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검색, 사전을 삼키다

네이버와 다음의 웹사전은 다르다

2016-06-03 10:16:31 게재
정 철지음 / 사계절 / 1만3000원

IT의 발달로 달라진 점 중 하나는 집에 있는 책장의 풍경이다. 책장에 1질은 있었던 백과사전이 지금은 사라졌다. 국어사전과 영어사전도 마찬가지다. 책장마다 꽤 많은 분량을 차지했던 사전들, 영어 공부를 위해 꼭 가지고 다녔던 사전들이 지금은 없어진 지 오래다.

실제로 사전 출판은 명맥이 끊기고 있다. 2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2012년 종이사전 출판을 중단하고 디지털 형태로만 콘텐츠를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브리태니커 한국어판의 경우 최근 공식적인 웹 서비스마저 중단했다.

사전 출판사들은 이미 수년 전에 편집팀을 해체했고 포털 사이트의 사전 서비스는 개정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의 '부분 수정'만을 하고 있다. 클릭 몇 번으로 수십 종의 어학사전과 백과사전을 이용하고 있지만 실제로 사전은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는 셈이다.

사전의 생존 분투기

이 책의 저자인 정 철은 IT 기업 카카오에서 웹사전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그가 다루는 콘텐츠는 웹 검색의 결과로 제시되지만 그는 자신을 '사전 편찬자'라고 소개한다. 이는 자신이 다루는 콘텐츠의 원재료인 종이사전에 대한 경의이기도 하고 검색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가 색인인 것처럼 검색이 사전, 즉 지식을 편집해 찾아보기 쉬운 형태로 묶어둔다는 개념에서 기원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사전이 지금처럼 홀대받아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전은 그 자체로도 인간이 정교하게 발전시켜 온 귀중한 문화 형식일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된 검색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지속적으로 가꿔가야 할 자산이다.

이 책에는 자신이 탐구해 알게 된 지식을 분류, 정리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사전이라는 형식을 낳고 몇몇 뛰어난 개인들에 의해 그 전통이 계승되는 과정, 그리고 디지털 시대에 종이에서 CD롬, 전자사전, 웹사전, 앱사전으로 계속해서 옷을 바꿔 입는 사전의 생존 분투기가 담겨 있다.

분투 끝에 사전은 전문가들의 손에서 불특정다수의 손으로 넘어오는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전문가들이 오랜 시간 다듬는 방식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검증하고 토론하며 수시로 갱신해가는 위키백과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사전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취해 발전한 '검색'은 사전을 통째로 삼켜 버렸다.

그러나 저자는 검색의 시대에도 사전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왜 우리가 사전에 주목해야 하는지 역사적 맥락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웹사전의 성장과 발전

다음과 네이버의 영어사전.

이 책은 웹사전에 대해서도 상당 분량을 할애한다. 저자는 수천년 사전 편찬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자칭 '최후의 사전 편찬자'이자 사전이 새롭게 얻은 가능성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최초의 웹사전 기획자'다. 그는 웹사전을 기획한다는 개념이 없던 시절, 즉 종이사전의 콘텐츠를 그대로 웹에 옮겨놓기만 했던 2000년대 초반에 경쟁 시스템을 도입한 오픈형 사전 서비스 기획안을 들고 네이버의 문을 두드렸다.

사전이 종이에서 웹으로 옮겨왔다면 웹의 언어에 맞게 체제와 형식을 바꾸고 종이에서는 구현할 수 없었던 기능들을 새로 만들어 넣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네이버 영어사전을 개편할 때는 각기 따로 존재하던 한영사전, 영한사전 및 그 밖의 사전들과 예문까지를 모두 '영어사전'이라는 하나의 범주에 묶어 함께 검색이 되도록 했다.

또 10만 어휘의 중사전 콘텐츠를 이용하던 네이버 국어사전을 국립국어원과의 협상을 거쳐 50만 어휘의 '표준국어대사전'으로 교체했다. 그 밖에 경제용어사전, IT 용어사전 등을 전문용어사전이라는 틀로 통합했다. 이는 지금 '네이버 지식백과'라는 형태로 남아 있다.

다음으로 자리를 옮긴 후 저자가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네이버의 웹사전과 다른 콘텐츠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네이버가 '표준국어대사전'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에서는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을 선택했다. 또 영어사전을 개편하면서 온라인상의 수많은 출처에서 100만건 이상의 예문을 추출해 종이사전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다. 단어의 뜻을 품사가 아니라 빈도 수를 기반으로 정렬하는 등 데이터와 언어학 지식을 활용한 서비스를 다수 도입했다.

그의 노력 덕에 네이버와 다음의 사전들은 원재료뿐 아니라 그것을 배치, 활용하는 방식도 상당히 다르다. 한국어 사용자들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만큼 다양한 사전 콘텐츠를 활용하게 된 셈이다. 하나의 사전만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므로, 다양한 사전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의 경력을 이처럼 상세히 소개하는 것은, 그의 경력이 한국 웹사전의 성장과 발전의 모습과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던 한국 사전·웹사전의 중대한 변화를 파악하게 될 것이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송현경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