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종화 경찰대 위기협상연구센터 교수

"해외 인질납치 전문컨설팅 필요”

2017-10-23 11:01:11 게재

한국 위기협상 불모지

내달 컨설팅사 설립

이종화(54) 경찰대 위기협상연구센터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인질납치 협상 전문가의 길을 처음으로 내딛은 사람이다. 그는 오는 11월부터 ‘크라이시스 네고’라는 위기협상 전문 컨설팅사를 만들어 다시 새로운 길 개척에 나선다.

“외교부 통계를 보면 해외에서 한국 사람을 납치하거나 인질로 삼는 예가 점점 늘고 있어요. 지난해만 해도 113건이나 되고요. 보고된 범죄만 이 정도니까 실제로는 더 많이 일어난다고 봐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이에 대해 제대로 된 컨설팅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곳이 없는 실정입니다.”

해외 납치의 경우 대사관 등에 파견 가 있는 경찰주재관이 처리하게 되지만 주재관이 없는 경우도 있고, 주재관이 있더라도 이 사건에만 집중할 수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컨설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건이 발생하면 외국 회사에 컨설팅을 의뢰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교수가 위기협상 전문컨설팅사를 설립하게 된 이유는 이런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기업이나 정부도 위험한 나라에 사람을 파견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납치 등의 위험이 많아지고 있는데 외국컨설팅사에만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거든요. 비용도 비쌀 수밖에 없고, 언어소통의 장벽도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토종 컨설팅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교수가 인질협상 전문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2005년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위기협상 교육을 받으면서였다.

경찰청 파견으로 교육을 이수한 이 교수는 “협상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구체적 사례를 들으니 우리나라 경찰에도 도입할 만한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후 2009년 뉴욕경찰(NYPD)에서 위기 협상 관련한 전문 교육과 프랑스 경찰특공대에서 주관한 ‘인질구출훈련과정’ 등을 받은 후 같은 해 경찰대에 위기협상과정을 개설해 본격적으로 연구 및 교육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도 협상이라는 개념이 있기는 했지만 주로 대테러용으로만 활용됐거든요. 그런데 실제로는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자살시도 등 일반 경찰 수사에서도 위기상황이 많이 발생하고 이 때 가장 필요한 능력이 협상능력입니다. 경찰관들에게 협상에 필요한 소통기술 등을 교육하고, 위기현장에 출동해 실제 협상을 하면서 실무 경험을 쌓았습니다.”

범죄자와 마주하고 대화를 나눠야 하는 직업인만큼 감수해야 할 위험 수위도 높다.

지난 2014년 8월 자동차를 탄 채 충남 아산시청으로 돌진한 농민과 협상을 진행했을 때에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이 농민은 자동차에 가득 부탄가스를 실어놓은 데다 휘발유를 주변에 붓고 한 손에는 라이터를 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협상을 진행할 때에는 고도로 집중을 하기 때문에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잘 깨닫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 때도 그 분하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위험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죠. 그런데 나와서 들어 보니 까딱하다가는 폭발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지난해 10월 선박 동방자이언트 2호가 해적에게 납치돼 필리핀까지 가서 협상을 진행한 경험도 있다.

무장세력의 본거지로 들어가 담판을 진행해야 할 상황이었던 만큼 위험도도 높았지만 다행히 성과를 거둬 당시 납치됐던 선장은 3개월 만에 석방됐다.

이 교수는 “경찰 공무원으로서 그동안 쌓았던 전문적인 경험과 지식을 좀 더 자유롭게 서비스하고 싶다”면서 “위기협상 분야는 우리나라에선 불모지나 마찬가지인데 새로운 시장을 열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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