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로섬(Zero Sum)' 시대 갔다, 이제는 중국 '윈윈' 시대"

2017-02-13 11:08:21 게재
미국의 세기는 저무는가. 호주 변호사이자 온라인 정치경제매체 '뉴이스턴아웃룩'(NEO) 필자인 제임스 오닐은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제로섬 게임을 통해 완전한 지배만을 노리는 미국은 이제 쇠퇴하고 있다"며 "반면 '모두가 좋아야 진짜 좋은 것'이라는 윈윈전략을 추구하는 중국은 이제 21세기를 '중국의 시대'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대일로를 통한 중국의 윈윈전략이 21세기 지정학적 지도를 바꿀 것이라는 게 주장 요지다. 다음은 오닐의 글 요약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45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전 세계 지정학에 또 다른 불확실성이 생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공식 폐기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지속적으로 무역협정이라고 홍보돼왔다. 명백히 그렇지 않다. 29개의 협정 항목 중 7개만 교역과 관련돼 있다. 진짜 목적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물론 투자자국가소송제도 등을 통해 기업에 특혜를 주고, 국가주권을 해치는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참석 등을 위해 15일(현지시간) 스위스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베른의 연방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유럽 입장에서 비슷한 협정은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이다. TPP와 동일한 목적을 가진 협정이다. 중요한 점은 중국이나 러시아 모두 TPP나 TTIP 참가를 요청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양국의 지리적 이점, 경제·군사·정치적 파워가 막강하지만, 두 협정에서 배제됐다.

미국이 TPP와 TTIP를 주도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1904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당시 런던정경대 학장이던 해퍼드 매킨더는 왕립지리학회 모임에서 미래 세계의 틀을 제시하는 역사적 강연을 했다. 그는 전 세계의 중심을 '유럽-아시아'로 봤다. 요즘 말로 '유러시아'다. 중심부를 누가 지배하느냐에 따라 패권이 갈린다고 했다. 그는 중심에서 벗어난 미국과 호주 등을 '외딴 섬'이라는 지위에 놓았다.

20세기 초반 예견된 유라시아의 시대

그의 강연 이후 1세기 이상 흘렀다. 그의 비전은 현실이 되고 있다. 그 사이 두 개의 거대한 세계대전이 있었다. 러시아와 중국에게 파괴적인 영향을 끼쳤다. 식민지 약탈을 두고 일어난 전쟁이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패권국들이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이득을 추구한 전쟁이었다. 1991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이 붕괴하면서 상대적으로 짧은 시기동안 미국의 유일패권 시대가 펼쳐졌다.

미국은 유일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2000년 미 국방부 주도로 '조인트비전 2020'이라는 전략을 수립했다. 전략적 목표는 '완전한 지배'였다. 육·해·공뿐 아니라 우주와 가상세계를 독단적으로 통제한다는 것이다. 경쟁국의 부상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게 '완전한 지배' 전략의 필연적 귀결이다. 캐나다의 시인이자 학자, 외교관인 피터 데일 스캇은 '조인트비전 2020'에 대해 "완전 미친 짓"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는 이후 미 외교전략의 기반이 됐다.

미국은 저항하는 나라를 폭격하고, 암살 등의 방법으로 정권교체를 꾀했다. 침공과 점령 등 강경한 수단과 TPP·TTIP 등 무역협정을 통한 유연한 수단을 동시에 구사하는 전략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난달 임기를 마쳤을 때 그는 역사상 유례없는 불명예를 갖게 됐다. 임기 첫날부터 마치는 날까지 매일 전쟁을 벌였던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이다. 미국은 7번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한 나라였다. 2016년 미 공군은 시간당 평균 3개의 폭탄을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내내 투하했다.

암살과 정권 와해공작, 정치적 소요 야기 등의 훈련을 받은 미 특수군은 100개 이상의 나라에서 활약했다. 매킨더가 말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나라들이 그같은 전략의 희생자다.

미국의 이같은 전략을 대부분의 서방 시민들은 알지 못한다. 1961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이임사에서 표현했듯, 이른바 '자유주의 언론'은 최근 수십년 동안 파괴를 통해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군산복합체의 치어리더에 불과했다.

