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대표문화된 '학교·마을이 만든 뮤지컬'

2017-02-28 10:28:05 게재

금천주민 1% '레미제라블 학교판' 관람

4년 공연성과 토대로 '뮤지컬 중심' 도약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 심장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리네 /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청소년 영어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24일과 25일 금천구 주민들 앞에 선보였다. 지난해 11월 선발된 50명의 청소년들은 지난 3개월간 기초, 숙련, 집중, 완성과정 등의 연습과정을 거쳤다. 사진 금천구 제공


25일 저녁 서울 금천구 시흥동 금나래아트홀.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대표하는 '민중의 노래'가 시작되자 남녀노소 구분 없이 관람석을 가득 메운 주민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두시간여동안 무대를 달궜던 학생들과 함께 암울한 시대, 분노하는 민중, 내일의 희망을 노래했다. 지난 2014년부터 매년 반복되는 광경이다.

서울 금천구 학생들이 만든 뮤지컬 레미제라블 학교판이 지역 대표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학교와 마을이 경계를 허물고 학생들을 지원, 4년째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냈고 첫 공연부터 매회 전석 매진을 이어가고 있다. 560석 규모 금나래아트홀에서 4차례 공연을 진행한 올해만 해도 금천구 주민 25만여명 가운데 1%에 달하는 2240명이 관람했을 정도다.

영화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인기를 끌면서 공군판 경찰판 등 모방작품이 인기를 끌던 2013년. 지역 인재육성에 색다른 영어교육을 접목한다는 취지에서 전세계 학생들 레미제라블 공연 지원을 위해 만든 학교판에 주목했다. 상반기에는 레미제라블을 영어로 읽고 하반기에는 뮤지컬 공연을 준비하는 형태였다.

첫 공연을 하고는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협동심을 필요로 하는 종합예술활동이고 학생들 인성 함양과 문화 감수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 보다 적극적인 투자에 나섰다. 학생들이 방학동안 연습을 하고 친구들과 부모 이웃 앞에서 전문가 못지 않은 공연을 3년 연속 선보이자 인근 지자체 관심도 커졌다. 그간은 금천구 청소년에 한했는데 올해 공연부터는 경기도 안양 광명까지 문호를 넓혔다.

지난해 11월 4기 단원모집에 250명이 넘는 청소년이 몰렸다. 실기와 면접을 거쳐 무대에 오를 50명을 선발한 뒤 연기 안무 성악 훈련을 두달 반동안 이어갔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 4~6시간 교육을 받고 지난달부터는 무대를 염두에 두고 하루 6~8시간 연습을 했다. 기초 숙련 집중 완성 단계로 연습과정을 거쳐 영어와 연기 발성 안무, 종합연기 워크숍 등 아이들은 여느 때보다 힘겨운 방학을 보냈고 지난 24~25일 이틀간 무대에서 결과물을 선보였다.

해를 거듭하면서 아이들은 물론 주민들도 뮤지컬 제작에 빠져들게 됐다. 첫해 공연을 관람하고는 레미제라블에 빠져 2회 단역, 3회 조연을 거쳐 4회에는 주연으로 참여해 진로를 배우로 정하고 가족 협력을 이끌어낸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무대에 섰던 경험을 활용해 영어교육과 조연출로 합류한 청년도 있다. 주민들은 마을회관을 연습공간으로 제공하고 아이들 간식을 준비했는가 하면 공방 활동가들은 무대의상을 제작했다. 청소년들은 신년인사회나 지역 대표축제인 벚꽃축제에서 공연을 선보이며 답례를 할 계획이다. 안종인 남부교육지원청 교육장은 "마을자원과 학교의 결합은 금천의 교육적 위상을 새롭게했다"며 "자아존중감 향상, 타인에 대한 존중, 더불어 행복함을 실현하는 과정의 아름다움이 돋보인 공연"이라고 평했다.

금천구는 학생들 공연을 대표문화자산으로 활성화하는 동시에 뮤지컬을 꿈꾸는 청소년들을 위한 꿈터를 지역 내에 조성할 계획이다. 문화관광부 지원금 5억원 등 10억원을 투자해 2019년이면 서남권역을 대표할 뮤지컬교육센터가 들어선다. 차성수 구청장은 "한창 공부할 시기에 종일 연습에 빠져있어 걱정스럽다는 부모님들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었다"며 "4년 새 금천구 대표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겠다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울타리를 넘어 생전 처음 보는 또래 친구들과 연습한 경험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게 돕는 나침반이 될 것"이라며 "레미제라블을 만들어가는 동안 아이들도 세상살이의 한 단면을 터득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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