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보장제 부양의무자 기준은 빈곤층 차별

"빈곤자녀에게 부양하라는 꼴"

2017-03-20 10:49:27 게재

부양의지나 능력 고려 없이 적용 … "폐지 가능한 부분부터 신속 폐지"

# "법도 사람이 만드는 것인데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 한 할머니가 남긴 유서이다. 이 할머니는 2012년 7월 사위의 소득이 높아졌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에서 탈락당한 뒤 이를 비관해 거제시청 앞에서 음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 부산의 요양병원에서 홀로 지내던 신부전환자인 모 씨는 딸의 취업 후 기초생활 수급자 탈락 소식을 듣고 2013년 12월 자살했다. 지속적인 입원과 관리가 필요해 월 100만원 넘는 병원비를 딸에게 부담지울 수 없어 고민하던 그였다.

실제 부양할 생각이 없고 능력도 없는데 소득이 있는 가족이 있다는 이유 등으로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보지 못하는 빈곤층이 100만명이 넘는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실시하여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는 것을 목적'(1999년 제정 기초생활보장법 제1조)으로 실시됐다. 그런데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도 시행 얼마 지나지 않아 계속 제기됐다. 부양의무자는 1촌내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로 정하고 있는데, 이런 가족친지가 일정소득 수준이 되면 당사자가 경제적으로 아주 힘든 상황이더라도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이에 이미 2003년 보건복지부와 보건사회연구원이 공동으로 발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기준 개선방안'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방안을 제외하고는 범위의 조정을 통한 사각지대 축소 효과는 기대한 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낸 바 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아무런 개선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노인 인구 중 절반에 이르는 빈곤율 속에 하루 몇 천원을 벌기도 힘든 폐지 수집에 노인들을 내 몰고 있는 사회단면은 지속되고 있다.

이런 결과로 2010년 기준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한 사각지대는 117만명에 이른다. 2015년 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수급 신청자 중 절반이 넘는 67.59%는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이 기준보다 많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탈락자 중 부양의무자를 포함한 친지, 이웃에게 도움 받는 가구는 24.38%에 불과했다.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이 충분치 않아 수급신청 시 수급자가 될 가능성이 큼에도 신청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빈곤층에는 가족관계가 깨져 연락도 하지 않고 사는 경우가 많고 부양의무자로부터 금융정보제공동의서 등 서류를 받을 수 없어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가 흔하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가난한 청년들에게 부모를 부양하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한다. 가난한 자식들이 막 직장에 들어가면 수급자인 부모는 수급대상자에게 탈락되거나 그 수급비가 삭감으로 이어진다. 실제 부양받을 수 없는 사람들은 탈 수급은 했지만, '탈빈곤' 할 수 없는 생활을 반복하게 된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부양의무자 기준은 빈곤층에게 빈곤을 되물림하게 만든다"며 "시급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등한 복지국가로의 전진을 요구하는 시민 노동 사회 인권단체들이 모인 '피부양자기준 폐지행동'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공약화 할 것을 제19대 대통령선거후보자들에게 요구하는 입장 질의서를 보내고 21일까지 회신을 요청했다. 답변 내용은 언론에 알릴 예정이다. 그리고 24일 종교계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촉구 선언, 4월 중순 범사회복지계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촉구 연명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와 관련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실적으로 폐지가 쉬운 것부터 단계적으로 부양의무자기준을 가능한 신속하게 폐지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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