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마을버스, 기사에게 사고비용 떠넘겨

2017-07-31 10:14:28 게재

면책금도 운전기사가 부담해

"벌점·비용 걱정에 신고 못해"

서울시·자치구 책임 떠넘기기

# 최근 마을버스운전자 A씨는 버스사고로 자차 및 상대차량 수리비가 200만원이 나왔다. 회사는 A씨에게 보험처리하면 사고 흔적이 남고 보험료도 할증되니 회사가 절반, A씨가 절반 부담할 것을 제안했다. 100만원은 A씨 급여에서 5개월로 나눠 공제됐다.

# B씨는 지난해 8월 140만원의 수리비가 나오는 사고를 냈다. 사고비용을 낼 능력이 없다고 하자 회사는 B씨의 개인 승용차보험을 이용할 수 있다고 알려줬고 B씨는 개인보험을 이용해 수리비를 메웠다.

서울지역 일부 마을버스 업체들이 기사들에게 사고 처리비와 면책금을 전가하는 등 횡포를 일삼고 있어 관리 감독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일부 마을버스업체들이 사고 발생때 사고비용을 보험으로 처리하면 회사의 보험료가 인상되는 점 때문에 아예 신고를 못하게 하고 업체들이 운전자에게 현금으로 부담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수리비가 많이 나와 일시 변제가 어려우면 '할부'라는 명목으로 수개월간 월급에서 떼어가는 일도 있다.

또한 업체들은 사고발생 시 수리비용을 보전받기 위해 보험료처럼 미리 내야 하는 면책금을 운전자들에게 부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버스 기사들은 할 수 없이 회사의 제안에 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2년쯤 마을버스 기사로 일하다 퇴직한 한 운전자는 "마을버스 기사들 상당수는 이곳에서 경력을 쌓아 시내버스로 이직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회사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 "회사가 기사들의 처지를 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고이력을 숨기고 비용을 적게 들이려는 기사들이 직접 사고 수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을버스에서 일했던 또 다른 운전자는 "사고가 클수록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오히려 큰 고장을 직접 처리하는 일이 있는데 이런 경우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업체가 불법에 앞장서기도 한다. 높은 수리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기사에게 본인이 가입한 승용차 보험의 대물 변제 특약을 이용하는 방법을 제시해 버스 수리비를 충당하는 업체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와 자치구는 서로 감독권한이 없다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 현재 마을버스의 노선 결정과 보조금 지급은 서울시가 맡고 있고, 인허가·정류장 변경 등 운영과 업체 관리는 자치구가 담당하고 있다. 해당 지방노동청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근로감독에 나서야 하지만 이 또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마을버스 노조 관계자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서울시와 구청, 노동청에 수차례 촉구했지만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마을버스업계가 시내버스처럼 준공영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감독권한이 없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시에는 138개의 마을버스업체가 있고 이중 보조금 지급이 필요한 업체는 34개 수준이다. 준공영제를 실시할 경우 지자체가 관리감독을 할 수 있지만 현재로선 마을버스 회사들을 제어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자치구는 등록업무 및 정류장 변경 등 일반적인 관리감독 역할에 한정돼 있고 노선 결정이나 재정 지원 등 권한이 없어 적극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시와 자치구, 노동청은 기사들의 '신고'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선제적인 관리감독이 어려운 조건에서 이유 없이 업체를 조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 마을버스 운전자는 "마을버스 기사 대부분은 퇴직한 고령 운전자이거나 취직만 하게 해달라는 어려운 사람들"이라며 "일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이들에게 '신고하라'는 말만 되풀이 하는 것은 도울 생각이 없다는 말과 똑같다"며 "제도 개선과 업체에 대한 감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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