에 따른 '수용시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규정도 지키지 않는 낮은 보상은 필연적으로 극렬한 반발을 낳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세입자의 경우 아무런 보상없이 쫓겨나 생계를 위협받을 수밖에 없어 더욱 격렬한 반발을 하고 있다.

'용산참사진상규명과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는 "이번 사건은 이주 협의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강제퇴거를 강행한 조합과 건설사, 그리고 부동산 띄우기에 여념이 없는 정부, 인허가와 관리감독 책임을 방기한 구청과 서울시에 의한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공용수용 분야 전문가인 성균관대 경제과 김일중 교수는 "공익이라는 미명하에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재산권 침해가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많다"며 "민간수용은 더 엄격한 공익성 검증절차를 거쳐야 하고, 보상도 더 관대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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