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준 재닛 옐런 의장 "금융위기 없다" 장담하지만

한치 앞도 못 내다본 '선무당' 사례 많아

2017-07-05 11:14:14 게재

경제전문가 잇단 비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재닛 옐런 의장이 "우리 생애에 금융위기 재발은 없다"고 장담한 데 대해 비난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옐런 의장은 지난달 말 영국학사원 회장인 니콜라스 스턴과의 대담에서 "또 다른 금융위기가 올 것이라 보는가. 그건 너무 나간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안전한 상황에 있다. 우리 생애에 또 다른 금융위기는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6월 2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을 방문한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 의장(사진 오른쪽)이 영국학사원 회장인 니콜라스 스턴과 대담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에 대해 오스트리아학파 금융전문 매체인 '미제스인스티튜트'는 4일 '전문가라 자처하는 연준의 예측에 주의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경제 순환주기 이상 살았던 사람들은 경제학자나 중앙은행, 고위급 경제관료 등이 '경제적 혼란의 위험은 없다'고 선언한 뒤 진짜 경고음이 터지는 걸 종종 경험해왔다"며 "실제 경제위기 직전 난무한 예측들이 심각하게 틀린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미제스에 따르면 가장 유명한 건 1929년 대공황 직전이다. 허버트 후버 미 대통령은 "우리 미국인은 오늘날 역사상 그 어떤 나라도 해내지 못한 '빈곤에 대한 최종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선언했다가 대공황 발발로 체면을 구긴 바 있다.

그렇게 멀리까지 되돌아갈 필요도 없다. 1990년대 말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인터넷 경제가 되면 경제순환주기는 사라진다"고 앞다퉈 선언했다. 미제스는 "현 연준 부의장 스탠리 피셔와 절친인 MIT 경제학자 루디 돈부시는 1998년 월스트리트저널에 '성장은 영원히 지속된다'는 제목의 칼럼을 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미제스에 따르면 돈부시 교수는 "경제침체 가능성이 당분간 없다"며 "미국 경제는 수년 동안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또 "인터넷이 이끄는 신경제의 혜택이 크고 확실하다"며 "경제확장 국면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1년 결국 닷컴버블은 꺼졌다. 또 2002~2007년 짧은 경제확장 기간이 지나고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2000~2015년 미 연방정부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미국 가계소득 중간값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최근 2년 동안 많은 경제학자들이 미 경제가 확장되고 있다고 장담하지만, 경제상황은 90년대 말 수준으로 회귀한 정도밖에 안된다는 게 미제스의 분석이다.

'선무당'의 백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당시 경제학자들과 정부당국에서 미국발 금융위기를 제대로 예측한 곳은 없었다.

2007년 초 벤 버냉키 의장은 "미 경제는 올해 중반까지 강화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2007년 중순에 이르러서 그는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시장과 관련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없다"며 무시했다. 그는 '주택시장의 거품이 붕괴할지 모른다'는 일반의 두려움에 코웃음을 치며 "나는 집값이 정확히 어느 범위에 있어야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주택가격은 거품'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동안에 일어났던 많은 일들이 강력한 미국 경제의 체력으로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하는 게 적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버냉키는 "만약 주택시장 거품이 문제였다는 게 드러난다 해도 기껏해야 일부 지역에 한정된 문제이지, 나라 전체 경제에 영향을 끼칠 만한 수준은 아니다"고 장담했다.

미 경제는 공식적으로 2007년 12월 축소국면에 돌입했다. 이듬해 가을 금융위기가 터졌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금융위기가 표면화하기 전날에도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미 경제의 펀더멘털은 강력하다"고 선언했다.

금융위기 발발 1년 뒤 미국의 실업률은 10%에 달했다. 주택압류 비율이 치솟고 총구직자 수가 1억1600만명에서 1억700만명으로 급감했다. 고용시장은 2013년 말까지 위기 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수백만명의 노동자가 재교육을 통해 직업을 바꿔야 했다. 은퇴는 되도록 미뤄야 했다. 주택압류와 퇴거를 피하려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돈벌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 경제는 오랜 기간 빈사상태에 빠졌다. 연준은 7년 동안이나 기준금리를 제로로 유지하며 경제를 부양해야 했다.

미제스는 "옐런 의장이 '미 경제가 위기를 맞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곧 위기가 임박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하지만 뛰어나다는 경제학자와 연준 위원들의 과거 발언을 살펴보면 옐런의 최근 예측은 주의깊게 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옐런의 자아도취적 망상"

영국 킹스턴대 경제학 교수인 스티브 킨은 최근 '재닛 옐런 의장의 자아도취를 방어할 그 어떤 변명도 없다'는 제목의 미 포브스지 기고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옐런 의장의 그같은 믿음은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킨 교수는 "옐런 의장의 믿음은 금융위기란 경제 시스템 외부에 있는 무작위적 사건에 의해 일어나거나 또는 주사위를 굴렸을 때 연속적으로 안 좋은 숫자가 나오는 것처럼 재수가 없는 경우 발생한다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며 "이는 옐런 의장이 주입 받은 신고전주의 경제이론의 관점"이라고 지적했다.

킨 교수는 1982년 '과도한 부채 확대에 기댈 경우 금융시스템이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미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를 인용해 옐런 의장의 자아도취를 비판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올 1분기 전 세계 부채는 217조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글로벌 GDP의 327%다.

킨 교수에 따르면 옐런 의장이 견지하고 있는 신고전주의 경제시각은 위기를 대비하는 데 있어 형편없는 실력을 드러낸 바 있다.

2007년 8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기 2달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성명서를 통해 "현재 경제상황은 우리가 지난 수년간 겪어온 것과 비교해 매우 호전됐다"며 "OECD 회원국 내에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이 일어나면서 일자리 창출이 왕성하고 실업률이 떨어지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금융위기 징후가 짙어지던 2007년 12월엔 옐런의 동료이자 연준 연구통계분과장이었던 데이비드 스톡튼이 금리결정기구인 FOMC 회의에서 "금융시장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연준 전망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식품과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달러가치가 낮아진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적당한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킨 교수는 "옐런의 자아도취 발언은 그가 연준의장에 있으면 안되는 분명한 이유"라며 "그를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ING의 선임 이코노미스트인 카스텐 브르제스키는 미 CNBC 대담에서 "미국은 물론 유로존의 부채 위기가 해결되지 않았고 아시아와 신흥국 경제의 부채 수준은 2008년보다 더 높아지는 등 전 세계 경제에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옐런 의장의 발언이 시기상조임을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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