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사람 - 당림미술관 이경렬 관장

“아버지(故이종무 화백) 유지(遺志) 받들며 사는 게 내 삶”

2016-11-01 09:57:42 게재

천안 예술의 전당에서 10월 25일(화)부터 12월 4일(일)까지 ‘이종무 화백 회고전 <INTO THE NATURE>’가 열린다. ‘한국 근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고 이종무 화백(1916~2003)은 서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다 1997년 고향인 아산에 내려와 송악면 외암리 종산에 당림미술관을 건립했다.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종무 화백의 작품활동은 계속됐고 그가 남긴 작품들은 미술사에 크게 기여했다. 많은 예술인들은 부조리에 굴하지 않고 오로지 작품 활동에 전념해 온 그를 가슴 깊이 추모했다.
당림미술관 이경렬(61) 관장은 “아버지는 정직하고 정의감이 투철하신 분이었다. 고 이종무 화백을 추모하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번 회고전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경렬 관장

고 이종무 화백의 성품과 작품세계

당림미술관은 충남 사립미술관 1호다. 이종무 화백이 귀향할 1997년 당시 아산은 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없었고 아산에 사립미술관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주목받기 충분했다. 그러나 고 이종무 화백은 물론 이경렬 관장도 미술관에 도움이 될 지라도 보여주기 위한 행사나 전시행정에 참여하지 않고 묵묵히 지역문화발전의 행보를 이어갔다.
미술평론가 이경성은 ‘이종무 화백의 창작활동 70년의 대표작과 회화세계’라는 평론서에서 이종무 화백을 “꼬장꼬장한 고지식함, 부조리를 극도로 미워하는 정의감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집중된 고집 같은 인간성을 형성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대한민국 예술원 정회원이었던 이종무 화백의 작품 세계는 “황토의식에 집약된 미의 순례”라는 표현으로 압축된다. 따뜻한 고향 같은 자연풍경을 서정적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아산의 향토시인 맹주상 시인은 “이종무 화백은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가장 부드러운 시간대의 빛으로 표현한 작가”라고 찬사했다. 덕수 이씨 이순신의 후손이기도 한 이 화백은 말년에 사심 없는 노경(老境)의 관조로 자연을 수용하며 겸허한 심상(心象)의 투영을 통해 정일한 자연을 표현했다.


이종무 화백 작업실

고 이종무 화백의 예술혼이 서린 당림미술관

이경렬 관장은 ‘당림 이종무 화백 탄생 100주년 추모전’의 일환으로 이번 회고전 이전부터 당림미술관에서 충남의 원로작가들과 중견작가들의 전시를 진행해 왔다. 이미 종료한 ‘충남지역작가 11인전’과 11월 8일(화)까지 전시하는 ‘출향작가 7인전’이 그것이다.
사실 한 자리에 거장들의 작품을, 그것도 소도시 아산에서 모으긴 쉽지 않았으나 이종무 화백을 추모하는 많은 작가들이 적극 참여해주었다. 극사실화의 대가 최효순, ‘백만 번의 감사’ 김대순, 태피스트리 작가 송번수, 석채화를 그리는 오태학, 5만원권과 5천원 지폐의 신사임당과 율곡 이 이를 그림 이종상 등 충남 출신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우리지역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됐다.
당림미술관 2층에는 이 화백이 마지막까지 작품활동에 몰입했던 작업실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조금 전까지 그림을 그린 듯한 이젤 위의 캔버스, 붓과 물감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 이 화백의 흔적을 더욱 느끼게 했다. 예술가의 작업실로는 우리나라 단 2곳만 남아있다고 하며 그 중 한 곳이 당림의 작업실이다. 이종무 화백의 덕망을 나타내듯 운보 김기창 화백, 천경자 화백, 조병화 시인 등 당대 유명작가들의 친필 사인이 기록된 방명록도 보존돼 있다.


牧歌 景風(목가 풍경) A Ranch Scenery, 100x72.7cm, Oil on Canvas 1962

보기 드문 후원회 가진 당림미술관, 지역문화발전에 역할

이번 회고전까지 오게 된 건 이 관장의 뜻을 따라준 후원회의 공로가 컸다. 후원회 결성에 큰 역할을 한 유진수씨는 “처음 만난 이경렬 관장은 마치 인부 같은 복장으로 거침없이 다니며 한 명의 방문객에게도 친절하게 관람매너와 작품을 이해시키는 설명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관장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교육의 맹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어린이 창의미술교육에 힘쓰는 이 관장의 소신에 놀랐다”고 말했다.
당시 미술관 운영은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이 관장은 황량한 벌판에서 독립운동 하듯 문화활동을 펼쳐왔다고 표현했다. 유씨는 후원회를 조직, ‘숭모회’란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당림미술관을 후원했다. 그렇게 이어온 인연이 8년째. 숭모회는 신진청년작가를 발굴하고 전시공간을 마련해주는 등 지역의 블루칩 작가들이 설 무대를 만들어주는 당림의 의지에 적극 동참했다. 또한 어린이들의 열린 미술교육을 지향하는 이 관장의 뜻에 공감하고 어린이문화학교 후원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자화상 A Self-Portrait, 130.3x162.1cm, Oil on Canvas, 1958(100호)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어린이들에게 진심으로 좋은 교육 해주고 싶어”

당림미술관 프로그램은 시민들의 참여가 높다. 특히 어린이를 위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은 재미와 창의력을 향상시키는 감성미술교육으로 널리 입소문이 나있다. 이 관장은 “나 역시 입시교육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다. 누구보다 입시교육의 폐해를 잘 안다. 어린이 미술교육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해야 한다. 잘 그리는 것보다 미술을 통해 소중한 자연 알게 하고 다양한 미술 체험과 경험을 통해 생각의 크기를 넓혀주는 감성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버지의 꼿꼿함과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은 이경렬 관장은 “문화의 근간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아버지 유지를 받들어 지켜나가는 게 내 삶”이라며 “앞으로도 아이들을 위한 자연과 교감하는 미술교육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노준희 리포터 dooai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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