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인사 '오리무중'

2017-11-07 10:48:40 게재

모피아 논란에 기류변화

'금감원 방치론' 거론도

채용비리에 휩싸인 금융감독원이 인적쇄신을 단행하기로 했지만 수석부원장 등 부원장급 인사가 늦어지면서 현 체제가 상당기간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생각 잠긴 최흥식 금감원장│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23일 오전 국회 본청 귀빈식당에서 열린 가계부채 종합대책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 수석부원장에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이해선 한국증권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의 인선이 불투명해지면서 청와대가 적임자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중순쯤 이 위원장과 유광열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을 복수로 청와대에 올렸다. 이들에 대한 인사검증이 진행 중이었지만 금감원 채용비리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모피아(재무관료와 마피아 합성어) 출신이 금감원 수석부원장으로 가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형성됐다.

전임 서태종 수석부원장이 채용비리 의혹에 연루돼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있고 청탁자로 의심을 받고 있는 인물도 금감원 수석부원장을 지냈다. 관련자들이 실형 선고를 받은 금감원의 로스쿨 변호사 채용비리는 최수현 전 금감원장의 지시 의혹이 짙은 사건이다. 최 전 원장도 금감원 수석부원장을 거친 뒤 원장에 임명됐다.

금감원 노동조합은 2일 "채용비리 중심에 모피아가 있다"며 "차기 수석부원장에서 모피아 출신을 배제해야 한다"고 성명을 냈다. 노조는 "금융공기업과 정부부처 고위직을 장악한 모피아의 청탁을 모피아 출신 금감원 수석부원장이 거부하기 어렵다"며 "모피아 출신이 수석부원장 자리로 인사권을 장악하면서 내부에서 이들의 전횡을 막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청와대 내부에서는 '재무 관료 출신들이 금융권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회전문 인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금융위 고위관료 출신인 이 위원장과 현재 금융위 1급 공무원인 유 위원이 배제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하고 구체적으로 후보 물망에 오르는 유력 인사가 없어 금감원 인사 시기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후문이다. 은행담당 부원장에는 양현근 한국증권금융 부사장(전 금감원 부원장보)과 이석근 신한은행 상임감사위원(전 금감원 부원장보)이 경합을 벌이고 있고 시장담당(증권·공시) 부원장에는 원승연 명지대 교수와 고동원 성균관대 교수가 물망에 오르고 있지만 일부 인사는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부사장이나 이 상임감사위원이 부원장에 임명되면 금감원 출범 이후 처음으로 금감원 임원 출신이 그만둔 후 복귀하는 경우다.

금감원 부원장 인사가 '오리무중'에 빠지면서 최흥식 금감원장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취임 후 조직 쇄신과 구상했던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인사에 막혀 업무추진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인사를 결정할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형국이다.

현재 임원들은 이미 전원 사퇴를 통보받았기 때문에 주요한 의사결정은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금감원의 한 직원은 "곧 물러날 임원들에게 관련 사안을 책임져야 하는 결재를 올리기 어렵고 임원들이 결재하는 것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금감원 방치론'까지 나오고 있다. 정권초기부터 계속돼 온 '금융홀대론'과 같은 맥락이다. 만신창이가 됐지만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감독·검사할 금감원이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장·단기적으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금융회사에 대한 징계를 결정하는 제재심의위원회는 지난 9월 14일 열린 이후 6주간 진행이 안되고 있다. 제재심의위원장은 금감원 수석부원장이 맡는데 현재 공석이기 때문이다.

금융권과 금감원 일각에서는 현행법상 부원장은 금융위가 임명하지만 부원장보의 경우 임명권자가 금감원장인만큼 청와대의 인사검증 등을 거칠 필요가 있느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금감원장이 임명하고 문제가 생기면 인사권자인 금감원장이 책임지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9명이나 되는 부원장보에 대한 청와대의 결정을 기다리다보면 늘 인사가 늦어진다"며 "부원장 인사가 늦어진다면 부원장보 인사를 먼저 단행해 조직이 다시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인사가 늦어지는 것과 관련해 청와대 내부의 특정 세력간 갈등관계가 작용하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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