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1세기 지속된 '호황-불황 사이클' 초월했나

2017-09-07 10:37:25 게재

FT '배럴당 100달러 회복' vs '수년간 50달러대 유지' 분석

전 세계 석유시장은 두 파로 갈렸다. 영국 파이낸설타임스(FT)의 6일자 보도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결국 오를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한 축이다. 지난 100년 이상 석유시장을 규정해온 '호황-불황' 패턴이 곧 재연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대편에 선 이들은 이제 유가가 과거의 역사를 배반할 것이라고 믿는다. 현재의 낮은 유가가 지속될 것이며 설령 오른다 해도 박스권 등락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지난 3년 동안 국제유가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셰일석유가 시장에 본격 등장하면서 가속화된 흐름이다. 오랜 기간 저유가를 유지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승리하는 듯 보이는 상황이다. 올해 내내 배럴당 50달러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다. 원유선물 가격은 그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서 정체중이다. 유가 회복을 점치는 시장참가자들이 적은 탓이다.

양측의 논쟁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역시 미국 셰일석유 업계다.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지 10년이 채 안됐다. 그런데도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5%대를 기록중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 산하기구인 '에너지임팩트'의 제이미 웹스터는 "국제유가가 계속 낮은 상태로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놀랍다"라며 "1860년대 이래 번갈아 지속됐던 호불황 사이클을 고려하면 지난 3년간 지속됐던 저유가 흐름은 매우 큰 변화다. 석유시장 내 치열한 경쟁 덕분에 유가의 안정성이 달성된다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2014년 시작된 유가침체 때, 전 세계는 미국의 셰일석유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오늘날까지도 셰일석유는 헤지펀드와 거대 석유기업,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에게 낯선 영역이다. 심지어 셰일석유 생산업자들도 미래를 점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국제유가는 산유국과 거대 석유기업의 수익을 규정한다. 이는 석유공급 안정성뿐 아니라 미래 석유수요 증가에 대비한 설비투자에 큰 영향을 미친다.

유가가 현재 수준의 박스권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자신하는 측에서는 미국 셰일석유 업계의 능력과 민첩성에 높은 점수를 준다. 반대편에서는 유가 침체 이래 산유국과 석유 대기업의 투자가 급감했기 때문에 향후 석유수요가 늘면 유가가 큰 폭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컬럼비아대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 국장인 제이슨 보도프는 "셰일석유 업계는 예상치 못한 회복탄력성을 자랑하며 계속 시장을 놀래키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는 셰일혁명의 초반부에 있을 뿐이며 셰일 매장량의 규모와 지속성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석유생산량은 하루 9800만배럴 정도다. 이 가운데 미국의 비중은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셰일석유 560만배럴을 포함해 920만배럴이다.

유가 침체로 미래 석유생산에 대한 투자가 크게 줄어들면서 OPEC의 사우디나 거대 석유기업들은 '조만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전통적 원유지대에서 추가 개발승인을 받는 양은 연 평균 150억배럴이었다. 이 수치는 2015년 80억배럴, 2016년 55억배럴로 줄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은 "올해는 80억~90억배럴로 이전 두 해보다는 늘어날 전망이지만, 2020년 이후 석유공급은 수요를 따라가기 힘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전 세계 석유수요는 2022년까지 매년 120만배럴(1일 기준)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IEA 전망은 점차 생산량이 줄어드는 기존 유전지대뿐 아니라 셰일 등 비전통적 유전지대에서 늘어날 예측량까지 포함한 것이다.

IEA 장기원유공급 분석가인 팀 골드는 "앞으로 미국 셰일석유 공급량이 현재보다 상당히 늘어날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이후 대규모 증산은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메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헤지펀드 매니저인 피에르 안두랑은 이같은 견해에 동의하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을 회복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반면 유가가 박스권에 묶일 것이라고 자신하는 측에서는 "공급 불일치가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은 과장됐다"며 "그들은 셰일석유가 기존 업계의 관념을 반전시키는 거대한 흐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반박한다.

씨티그룹 분석가 에드 모스는 "석유시장은 역대 최고의 경쟁시장이 됐다"며 "미국 셰일석유업계가 과점의 전통을 자랑하는 석유시장을 무너뜨렸다"고 주장했다. 시장의 수급균형을 결정하는 힘이 기존 OPEC에서 미국 셰일석유 업계로 이동했다는 것.

모스는 "셰일석유를 폄하하는 측에서는 지질층에서부터 기술까지 셰일의 모든 잠재력을 과소평가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향후 수년 동안 국제유가는 배럴당 45~65달러 선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셰일석유 생산업자들은 그동안 비용을 1/3 이상 줄여왔다. 셰일의 시대를 이끌기 위해 보다 효울적이고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셰일석유 비용이 다시 오르고 있지만 이는 채굴 완료단계에 속한 셰일지대에 한정된 것이다. 개발초기나 새롭게 발견된 셰일지대의 경우 생산성이 급격히 늘고 있다.

한편 미국 셰일석유 생산의 정점이 언제냐는 예측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영국 소재 원유브로커 기업인 PVM의 애널리스트들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55~60달러에서 움직인다고 가정할 때 2025년 셰일석유 생산량이 현 수준의 2배가 될 것이라는 점은 대다수 분석가들이 동의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오랜 기간 저유가가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미국 셰일석유와 캐나다 샌드오일, 브라질 심해유전 석유 등 비전통적 지대에서의 공급이 늘어나는 때에도 OPEC 회원국과 기타 산유국들이 감산을 유지할 의사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결국 이들도 증산에 나설 수밖에 없으며 이는 유가를 끌어내리는 세력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고유가 회복 측은 '신흥국 수요가 왕성이 늘고 있기 때문에 유가가 오른다'는 점에 방점을 두지만, 저유가 지속 측은 '기후변화 정책과 전기를 이용하는 교통수단의 확산, 풍력·태양열 등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등이 석유소비를 줄이는 힘이 될 것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국제유가가 곧 반등할 것이라 주장했던 이들은 미국 셰일석유 업계의 뛰어난 시장 적응력을 고려하지 못했다. 하지만 에너지자문사 라피단그룹의 밥 맥낼리는 "아직까지 셰일석유업계가 국제유가의 바닥과 천장을 규정하는 '스윙프로듀서'로 우뚝선 것은 아니다"라며 "유일하게 확실할 것은 향후 석유시장에 극심한 변동성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4년 전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영원할 것이라는 주장처럼, 현재의 50~60달러대가 계속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 역시 잘못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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