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주목받는 지자체·정책 |서울 강동구 동물복지

'동물복지' 새로운 행정영역 만들어

2017-08-10 10:08:17 게재

길고양이 밥 챙기고 애완견은 행동교정

책임성 키우고 동물유기·학대 인식 바꿔

"길고양이 민원이 많아서 고민하고 있었어요. (개체수를 조절하는) 중성화사업은 행정에서 할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있거든요. 서울시 기준에 맞춰 예산을 편성하니까 단체장 의지가 필요 없는 거죠."

이해식 서울 강동구청장은 "자체 예산을 (추가)투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마침 강 풀 작가가 사료그릇 제작비와 사료 구입비 1500만원을 기부하겠다고 제안해왔다"고 돌이켰다. '쓰레기봉투를 뜯는다'는 민원이 대표적인 만큼 배고픔을 해결하면 주민들 불만이 줄지 않을까 판단했다. 2013년 사료 6톤과 전용 그릇 50개로 시작한 '길고양이 급식소'는 인근 자치구는 물론 서울시와 국회까지 확산됐고 '반려동물 1000만 시대'에 맞춰 동물복지라는 새로운 행정영역이 만들어졌다. 새정부 들어 중앙정부에도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복지팀이 신설됐고 문재인 대통령은 유기견을 청와대 반려견으로 입양했다.

강동구는 동물복지와 생명존중의식 확산을 위해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일자산 잔디광장에서 열린 '반려동물 사랑축제 - 또 하나의 가족' 행사에서 이해식 구청장이 애견인들과 한 자리에 모였다. 사진 강동구 제공


급식소 운영으로 주민간 갈등 줄어 = "주민들 반응을 살필 수 있겠다 싶었죠. 시범사업을 해보고 반응이 긍정적이면 예산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으니까."

구청을 비롯해 18개 동주민센터와 주택가 공원 등지에 설치한 급식소는 깔끔하지만 단출하다. 자그마한 고양이집 안에 사료그릇과 물그릇을 놓고 지붕에는 사업 취지를 안내하는 글을 적었다. 음식물쓰레기를 뒤지는 일을 줄일 수 있고 중성화사업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내용과 동물학대 관련 법령을 담았다. 무엇보다 공공청사와 달리 일상관리가 어려운 골목길 공원 급식소 운영을 고양이를 기르는 주민(캣맘)들이 도맡았다. 이해식 구청장은 "물과 사료, 급식소와 주변 청소를 하고 중고생들도 정기적으로 자원봉사를 한다"며 "모범적인 민관 협력사업"이라고 자신했다.

기업과 단체에서 사료 후원이 잇따랐고 자원봉사자들이 급식소 관리를 자처하고 나섰다. 강동구는 2013년 말 '동물복지·생명존중문화 조성 조례'를 제정하고 지난해에는 동물복지팀을 신설, 제도적 기반을 다졌다. 올해는 재건축 시공사 후원으로 구청 별관 옥상에 길고양이 쉼터를 조성해 다치거나 버려진 고양이를 보호, 입양을 연계했다.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 판에 웬 동물복지냐'는 비판은 사업 정착과 함께 수그러들었다. 급식소를 시작한 다음 해인 2014년 월 평균 6.5건이던 길고양이 민원은 지난해 1.7건으로 대폭 줄었다. 전체 동물 민원도 한해 512건에서 204건으로 덩달아 감소했다. 이 구청장은 "주민들이 앞장서 다른 공공기관에 급식소 확대를 요구했고 홍보도 한다"며 "길고양이 문제 해결 과정에서 주민들 사이에 동물복지가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버려진 동물을 돌보는 동시에 다른 한 축으로는 주민 인식 개선에 나섰다. 어려서부터 동물에 대한 이해를 키우고 생명존중 문화를 배우도록 초등학교 3~4학년 대상 '찾아가는 동물학교'를 시작했고 반려동물로 인한 이웃간 갈등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문제 행동을 교정하는 '강동서당'을 개설했다. 동물 블로그 '강동구 옥탑방 이야기'를 비롯해 유기동물 입양 홍보,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문화축제, 유기견 돌보는 초·중·고생 봉사단 등 공공과 민간이 더불어 동물복지 선도 지자체라는 자부심을 키워가고 있다. 이 구청장은 "반려동물을 책임 있게 키우고 주변을 배려하는 예절 교육이 필요하다"며 "전반적으로는 동물 유기·학대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단지 길고양이 삶터 옮기기 = 재건축을 앞둔 둔촌주공아파트단지 주민들이 이주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5930가구에 37년간 기대 살던 길고양이들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삶터를 찾도록 돕는 일이다. 구와 서울시 관련 부서를 비롯해 동물보호단체와 반려동물을 키우는 주민들이 뜻을 모아 '생태적 이주'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버려진 동물을 위한 소규모 동물보호소, 반려동물 운동과 놀이를 위한 공공 놀이터도 구상 중이다. 이해식 구청장은 "동물복지는 동물과 사람, 동물을 키우는 사람과 키우지 않는 사람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라며 "동물을 매개로 한 생명존중의식 확산, 공동체 활성화"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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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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