주류언론이 군산복합체와 결합한 건 우연이 아니다. '오퍼레이션 모킹버드'(앵무새 작전)는 미 중앙정보국(CIA) 프로그램으로, 대중매체들의 편집권을 알게 모르게 통제하고 있다. 대중들이 절반의 진실에 불과한 뉴스, 왜곡된 가짜뉴스에 노출되는 건 이 때문이다.

'음모론'이라는 용어 역시 1967년 CIA가 만들어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사건을 조사한 워런위원회의 보고서를 미국 시민들이 불신하자 이를 막기 위해 만들어낸 용어다.

중대한 지정학적 사건에 대한 공식보고서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 누구나 '음모론자'로 격하됐다. 9·11테러사태나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이란의 핵무기 프로그램,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추락한 러시아 소속 여객기 MH17 사고 등에 대한 합리적 의문도 음모론으로 치부된다.

주류언론에서 지겹도록 반복되는 "중국의 남중국해 침해", "러시아의 유럽 도발" 등의 뉴스도 대중의 마음에 특정 이미지를 삽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음모론보다 더욱 일반적인 책략은 주요 정보를 가리는 것이다. 1999년 미국의 민사소송에서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은 연방수사국(FBI)과 멤피스 경찰국, 육군부 등이 관련된 음모론의 결과로 살해됐다"는 만장일치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주류언론 어느 곳도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2014년 8월 8일 호주와 벨기에 네덜란드 우크라이나는 이상한 협약을 맺었다. MH17 격추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모든 협약 당사국의 만장일치 합의 없이는 발표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격추 사건의 주요 피의국이었던 우크라이나에게 명백히 유리한 협약이었다.

몰락하는 제국, 해결책이 없다

외국과의 전쟁에 끊임없이 개입하려면 비용이 든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던 2009년 1월 미국 국가부채는 대략 8조달러였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때는 20조달러로 급증했다. 알리바바 CEO인 마윈은 최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과거 30년 동안 미국은 14조2000억달러를 들여 13번의 전쟁을 치렀다"며 비판했다.

군산복합체에 돈을 쏟아부은 결과 미국 내 인프라에 투자할 여력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프라 업그레이드를 위해 1조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다보스 포럼 하루 전에 열린 아시아금융포럼에서 중국투자공사 의장인 딩쉐둥은 "새로운 인프라 확충이 아니라 현존 인프라를 현대화하는 비용만 8조달러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조차 국내 자원에서 그같은 수준의 투자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미국은 몰락해가는 제국이자 끊임없이 전쟁을 선택하는 제국이며, 초강대국에 집착해 허풍 떨고 미친듯 날뛰며 남을 괴롭히는 제국이다. '남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제로섬의 제국이다.

하지만 미국과 완전 다른 지정학적 경제발전 모델을 추진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말한 대로 윈윈(Win-win)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이 지정학과 경제발전을 결합해 완전 새로운 모델을 선보인 때는 20년 전으로 거슬러오른다. 1996년 상하이협력기구(SCO) 출범이다. SCO는 현재 3단계 회원자격을 두고 있다. 회원국은 중국과 인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파키스탄 러시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이다. 옵저버 국가는 아프가니스탄과 벨라루스 이란 몽골이다. 대화파트너국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캄보디아 네팔 스리랑카 터키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2016년 SCO에 가입했고, 이란은 올해 회원국으로 격상한다.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이들 회원국은 매킨더가 말한 '세계 중심부'다.

이후 브릭스가 만들어졌다. 2006년 브라질과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모였고, 2009년 첫 공식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아시아와 미주, 아프리카 등 3개 대륙 핵심국들이다. 브릭스 구성국은 30억 인구를 갖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을 합하면 16조달러를 넘는다. 브릭스는 독특하게 개발은행을 두고 있다. 기축통화인 달러 대신 회원국 통화로 무역을 거래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일대일로 통해 유라시아 통합

여기에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경제연합(EEU)도 있다. EEU 설립 논의는 2000년 시작됐지만 정식 조약은 2014년 이뤄졌다. 회원국은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러시아다. 1억8300만 인구에 GDP는 4조달러를 넘는다. EEU와 SCO는 2016년 공식 교역을 시작했다.

