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또다른 '비정상적 통화정책' 나온다"

2017-07-11 11:11:17 게재
최근 많은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그동안 시행했던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거둬들일 뜻을 시사하면서 금융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같은 뜻이 관철된다면, 일본중앙은행과 스위스중앙은행이 여전히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고수하는 '유이한' 곳이 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이미 2014년 양적완화를 단계적으로 중단했고 2015년 말부터 금리정상화 경로를 밟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내년 중 그간의 양적완화 정책을 신속히 중단하는 방법을 모색중이다. 마이너스금리도 정상화시킬 예정이다.

지난해 6월 브렉시트 투표결과에 따라 양적완화에 돌입했던 영국중앙은행도 최근 해당 프로그램을 종료했다. 이어 금리인상을 모색중이다. 캐나다중앙은행과 호주중앙은행 역시 금리인상이 임박했다는 신호를 시장에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그러나 주류경제학계의 대표적 비관론자인 '닥터 둠'(Dr. Doom)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10일(현지시간) 프로젝트신디케이트 기고문에서 "이들 중앙은행은 또 다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재도입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해 눈길을 끌었다.

루비니 교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과 결별하는 데 선두에 선 연준을 예로 들어 "연준이 현재 추진중인 금리정상화 정책으로 시장금리를 향후 저축과 투자의 균형을 가져오는 자연이자율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그같은 자연이자율은 3%를 넘기 어려울 것"이라며 "연준이 과거 두 차례 긴축정책을 진행했을 때 자연이자율이 각각 6.5%, 5.25%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준은 2007~2009년 금융위기 동안 기준금리를 기존 5.25%에서 0%로 내리눌렀다. 그같은 제로금리가 경제를 부양하지 못하자, 연준은 사상 처음으로 국채 등 금융자산을 대거 매입하는 양적완화에 돌입했다.

연준이 다음 경기침체가 닥치기 전 자연이자율을 3%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연준이 통화정책을 효과적으로 펼칠 수 있는 여견을 마련했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게 루비니 교수의 주장이다. 금리인하가 실물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전에 '제로금리제약'(ZLB)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힌다는 것이다. ZLB란 명목금리가 0% 이하로 내려갈 수 없는 딜레마를 말한다. 루비니 교수는 "경제침체기가 닥치면 연준과 기타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각각 장단점을 지난 4가지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첫째 연준이 양적완화 또는 신용을 대거 풀어버리는 정책을 재개하는 것이다. 장기국채나 회사채 등을 매입해 유동성을 공급하고 시중 대출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준의 자산이 이미 막대하게 부풀어올랐기 때문에 또 다른 양적완화의 비용과 위험 정도가 치솟게 된다는 점이 딜레마다.

둘째 연준이 마이너스금리 조치를 취하는 방법이다. 이미 ECB와 일본중앙은행, 스위스중앙은행이 양적완화, 신용완화정책과 함께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마이너스금리는 예금자와 은행에 고통을 끼친다. 은행은 고객에게 비용을 전가하게 될 것이 명확하다는 점이 딜레마다.

셋째 연준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바꾸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연준이 현재 2% 인플레이션 목표를 4%로 상향조정하는 것이다. 루비니 교수는 "연준을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비공식적으로 이 방안을 적극 고려중"이라고 주장했다.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올리면 자연이자율도 덩달아 5~6%로 올릴 수 있다. 그러면 또 다른 경기침체가 올 경우 제로금리제약이라는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줄어든다.

하지만 이 방법은 또 다른 몇가지 걸림돌이 있다.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은 현재도 2% 인플레이션 목표치 달성에도 힘겨워하고 있다. 4%로 목표치를 올리면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훨씬 오랫동안' 시행해야 한다. 게다가 인플레이션 상향 조정이 부드럽게 이뤄진다고 자신하기도 어렵다. 1970년대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2~4%대를 오가도록 허용됐다. 하지만 당시 인플레이션 기대감은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날뛰었다. 그 결과 실제 물가상승률은 4%를 훨씬 초과했다.

루비니 교수가 예상한 중앙은행들의 마지막 선택지는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2%에서 0%대로 낮추는 것이다. 이는 국제결제은행(BIS)이 추천하는 방법이다. 낮은 인플레이션 목표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필요성을 줄이게 된다. 현재 금리가 여전히 0%에 가깝고 인플레이션도 2%를 하향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중앙은행이 이 전략을 시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우선 제로 인플레이션 부채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 부채가치가 증가하면 과도한 빚을 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산에 이른다. 게다가 작고 개방적인 경제를 운용하는 나라들이 0% 인플레이션 목표를 잡으면 통화가치가 급등하게 된다. 생산비와 임금이 올라 수출업자는 물론 수입품과 경쟁하는 부문의 산업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루비니 교수는 "결국 다음 경기침체가 닥치면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제로금리제약에 대해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가 보기에 중앙은행이 어떤 선택지를 고를 것인지는 △중앙은행 자산 규모를 부풀리는 데 따른 위험도 △은행과 고객에게 던지는 고통의 정도 △달성 불가능한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추구하는 데 따른 위험도 △과도한 빚을 진 자와 생산업자가 받는 고통의 무게 등을 어떻게 판단하는지에 달렸다.

루비니 교수는 "중앙은행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맞닥뜨렸던 동일한 정책 딜레마에 또 다시 부딪히게 될 것"이라며 "결국 금융으로 자극을 줘야 실물경제가 움직이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앙은행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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