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루마니아, 유럽의 IT 허브로

2017-11-14 10:53:44 게재
소설 '드라큘라'로 알려진 루마니아에 1857년 세계 최초로 정유 공장이 세워져 등유를 생산하게 된다. 당시 신생 독립국의 수도 부카레스트에 세계 최초로 설치된 등유 가로등은 음산했던 거리를 환하게 밝혀주었다. 그 이후 흑해 연안의 비옥한 흑토 지대에 기계화 영농이 도입되면서 곡물생산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나 루마니아는 유럽의 빵 공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2차대전 패전 직후 공산화가 되면서 루마니아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공산 루마니아를 장기 집권한 차우셰스쿠는 네 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하면서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심취하여 개인숭배와 독재체제를 더욱 강화했다. 그러던 그도 1980년대 말 중동구권에 불어닥친 민주화 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루마니아는 체제전환 초기에는 중화학 공업의 경쟁력 상실과 농업 생산성 저하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2007년 유럽연합 가입을 계기로 회생의 전기를 맞게 된다. 경제 회복의 견인차가 된 것은 유럽연합의 지원과 이에 부응한 루마니아의 IT 및 자동차 연관 산업 분야에서의 적극적인 외국투자 유치였다.

루마니아 민족 특유의 개방성과 관용성

현재 외국투자 기업들이 20만여개 이상 진출해 수출의 70%, 수입의 60%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IT 분야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세계 유수의 ICT 회사들이 대다수 진출하고 있으며, 인터넷 속도가 세계 5위에 달할 정도로 IT 생태계가 잘 갖추어져 있다.

루마니아 IT 산업의 원동력은 무엇보다도 풍부하고 우수한 IT 인력이다. 이들은 수학과 과학 기초가 탄탄하고 여러 나라 언어에 능통하다. 라틴 민족인 루마니아가 19세기 국가수립 과정에서 수학과 과학이 발달했던 프랑스의 학제를 도입한 것이 기초과학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 여러 언어에 능통한 것은 루마니아 민족 특유의 개방성과 관용성에 근거한 것이다.

의사나 변호사보다 보수가 좋은 IT 전공자들은 대학 때부터 주요 IT 기업에 채용될 정도로 인기가 있다. 최근 IT 분야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거의 모든 대학들이 IT 관련 학부 정원을 대폭 증원하고 있다. IT 부문에는 15만여명이 종사하고 있는데 중동유럽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농업 인구의 10%에 불과하지만 농업과 비슷하게 전체 GDP의 6%를 차지한다. IT 분야는 2025년까지 25만여명을 고용하면서 GDP의 12%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IT 생태계도 다원화되고 있는데, 초기 외주형 소프트웨어와 보안 솔루션에서 이제는 R&D와 스타트업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첨단 IT 오피스가 들어서고 있는 수도 부카레스트는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나아가 루마니아는 유럽의 IT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유럽연합 내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OECD 가입이 가시화되고 있는 루마니아는 향후 10년 내 유럽연합 내 6위의 경제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루마니아 정부는 지속적인 개혁과 우수한 인재 양성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과거 공산정권 때부터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부정부패 해소를 위해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 회생 동력으로 IT 분야 활용 가능

과거 중동 유럽의 대표적 친북 공산국가였던 루마니아는 이처럼 체제 전환에 성공하여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서고 있다. 이제는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핵개발을 고수하면서 극심한 경제난에 처해 있는 북한이 루마니아의 성공 사례를 배워야 할 때이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루마니아의 전문가에 따르면, 북한은 IT 인적자원에서 잠재력이 크다고 한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로 나서면 그 반대급부로 국제사회의 지원이 수반될 것이다. 루마니아에서 보듯이 IT 분야도 북한의 경제 회생 동력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김은중 주루마니아 한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