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경제민주화다①│ 재벌 '덫'에 걸린 한국경제

한계 다다른 재벌중심 성장 … 분배 악화에 성장도 정체

2017-01-09 00:00:01 게재

'낙수효과' 사라졌는데 재벌에 기댄 성장정책 되풀이

저성장 벗어나려면 대-중소, 수출-내수 균형성장해야

새해가 밝았지만 한국경제의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지속되는 경기부진에서 벗어날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이는 까닭이다. 되레 더 깊은 나락을 떨어지리란 우려가 높다. 약화된 산업경쟁력, 치솟는 실업률, 13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 가속화되는 저출산·고령화 등 우리경제엔 온통 '적신호'뿐이다.

정부는 2017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새해 성장률 목표치를 2.6%로 제시했다. 정부가 연간 성장률을 2%대로 전망한 것은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정부 예상이 맞더라도 우리경제는 3년 내리 2%대 성장에 머물게 된다.

장기저성장이 현실이 되면서 기존 재벌 중심의 경제모델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벌경제'로는 '사면초가'에 빠진 한국경제의 돌파구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걸림돌이 돼버린 재벌경제 = '재벌경제'는 1960년대 우리나라가 경제성장을 본격화한 이후 한국경제를 특징지워 왔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정부 주도의 수출중심 사업화 정책을 채택했다. 정부가 주력산업과 사업부문을 선정해 금융특혜와 세제, 직간접적인 보조금을 지원하며 수출산업을 육성했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기업들은 거대재벌로 성장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력은 재벌에 특혜를 제공하고, 재벌은 정치자금을 대면서 정경유착의 끈끈한 고리를 형성했다.


재벌경제와 정경유착은 공정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용인될 수 있었던 건 재벌 중심의 수출 증대가 고용창출과 내수확대로 이어져 경제성장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낙수효과'다.

하지만 한국경제가 양적, 질적으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하면서 이 효과는 급격히 줄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수출의 취업유발계수는 1995년만해도 29명에 달했으나 2005년에는 10명으로 줄었고, 2014년에는 7명까지 떨어졌다. 취업유발계수는 10억원의 추가수요가 생길 때 직간접적으로 창출되는 일자리를 의미한다. 재벌 대기업이 수출을 잘해 돈을 벌어도 과거처럼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최근 들어서는 세계경제 성장세가 줄고 교역증가율도 둔화되면서 과거와 같은 수출성장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수출이 부진하면 내수가 받쳐줘야 하는데 낙수효과가 사라진 재벌경제는 걸림돌이 된다. 부가 소수의 재벌 대기업에 집중되면서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그만큼 중산·서민층의 소비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 고용의 90% 가까이를 중소기업이 담당하지만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임금수준은 갈수록 떨어져왔다. 1980년대만 해도 10% 미만이었던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임금격차는 1990년엔 20%, 최근엔 40% 가까이 벌어졌다.


재벌 대기업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그 자체로 한국경제의 커다란 위험요인이다. 글로벌 기업도 부침이 있기 마련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몇몇 대기업이 흔들리면 곧바로 국가경제 전체에 커다란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 갤럭시노트7 단종사태가 분기성장률을 떨어뜨린 것은 대표적인 예다.

재벌경제에서는 혁신적인 중소·벤처기업의 성장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재벌 대기업 의존도가 높다보니 대부분 중소기업은 낮은 납품단가에 허덕이게 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기술력을 보유해도 시장에서 공정하고 정당하게 대우받기 힘든 까닭이다.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고 있는데 한국경제의 혁신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노골화된 정경유착, 뒷전으로 밀린 경제민주화 =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내걸었던 경제민주화 공약이 큰 호응을 얻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의 틀을 중소기업, 소상공인과 소비자가 동반 발전하는 행복한 경제시스템으로 만들겠다'던 박 대통령의 약속은 양극화와 소득불평등을 해소하는 분배정책일 뿐 아니라 한계에 다다른 재벌경제 대체할 대-중소기업간, 수출-내수간 균형발전이라는 새로운 성장모델로 기대를 모았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 취임 이후 1년도 안 돼 경제민주화는 사라졌고, 경제활성화와 경제활력제고라는 명분하에 재벌에 기댄 성장정책으로 되돌아갔다. 정부는 투자를 살린다며 대기업 규제를 풀고 애로를 해소하는데 주력했다. 또 재정확대와 대출규제를 완화해 부동산을 인위적으로 띄워 재벌 건설사들의 배를 불렸다.

정경유착은 더 직접적이고 노골화됐다. 박 대통령과 비선실세인 최순실이 재벌들의 민원을 들어주고 돈을 거둬들인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뒷전으로 밀리면서 재벌중심의 한국경제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5년 기준 10그룹 계열(금융 제외)의 전체 자산은 1144조4000억원으로 우리나라 전체 기업 보유자산의 27.22%를 차지했다. 2012년 27.21%와 비슷한 수준이다.

◆"분배 불공정 커졌다" = 소득불평등 역시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3분기 기준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을 보면 2013년 5.05에서 2014년 4.73, 2015년 4.46까지 떨어졌지만 지난해에는 4.81로 다시 뛰어 올랐다. 5분위 배율은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것으로 수치가 클수록 불평등도가 높다는 의미다.

국민들이 체감도는 더 나쁘다. 내일신문이 전국 17개 광역시도 19세 이상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신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부의 분배가 얼마나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84.2%가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다. 2014년 70%보다 14.2%p나 증가했다.

빈부격차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란 질문에 '심각하다'는 답변도 94.2%로 3년전(90.6%)보다 3.6%p 늘었다.

정부가 효용이 다한 재벌경제를 고집하는 동안 한국경제는 추락의 길을 걸었다. 박근혜정부 4년간 성장률이 3%를 넘은 것은 2014년 딱 한 해 뿐인데 이마저도 재정확대와 건설경기 부양으로 떠받친 결과다. 국가채무가 늘면서 재정동원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인위적으로 부양된 부동산 경기는 이제 꺼질 일만 남아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경제민주화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는 "분배정책이자 새로운 성장모델로 경제민주화가 중단된 것을 아쉽게 생각했는데 그 이면에 정치권력과 재벌간 직접적인 거래가 있을 줄은 몰랐다"며 "이번 사태를 정경유착을 완전히 끊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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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경제민주화다① - 재벌 '덫'에 걸린 한국경제] 정경유착 끊어야 경제가 산다
"상법 개정됐다면 최순실사태 없었을 것"

['다시 경제민주화다' 연재기사]
① 재벌 '덫'에 걸린 한국경제│ 정경유착 끊어야 경제가 산다 2017-01-09
① 재벌 '덫'에 걸린 한국경제│ 한계 다다른 재벌중심 성장 … 분배 악화에 성장도 정체 2017-01-09
② 재벌 지배구조 개혁 '지금이 호기'│ 사적편익 차단하고 소유·경영 분리유도 2017-01-11
③ 공정시장 틀을 만들자| 소비자·소액주주들이 강한 권리행사, 기업 불법행위 견제 2017-01-13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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