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의 연준' 어떤 모습일까

2017-11-16 11:06:36 게재

벨기에 싱크탱크 '브뤼겔'

세계적 석학들 진단 소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롬 파월을 차기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으로 임명했다. 이는 정파에 관계없이 현직 의장을 연임시킨다 전례를 깬 것이다. 또 경제학 전공자가 아닌 이를 의장으로 올리는 파격을 둔 것이다. 세계적 석학들은 파월이 이끌 연준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벨기에 소재 국제적 싱크탱크인 '브뤼겔'이 15일 세계적 석학의 진단을 모았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프로젝트신디케이트(PS)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될 단독 결정을 내렸다"며 "금리정책 연속성, 보다 단순하고 간소화된 규제정책을 예고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로고프 교수에 따르면 파월 차기 의장은 내년 2월 임기 시작부터 전례없는 도전과제에 맞닥뜨릴 것이다. 현재의 증시는 1920년대 대공황 직전보다 더 위험하다는 분석이 많다. 또 비정상적으로 낮은 금리 때문에 투자자들은 수익을 찾으려 더욱 모험을 감행하려 한다.

동시에 미국과 글로벌 경제가 강한 성장세에 있지만,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는 통화정책 정상화를 어렵게 하는 요소다. 로고프는 "경제주기에 따라 조만간 경제침체는 불가피하다"며 "현재의 상황을 보면 침체기에 금리를 인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파월 의장의 연준이 다뤄야 할 3가지 상황을 거론했다. 첫째 향후 경제침체를 막기 위한 통화정책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 둘째 2010년 금융규제와 관련, 도드-프랭크 개혁법을 준수하는 비용을 어떻게 낮출 것인지, 셋째 연준 독립성에 대한 대통령의 잠재적 위협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PS 기고문에서 "연준이 정상적인 통화정책으로 복귀해야 하는 때에, 트럼프 대통령이 비경제학자를 연준 의장으로 선택했다"고 지적했다. 금리인상이 시장에 충격을 일으킬 수 있고, 부풀어올랐던 자산가격이 큰 폭의 조정과정을 겪을 수 있다. 많은 이들은 향후 5년 동안 심각한 침체를 예견하고 있다. 연준의 통화정책 도구는 지난 10년간 크게 확장돼 저금리와 부풀어오른 자산을 유산으로 남겼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규모 감세안까지 통과시킨다면, 정부 부채는 크게 늘어나게 된다. 이런 상황은 가장 노련하다고 평가받는 경제학자에게도 심각한 도전과제라는 게 스티글리츠의 진단이다.

그동안 '연준은 언제나 월가에 포섭됐다'는 인식이 있었다.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 재임시에 특히 그랬다. 대공황 이후 70여년 만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유다. 전방위적인 정부의 개입으로 가까스로 완화됐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10년 전 무슨 일이 벌어졌던지 망각한 듯하다"며 "그게 아니라면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2010년 마련된 도드-프랭크 개혁법안을 무력화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시도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스캇 섬너 벤틀리대 교수 역시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트럼프의 파월 지명엔 몇 가지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전 4명의 연준 의장들은 모두 경제학자였다. 통화정책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다. 섬너 교수는 "연준을 책임지는 자리에 변호사인 파월을 앉힌 것은 거칠게 비유하면 대법원장에 경제학자를 지명한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통화정책은 금리를 조정하는 것 이상의 임무다. 중앙은행을 이끄는 자리에 고도의 자질을 갖춘 전문가를 앉혀야 하는 이유다. 그는 "심지어 상당수 경제학자들조차 금리와 통화정책 사이의 관계를 헷갈려 한다"며 "비경제학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지적했다. 마지막 비경제학자 출신 연준 의장은 윌리엄 밀러(1978~79년)였다. 그는 치솟는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결국 1년짜리 연준 의장에 그쳐야 했다.

