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옐런 연준의장 '불안한 평화'

2017-06-14 11:41:46 게재

금리인상, 의장 재지명 등 갈등이슈에도 '일단 잠잠'

지난해 미국 대선 막바지,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를 강하게 비난하며 '집권시 연준을 그냥 두지 않겠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취임 다섯달이 다 돼가는 현재, 백악관과 연준의 사이가 놀랄 만큼 부드러워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3일자로 전했다.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게리 콘(사진 오른쪽)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예산 관련 회의를 한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취임 초기인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 재닛 옐런 의장과 집무실에서 만났다. WSJ는 이 자리에 참석한 인사의 말을 빌려 트럼프 대통령이 옐런 의장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 맞은편에 옐런 의장과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 함께 앉았다. 콘 위원장은 백악관과 연준의 관계를 조율하는 매파역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인물이다.

트럼프는 "나처럼, 당신(옐런)도 저금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약 15분간 이어진 대화에서 트럼프와 옐런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적으로 뒤처진 수백만명의 국민을 도울 수 있는 경제정책에 대해 논의했다.

두 달 뒤인 4월 WSJ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옐런 의장의 재임 가능성이 사라진 건 아니다"라고 확인했다. 옐런의 첫 번째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백악관측에 따르면 콘 위원장은 현재 차기 연준 의장을 고르는 작업에 공식 착수했다. 하지만 워싱턴 정가나 월가 금융권에서는 옐런 재지명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오히려 트럼프와 옐런의 만남을 주선한 콘 위원장이 유력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콘은 골드만삭스 중역을 지낸 인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WSJ 인터뷰 발언은 지난해 대선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당시 그는 "옐런이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돕기 위해 저금리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취임 이후 현재까지 트럼프와 백악관 경제참모들은 연준의 정책에 가타부타 공식 언급을 피하고 있다. 지난 3월 기준금리를 올린 연준이 이달(현지시간 14일)에도 추가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지만 백악관 측의 별다른 반응은 없다.

지난 5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G7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한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연준에 대한 이런 '수수방관'은 다소 이례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연방수사국(FBI)과 의회예산국, 사법부 등 초당파적 성격의 연방기구에 지속적으로 거센 비난을 날리고 있지만, 연준에 대해서만은 이례적인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는 연준과 연준 통화정책에 대한 공식적 언급을 삼가자는 이전 행정부(빌 클린턴과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의 기조를 잇는 것이다. 콘 위원장은 지난 3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연준은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고, 우리는 연준의 권한을 존중한다"고 밝히는 데 그쳤다.

취임 뒤 트럼프 본인도 더 이상 연준에 대한 포퓰리즘적 공세를 전개하지 않고 있다. '연준에 대해 중립적 자세를 유지해야 금융시장에서 행정부의 신뢰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월가 출신 경제참모들의 간곡한 조언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악관과 연준 사이의 매설된 지뢰밭은 여전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빠른 경제성장을 원한다. 이는 연준의 금리인상과는 배치된다. 금리를 올리면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옐런 의장 입장에선 연준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설전을 벌이는 대신 보고서 상으로 양측은 입장대립을 보이기도 했다. 대통령은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최소 3%로 제시했다. 반면 연준은 인구구성 변화나 생산성 저하 등의 흐름을 반영해 미 경제성장률을 2% 안팎으로 잡고 있다.

현재 미국의 공식실업률은 4.3%다. 트럼프 행정부가 단기수요를 부양해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조치를 취한다면 연준은 금리인상 속도를 높일 가능성이 높다. 인플레이션이 치솟을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부양책이 여전히 의회에 계류돼 있어 이같은 갈등이 아직 표면화되지는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연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침묵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한다. 연준이 행정부를 자극할 만한 행동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 증시는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정부가 돈을 빌리는 비용(국채금리)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14일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상한다 해도 1.00~1.25%로, 여전히 역사적 저점 수준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위협을 느낄 만한 조치를 연준이 강행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펜실베이니아대 워튼스쿨 피터 콘티-브라운 교수는 "연준이 행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훼손할 만한 통화정책을 시행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트위터를 통해 연준에 대해 언급할 것"이라고 WSJ에 말했다.

트럼프와 옐런은 1946년 뉴욕시 내 인접한 자치구에서 두 달 차로 태어난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둘의 성격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뉴욕 퀸즈 출신인 트럼프는 무모하리만큼 자신의 배짱을 믿고 밀어붙이는 부동산 개발업자였다. 학문을 지속하는 데엔 흥미가 없는 인물이고, 워싱턴 정가의 기득권 정치인들을 끔찍히 싫어하는 성격이다.

반면 뉴욕 브루클린 출신인 옐런은 모험과 위험을 달가워하지 않는 경제학자로, 연설과 회의를 꼼꼼히 준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휴가를 갈 때도 여행가방엔 늘 책을 가득 담는 독서광이고, 학계와 연준에서만 경력을 쌓은 공부벌레다.

이처럼 트럼프와 옐런이 서로 공통점이 없는 분야에 몰두하던 인물들이기 때문에 콘 위원장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있다. 옐런 의장은 콘 위원장과 또 다른 골드만삭스 출신인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을 정기적으로 만난다.

콘 위원장은 행정부 내 관료들에게 '연준의 통화정책을 공개적으로 추정하거나 판단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해왔다. 이같은 조언 내용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재무장관이 된 로버트 루빈이 확립한 일종의 관행이다.

콘 위원장은 '연준의 독립성을 존중했을 경우의 경제적 이득'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납득시켰다는 점을 대단히 뿌듯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연준 구성 7명의 위원 중 공석인 3자리를 임명할 수 있다. 내년에는 연준 의장과 부의장 자리도 공석이 된다. 월가 금융권과 워싱턴 정가는 대체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콘 위원장을 연준 의장에 지명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콘 위원장 스스로 '연준 의장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 바는 없다. 하지만 그의 전 직장 동료들은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콘은 연준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현재 공직에 있으면서도 연준의 상대적 독립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콘은 뉴욕연방은행 총재인 윌리엄 더들리 등 골드만삭스 출신 연준 관료들과 친분이 있다.

현재 연준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정치적 압박에 직면한 상황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행한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적절성에 대해 공화당 주도 의회가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이다. 공화당 소속 의원들은 "경제성장을 부양하려던 연준의 비정상적 조치는 사실상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적자를 줄여주는 데 활용된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공화당은 또 연준이 민주당과 합세해 2010년 도드프랭크 월가개혁법안을 만들어 은행에 대한 지나친 간섭에 나섰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부 백악관 참모들도 '도드프랭크법이 연준에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부여했다'고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차기 연준 부의장에 '은행 규제 간소화' 입장을 가진 랜들 콸리스를 임명할 방침이다. 콸리스는 부시 대통령 시절 재무부에서 일한 바 있다.

연준의 양적완화(대규모 자산매입 정책)도 백악관 내부에서는 거부감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성장을 추동하기 위한 비상조치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경제 각 분야에 막대한 신용을 할당하면서 행정부의 재정정책을 위협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백악관은 공석인 연준 이사 1자리에 마빈 굿프렌드를 고려하고 있다. 굿프렌드는 통화정책을 전공한 경제학자로, 연준의 비정상적 조치를 비판해온 인물이다.

물론 백악관의 이같은 우려는 공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지난해 트럼프 당시 후보의 언행과는 사뭇 달라진 것이다. 당시 트럼프는 "옐런 의장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도널드 콘 전 연준 부의장은 "연준과 백악관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지 여전히 불확실하다"면서도 "현재까지는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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