2012년 11월 캄보디아에서 열린 아세안정상회의에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출범했다. 회원국은 아세안 10개국과 중국 인도 일본 한국 호주 뉴질랜드다. RCEP은 전 세계 인구 46%를 포괄하고 세계 교역의 40%를 차지한다. GDP는 17조달러다. TPP의 소멸로 RCEP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미국이 유무형의 압력수단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반대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당초 57개 창립국에서 2016년말 70개국으로 확대됐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유일한 예외국은 일본이다.

이같은 발전은 신실크로드, 즉 일대일로 사업으로 화룡점정을 이룬다. 규모나 야심에서 역사상 그 어떤 개발프로젝트도 일대일로를를 따라오지 못한다.

일대일로는 매킨더의 예언을 완벽히 현실화하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2013년 10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세계 최대 인프라 투자 계획인 일대일로 사업구상을 발표했다. 일대일로는 육지와 해양에 기초한 것이다. 육지로는 중국에서 유럽으로, 남북방향은 시베리아에서 남아시아로 고속열차를 연결하는 것이다. 해양 거점은 동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중동, 유럽이 된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규모는 웅장하다. 2016년 7월 현재 중국은 900개 도시와 협약을 맺었거나 협상중이다. 여기에 대한 투자 제안액은 9000억달러를 넘는다. 천연가스 공급과 관련해 러시아와 맺은 4000억달러 계약과는 별도다.

중국이 주도하는 지정학적 경제발전 모델은 2가지 의의를 갖는다. 첫째 60개 이상 나라가 철도와 도로, 관개, 초고속 광섬유망을 통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정책적 목표는 참가국들의 경제적 기반을 개발하는 것이다. 네트워크에 참가한 모든 나라들은 단독 투자에 비해 몇배~몇십배의 혜택을 가져갈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말하는 '윈윈' 전략이다.

한편으로 막대한 잠재적 자원을 갖고 있지만 이를 경제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웠던 나라들에게 '시장' 또는 '판'을 깔아주는 역할도 한다. 이란의 주요산물은 석유와 천연가스, 구리, 보크사이트, 석탄, 철광석, 아연, 주석 등이다. 카자흐스탄엔 보크사이트와 구리, 금, 철광석, 석탄, 천연가스, 석유 등이 풍부하다. 키르기즈스탄엔 석탄과 금, 납, 우라늄, 아연 등이, 몽골엔 구리와 금, 몰리브덴, 형석, 우라늄, 주석, 텅스텐 등이 개발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는 석탄과 천연가스, 석유, 목재 등을, 타지키스탄은 금과 은, 텅스텐, 우라늄 등을, 우즈베키스탄은 석탄과 구리, 금, 납, 몰리브덴, 천연가스, 텅스텐, 우라늄, 아연 등을 시장화하려 하고 있다.

이들은 SCO 회원국이면서 동시에 일대일로 루트에 위치한 나라다. 고속철도 등으로 중국과 직접 연결돼 있거나 연결될 나라들이다. 미국의 해군력으로부터 안전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번째 의의는 세계질서의 재편이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세계의 근본적인 재배치다. 1세기 전 매킨더의 예언이 일대일로를 통해 뼈와 살을 입게 된다.

미국이 직면한 딜레마는 저명한 지정학 전략가에서 엿볼 수 있다. 헨리 키신저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다. 키신저는 미국과 러시아가 협력해 현재의 격변적 상황을 새로운 균형상태로 발전시키자는 입장이다. 반대로 브레진스키는 그와 같은 경우 미국의 군사적 이점이 줄어들게 되며 결국 미국의 유일 패권시대가 끝난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되면 전 세계적 대 혼란이 생길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키신저와 브레진스키는 해법도 다르다. 키신저가 러시아와의 동맹으로 미국이 얻을 이득이 많을 것이라고 보는 반면 브레진스키는 그럴 바에는 차라리 중국 편에 서는 게 낫다고 본다. 두 명의 전략가가 주장하는 데엔 '분할지배'(divide and rule) 전략이 공통적으로 스며 있다.

하지만 그같은 야심은 지정학적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중국의 재부상과 일대일로의 막대한 잠재력은 매킨더가 100여년 전 예측한 지정학적 구조를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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