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론·폐지론 나온 평화교섭본부
'현정부 6자회담 구상'에 기사회생 … "본부장, 경력 징검다리 그쳐선 안돼"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에 대한 문제제기는 부처 내부는 물론 대선시기 문재인후보 캠프에서도 꾸준히 있었다.
2006년 3월 출범 이래 7명째 평화교섭본부장을 맞았지만, 북핵 6자회담이나 수석대표 접촉, 남북 비핵화협상 등 북핵외교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경험하고 추진한 본부장은 단 3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천영우 김숙 위성락 본부장의 후임자들은 본부장을 지낸 뒤 주요국 대사나 외교부 1차관 등 외교안보 라인 고위직으로 영전했지만 상황을 돌파하고 변화를 끌어내려는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북핵외교의 수장 역할을 하라고 조직을 신설해 놓았지만, 대부분 본부장들이 자리 값을 하지 못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이 그런 역할을 할 여건이 됐느냐는 문제도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뭔가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생각과 입장을 가진 경우가 드물었다"고 비판했다. 이런 탓에 외교부 북미나 북핵 라인이 아닌 쪽에서는 "아무 것도 돌아가는 일이 없다. 본부장들은 일보다는 자신의 경력관리에만 신경을 쓴다. 이런 조직을 왜 유지해야 하느냐"는 지적이 여러차례 나오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지난 대선 시기 문재인캠프에서는 이런 문제 때문에 한반도평화교섭본부 폐지를 검토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6자회담을 북핵외교 해결의 축으로 삼는다는 방향 때문에 폐지론을 접었다"고 설명했다.
과거 이명박·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이 북한 붕괴론을 전제로 한 강경기조였다는 점 때문에 평화교섭본부장의 입지가 좁았다는 반론도 있다. 외교부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대화를 위한 대화는 안한다'고 못박고, 어떤 경우는 본부장 자리를 1년도 못 채웠는데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냐"고 했다.
그러나 다른 고위 당국자는 "평화교섭본부는 한해 50억원 이상 예산을 배정해 그간 수백억원의 세금이 들어간 조직"이라며 "상황 탓만을 할 게 아니다. 본인의 관점과 생각이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라고 반박했다. 그저 대세를 따라가려는 인물이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얼토당토 않는 구상으로 헛발질을 하는 사람이 본부장일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이지, 진지한 자기 아이디어를 내놓고 뭔가 일을 만들어보려는 사람이라면 상황을 헤쳐 나간다는 이야기다.
대표적 사례로 회자되는 게 세 번째 본부장을 맡았던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다. 위 본부장은 2011년 7월22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우리측 6자회담 수석대표 자격으로 북한 리용호 외무부상을 만나 '비핵화협상'을 벌였다. 남북이 비핵화를 논제로 협상을 한 것은 최초였고, 남북 수석대표간 만남도 2008년 12월 이후 2년 7개월 만이었다.
이는 위 본부장이 2009년 2월 취임 직후부터 '6자회담 3단계 재개' 구상을 세우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였다. 그해 말 미국 정부가 보즈워스 주한미국대사를 평양으로 보내 북미접촉을 진행했지만 결렬됐고, 2010년 4월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해 한반도 정세는 크게 악화됐다. 하지만 위 본부장은 이를 계기로 상황을 반전시키려 애썼다. 천안함을 명분으로 미국에게 북미접촉보다 남북접촉을 선행하는 방식으로 북한을 6자회담으로 끌어내자고 설득해 동의를 받아냈다. 하지만 당시 이명박정부가 남북대화에 부정적이라 내부 진통이 적지 않았다. 우리 정부와 치열한 토론과 협의를 벌이고, 미국정부의 독촉이 지원군 노릇을 해 2011년 남북협상을 성사시켰다. 뒤이어 미북협상-남북협상-미북협상이 번갈아 열려 분위기가 무르익은 덕에 2012년 2월에 '2.29 북미합의'가 이뤄졌다.
앞의 고위 당국자는 "평화교섭본부장 임기가 10개월여밖에 안되는 사람도 있었다"면서 "이런 식이면 본부장 자리가 경력쌓기 징검다리 밖에 안된다. 막중한 임무를 놓고 잠깐 지나가는 자리라 된다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본부장 자리가 진지하게 일 중심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고 되도록 3년 이상 오래 머물게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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