섬너 교수는 파월 차기 의장이 거시경제 안정성뿐 아니라 금융시장의 과열을 막는 데도 연준이 개입해야 한다고 믿는 데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에 따르면 연준은 1929년 증시의 거품을 막기 위해 통화긴축에 나섰다. 하지만 실물경제가 대공황으로 빠져드는 결과를 낳았다. 섬너 교수는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거시경제 환경은 자연스럽게 금융시스템 안정을 이끌어낸다"며 "따라서 금융시장의 과열은 통화정책 도구보다는 행정부의 규제를 통해 다루는 게 훨씬 낫다"고 주장했다.

팀 듀이 오레곤대 교수는 블룸버그 기고문에서 "차기 연준 의장은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경제와 싸워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경제성장 보폭은 연준의 장기 예상치인 1.8%보다 높다. 연준은 미국 경제가 완전고용 상황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3%대 성장 보폭이 지속되면 기업들이 설비능력을 지나치게 확대시켜 과도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만들 수 있다. 결국 이런 상황을 다루려면 연준은 긴축 정책을 계속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내년말까지 현 수준보다 1%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게 듀이 교수의 예상이다.

그는 "차기 연준 의장은 경제가 더욱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드는 전환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려면 성장둔화의 보폭을 측정하는 게 커다란 과제다. 경기확장의 초기 국면엔 대개의 경제수치가 강한 성장세를 알린다. 하지만 경기확장이 정점에 올라 둔화되면 경제수치는 보다 혼란스러워지고 경기후퇴 신호로도 오인될 수 있다. 동시에 저성장 국면으로 전환되면 경제는 부정적 충격과 실제적 경기침체에 보다 취약해진다. 듀이 교수는 "연준이 긴축에서 완화로 정책을 부드럽게 전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렌 허바드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은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파월 임명은 여러가지 의문을 던진다고 지적했다. 의장 지명 외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핵심 연준 이사들 여러명을 임명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연준의 역할과 임무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다. 과거 폴 볼커 의장이 이끌었던 연준은 파괴적인 인플레이션을 길들이는 방법을 보여줬다. 그 후임자인 앨런 그린스펀 재임 동안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촉발하지 않고도 경제가 얼마나 빨리 성장할 수 있는지를 알려줬다. 벤 버냉키의 연준은 금융 불안정성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탐구했다. 재닛 옐런 의장이 이끄는 현재의 연준은, 잠재 GDP 성장과 완전고용이라는 상황과 일치하는 속도로 경제가 확장될 때 이미 과도하게 풀린 통화정책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지를 놓고 방법을 찾고 있다.

허바드 교수는 "과거의 사례를 고려하면 트럼프와 파월이 만들어낼 연준 이사회는 3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며 "첫째 오늘날 경제환경에서 정상적 통화정책이란 어떤 모습인지, 둘째 금융규제에서 연준의 역할은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적대적 정치 환경에서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등"이라고 강조했다.

오스트리아경제학파 뉴스블로그인 '미제스'에서 소셜미디어 마케팅과 미디어를 담당하는 토 비숍은 "트럼프가 워싱턴 기득권의 늪에서 빠져나오겠다고 했지만, 파월을 임명한 걸 보면 다시 워싱턴 기득권의 늪으로 빠지는 걸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원하는 인물, 즉 저금리 선호 인사를 얻었다"며 "게다가 우연인지 아닌지 공화당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비숍은 "연준 공개시장위원회(FOMC)는 통화정책과 관련해 생생하고 진지한 토론을 생산해야 한다"며 "하지만 파월을 연준 의장으로 임명한 걸 보면 연준을 잘 조율되고 합의된 정책을 내놓는 기관으로 유지시킨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 연준의 모습과 관련, 공화당 상하원이 연준을 어떻게 밀어붙일지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라고 지적했다. 특히 하원 금융서비스 위원장 젭 헨살링 의원은 지난 수년 간 "연준은 규정에 기반한 통화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연준 개혁을 요구해왔다.

한편 비숍은 오는 12월 연준이 시장의 예상대로 금리를 인상할지 여부는 의회에 달렸다고 내다봤다. 입법부가 이전의 버릇처럼 예산의 적절성을 나몰라라 하는 방만함을 보인다면, 올해말 또 다른 '재정절벽' 시나리오가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럴 경우 연준은 의회를 핑계삼아 금리인상을 내년으로 넘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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