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부정 감시망을 다시 세우자│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분식 견제할 사외이사 법적책임 강화해야"

2016-11-15 10:19:49 게재

미국, 회사 감사위원회가 감사인 결정권 가져 … 경영진 눈치 안보고 감사

"회사가 회계법인을 교체한다고 사외이사에게 보고하면 아무도 신경을 안 쓴다. 교체 이유가 뭔지, 무슨 문제가 있는 지 물어보기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회계학 전공)는 기업의 회계부정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지배구조가 제대로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사가 회계법인을 교체하는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통상적으로는 깐깐하게 감사를 벌이거나 불편하기 때문이다. 회사 내부의 문제를 숨기기 위해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으면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으로서는 '적정의견'을 내기 어렵다.

최 교수는 "사외이사가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앉아서 사인만 한다"며 "경영에 대해 구체적으로 모를 수는 있지만 회계법인의 교체 등 단순한 문제에 대해서는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배구조 차원에서 접근해야 = 대우조선해양의 소액주주들은 회사와 경영진, 회계법인 뿐만 아니라 사외이사 5명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직무를 게을리한 사외이사에 대해 책임을 물은 판례가 있는 만큼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들이 법적 책임을 질 가능성이 있다.

부실 기업은 분식회계를 벌일 유인이 큰 만큼 근본적인 처방을 위해서는 내부 감시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최 교수는 "미국의 경우 소액주주들이 사외이사를 선정해서 이들을 통해 경영자의 행동을 감시하도록 하는 모니터링 역할을 수행한다"며 "회계법인을 회사에서 교체하지만 최종결정권자는 감사위원회"라고 말했다.

주로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가 경영자를 견제하는 독립적인 위치를 유지하기 때문에 회계법인이 감사범위를 확대하겠다고 하면 사외이사들이 더 적극적으로 회계법인에 힘을 실어준다는 것이다.

그는 "외국의 연구결과를 보면 감사위원회가 거의 유일하게 경영진 견제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나온다"며 "소액주주들이 주총에 참석해서 경영진을 감시할 대표자를 뽑아 이사회에 진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소액주주들이 나서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우리나라 소액주주들은 주총에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거의 없어 실현 가능성은 낮다. 최 교수는 "소액주주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방법이 없는 이상 근본적인 대책은 어렵고 대주주나 경영진쪽에서 사외이사를 임명했더라도 법적 책임을 강하게 부과하면 좀 더 모니터링 역할을 수행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회사가 계획적이고 교묘하게 분식회계를 벌이면 사전 적발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건을 수출했다고 장부만 조작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가짜 물건을 해외로 보낸 경우 세관 통과서류와 운송료 지급 자료 등이 모두 있기 때문에 서류로 분식회계를 적발하기 어렵다며 "그것도 전수 조사가 아닌 샘플링 조사로 살펴보는데 전수조사를 벌이면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허위매출 등으로 분식회계를 벌인 네오세미테크가 이같은 수법을 이용했다. 네오세미테크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분식회계 처벌 '당근과 채찍' 필요 = 최 교수는 "회계법인 감사에서 도저히 적발해내기 어려운 경우라도 분식회계는 언젠가는 터진다"며 "미국은 분식회계에 대해 한번 걸리면 회사가 문을 닫게 만들 정도로 강도 높은 처벌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우조선해양처럼 수주산업의 경우 진행률을 기준으로 회계처리를 하는데, 진행률 계산은 회계사가 잘 알지못하는 전문기술과 관련된 분야라서 회사가 속이면 회계사는 꼼짝없이 당하게 된다"며 "고의적인 분식회계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스템을 잘 갖춘 회사가 고의적 분식이 아닌 실수를 저질렀다면 처벌을 경감시켜주는 '당근 전략'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분식회계를 적발하지 못한 회계법인도 마찬가지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회계법인을 상대로 품질감리관리제도를 진행하고 있다. 품질감리관리제도는 감사업무의 질적수준 향상을 목적으로 회계법인이 품질관리제도를 적절하게 구축·운영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미흡 한 사항을 개선하는 업무다. 하지만 같은 지적이 여러 번 반복돼도 처벌조항이 없다. 최 교수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회계법인에 대해 행정처벌을 해야 하고 시스템을 잘 유지했는데도 불구하고 실수가 있었다면 그런 회사까지 무조건 세게 처벌할 수는 없다"며 "당근과 채찍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계법인 대형화 유도해야 = 회계법인의 감사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형화가 필요하다고 최 교수는 강조했다. 회계법인이 회계부정을 제대로 감사하지 못해 징계를 당하면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중소형 회계법인은 그게 잘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대형회계법인은 내부에 심리실을 두고 잘못된 부분을 보완하는 노력을 한다"며 "심리실이 이익을 내는 부서가 아니고 다른 회계사들의 시어머니 역할을 하는 곳이라서 다들 싫어한다"고 말했다. 회계사들은 싫어하지만 견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감사품질을 업그레이드하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중소형 회계법인은 대부분 느슨한 독립사업자들의 연합체와 같아서 이같은 심리실을 두지 못하거나 있더라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다"며 "회게법인을 대형화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또한 회계법인을 평가해서 일정 자격이 되는 회계법인만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를 감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감원이 회계법인의 등급을 정해서 상장회사를 감사할 수 있는 회계법인을 정하도록 하자는 것에 동의한다"며 "투명성과 감사품질을 올려리면 필요한 제도이고 품질 관리를 하면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고 시스템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핵심감사제' 투자자가 안보면 무용지물 = 최 교수는 회계부정을 견제하는데 투자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는데 '핵심감사제 도입' 역시 투자자들이 바뀌어야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현재 회계법인의 감사의견은 '적정·한정·부적정·의견거절' 등 단순하게 표현돼 있다. 하지만 핵심감사제는 회계법인과 기업이 협의해 핵심 감사항목을 선정한 뒤 해당 항목에 대해 중점적으로 보고서에 서술하는 방식이다. 회계법인이 이상하다고 여긴 부분들을 상세히 들여다보고 외부 투자자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최 교수는 "감사보고서를 자세히 쓰는 것은 당연히 바람직하지만 효과가 있으려면 감사보고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걸 읽어봐야 도움이 되는데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장기업이 아닌 회사는 회계법인에 제대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의결거절'을 받는 경우가 일부 있는데도 계속 감사를 받는 이유가 있다"며 "정부기관이 발주하는 사업에 입찰을 할때와 은행에서 대출받을 때 감사보고서 제출을 요구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은행이나 정부기관조차 감사의견이 무엇인지 읽어보지도 않고 재무제표만 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서 감사를 할 수 없을만큼 엉터리인 재무제표도 버젓하게 제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주들이나 외부정보이용자들이 감사보고서에 아무 관심이 없으니까 회사는 감사 보수를 깎으려고 하고 가격을 낮춘 만큼 회계법인은 사람을 줄여서 감사시간이 줄어들고 감사를 대충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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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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