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종운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안전사회소위원장

생명·안전 우선 사회 되려면 근본적 정책전환돼야

2016-10-17 10:50:17 게재

겉으로 드러난 문제점만 손봐선 재난 되풀이될 것

특조위 강제종료되며 안전사회 실현과제 미완성

보고서 초안에서 적정임금(PW)제도 등 도입 제안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9월말 강제해산되면서 남긴 아쉬움은 '아직 베일에 싸인 진상규명'만은 아니다. 특조위 근거법인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특별법)에 따르면 특조위는 참사의 진상규명과 함께 '재해·재난의 예방과 대응방안을 수립해 안전한 사회를 건설·확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특조위가 제대로 마무리되었더라면 특조위는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각종 권고를 담은 종합보고서를 작성해 국회와 대통령에 제출했을 테고, 이 보고서에서 권고를 받은 국가기관 등은 법에 따라 권고내용의 이행내역과 불이행사유를 매년 국회에 보고하게 됐을 것이다. 유가족의 한풀이나 진상규명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또다른 세월호 참사를 방지하기 위해 특조위의 활동기간 보장이 필요하다고 특조위 구성원들과 유가족들이 목청 높여 외쳤던 이유다.

사진 이의종

이런 아쉬움을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은 특조위에서 안전사회 관련 업무를 총괄해 온 박종운 특조위 안전사회소위원장이다. 특조위 강제해산 후에도 여전히 사무실에 출근해 남은 자료정리에 여념이 없는 박 위원장을 7일 만났다.

"정말 안타깝죠. 정상적인 특조위 활동이 보장됐더라면 안전사회 건설 종합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핵심과제를 선정하고, 전문가들 용역을 거치고 공론화 과정까지 거쳐서 핵심과제별 보고서가 완성됐겠죠. 또 3개월간 보장된 종합보고서 작성기간 동안 핵심과제별 보고서를 토대로 종합보고서를 작성했을 거고요. 그렇게 국회와 대통령에 종합보고서를 제출했다면 각 국가기관들이 특조위 권고에 따라 고칠 것은 고치고 하면서 안전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을 텐데…."

지난 봄 특조위를 조기종료시키려는 정부 분위기를 감지한 후 안전사회소위원회는 최대한 일에 속도를 냈다. 정상적인 활동기간보다 8개월 가량 짧아진 시간, 5/6가 삭감된 안전사회과 예산 등 열악한 환경에서 1200페이지가 넘는 '안전사회 실현과제 보고서(초안)'를 냈다. 애초 설정했던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10대 핵심과제 중 1개 과제에 대해선 아예 접근하지 못했고, 용역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된 탓에 특조위 직원들이 직접 전문가들과 180여차례 회의를 통해 각 과제를 연구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 등은 있지만 특조위 직원들과 자문위원들이 사력을 다한 결과물이라는 게 박 위원장의 설명이다.

"비록 소수 인력이 짧은 시간 내에 작성한 보고서지만 정책 개선 사항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재난 컨트롤타워와 관련하여 대통령과 청와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기업의 안전의무 및 책임성 강화를 위해 기업을 처벌하는 방안, 지방정부의 역할 및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이나 공정하고 투명한 재난조사시스템 등에 대해 조사연구한 내용을 기초로 권고사항을 담았습니다. 특히 시설이나 사회간접시설 관련해 공공부문에 미국의 프리베일링 웨이지(PW) 제도를 도입하는 데 대한 제안도 담았는데, 아직 우리 사회에 낯선 제도이긴 하지만 제대로 연구해서 한국형 PW 제도를 적용할 수 있다면 안전사회로 가는 상당히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흔히 적정임금제도로 알려진 PW제도는 미국 호주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미국은 연방·주·시 차원에서 진행하는 2000달러 초과 공공공사에 대해 지역·직종별 적정임금을 정하고 이를 인건비 원가의 기준으로 삼는다. 공사를 맡은 사업주는 공사에 투입하는 인원수를 줄일 수는 있지만 개인별 임금을 삭감할 수는 없어 말단의 건설근로자도 적정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 제도하에서는 최소한 공공공사에서만큼은 임금삭감을 통한 '제살깎기' 경쟁을 막을 수 있게 된다. 박 위원장은 "우리나라 건설업은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를 위해 다단계 하청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사업주들은 비용을 낮추기 위해 결국 인건비 따기식으로 가게 된다"면서 "그러면 숙련공을 쓸 수 없게 돼 아무리 설계가 좋아도 건축물의 품질이 떨어지게 되고, 작업과정이나 완공 후 안전 역시 열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PW제도를 도입할 경우 인건비에서 비용을 줄일 수 없기 때문에 하청의 단계를 줄인 회사가 유리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제도 도입이 고려된 바 있지만 '시장 메커니즘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박 위원장은 "이 제도는 서비스 부문에도 응용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운수노동자들에게 적용된다면 짧은 기간에 수익을 내기 위해 밤샘하며 자동차나 배를 몰며 무리할 가능성이 확연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제도 하나를 도입한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은 아니다. 10개월 남짓 재해·재난의 예방과 대응방안을 고민하며 박 위원장이 얻은 결론은 이윤·비용보다 '생명·안전이 우선인 사회'로 가기 위해선 정부나 국가가 근본적인 정책적 전환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기존에는 재해나 재난이 닥쳤을 때 책임자를 서둘러 밝히고 겉으로 드러난 문제만 손봐서 봉합하는 방식이었다면 무엇 때문에 그런 문제가 일어나게 됐는지 관행·법률 등에서 이유를 발견해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실 자본과 이윤 중심의 사회에서 생명과 안전 중심의 사회로 전환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획기적인 대변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처럼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걷는 나라에서 우리나라에선 시장 메커니즘에 반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PW제도가 도입돼 있는 것을 보면 그러기까지 뭔가의 과정이 있었다는 뜻이겠죠. 우리나라는 그런 과정을 겪지 못한 채 지금까지 왔지만 계속 이렇게 기업 이윤을 위해선 한두 사람 목숨쯤은 괜찮다는 식으로 갈 거냐, 그건 아니라는 거죠. 국민, 기업, 정부에 이르기까지 인식의 변화부터 법령·제도·관행·정책의 개혁에까지 전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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