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신탁사, 최악 상황 고려한 스트레스테스트 실시”

2024-05-07 13:00:02 게재

금감원, 부동산PF 위기에 분기마다 위험분석

‘책준형’ 잔액 24.8조 … 손해배상 우려도 커져

“추가 외부충격 없으면 유동성 위기 가능성 낮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신탁사의 ‘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 PF’(책준형) 규모가 24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시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책준형은 부도 등의 사유로 시공사의 책임준공이 어려워지더라도 부동산신탁사가 대체 시공사를 선정해 책임준공을 제공하는 구조다. 책임준공확약은 책임준공 미이행 시 대주단의 손해에 대한 배상 의무가 발생하기 때문에 PF부실이 커질수록 신탁사의 부담도 증가하게 된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PF부실이 커져도 부동산신탁사의 위험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는 입장이다.

7일 금융당국 관계자는 “부동산신탁사에 대해 매분기마다 스트레스테스트(시나리오에 따른 재무건전성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며 “지난해말 기준 최악의 시장 상황 시나리오를 반영한 분석에서도 14개 부동산신탁사들이 모두 버티는 것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부동산신탁사 14곳에 대해 지난해말 기준 자료를 바탕으로 올해 3월 스트레스테스트를 진행했다. 조만간 올해 1분기 실적을 토대로 또다시 스트레스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다만 부동산신탁사들이 신규 사업을 거의 하지 않고 있어서 지난해말 분석결과가 크게 바뀌지는 않을 전망이다. 금감원은 스트레스테스트 결과 “예상치 못한 외부 충격이 추가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한 부동산신탁사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은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부동산신탁사의 책임준공확약은 대부분 계약서상 대주단의 손해액을 대출원리금 등으로 명시하고 있어서 최근 대주단은 책임준공기한을 경과한 사업장의 대출원리금을 부동산신탁사에 청구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업계에서 처음으로 신한자산신탁의 인천 원창동 물류센터 소송이 시작됐으며 향후 관련 소송이 늘 것으로 보인다.

소송의 쟁점은 부동산신탁사의 책임이 대주단의 실제 손해액에 국한될지, 부동산PF 대출원리금 전체가 될지 여부다.

◆책준형 규모, 부동산신탁사 자기자본 4.5배 = 이달 2일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책준형 잔액규모는 24조8000억원으로 부동산신탁사(14개사) 자기자본 대비 4.5배로 추산되고 있다.

금융계열 부동산 신탁사(8개)의 관련 PF잔액은 19조9000억원으로 자기자본 대비 8.1배로 상당히 높은 익스포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비금융계열 부동산신탁사 6곳은 관련 PF 규모가 4조9000억원(자기자본 대비 1.6배)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익스포저를 보였다.

NICE신용평가가 자료를 보유한 7개사를 기준으로 시공사 책임준공기한을 경과한 사업장 비중은 23%로 나타났으며, 부동산신탁사 책임준공기한마저 경과한 사업장 비중은 8%였다. 이를 전체 14개 신탁사로 추정하면 부동산신탁사 책임준공기한을 경과한 사업장 PF 규모는 1조9000억원(자기자본 대비 35%), 이를 포함해 시공사 책임준공기한을 경과한 사업장 관련 PF 규모는 5조7000억원(자기자본 대비 104%)로 추정됐다.

7개사 기준으로 책준형 시공사는 대부분 중소형 건설사로, 시공능력순위 100위권 밖 건설사 비중이 83.8%를 차지했다. 지난해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시공사는 30%를 넘었고, 부채비율 300%가 넘는 시공사 비중도 20%를 상회했다.

NICE신용평가는 “시공사의 실적 및 재무구조 저하, 유동성 위험이 상승함에 따라 부동산신탁사 책준형 사업장의 시공사 교체 및 책임준공기한 경과 사업장 증가에 유의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고 우려했다.

◆책임준공 위해 고유계정에서 사업비 투입 = 부동산PF 사업장의 공정이 지연되면서 부동산신탁사는 책임준공기한을 맞추기 위해 고유계정으로 추가 사업비를 투입하고 있다. 2022년까지 2%이하 수준이었던 자기자본 대비 책준형 신탁계정대여금(공사 진행을 위해 자기자본을 통해 직접 자금을 대여한 금액) 비율은 지난해말 13.6%까지 상승했다. 신탁계정대여금은 PF대출 보다 후순위여서 손실 위험이 크다.

부동산신탁사의 영업실적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1200억원 가량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KB부동산신탁이 1623억원으로 영업손실 규모가 가장 크고 교보자산신탁(341억원), 우리자산신탁(251억원), 신한자산신탁(43억원) 순이다. 올해 1분기 실적도 밝지 않다. 신규 사업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에서 신탁계정대여금이 늘면서 손실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 금융지주 계열 부동산신탁사 실적이 악화되고 있는 이유는 이들의 책준형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이들 신탁사들은 부동산 경기 호황기때 공격적인 영업으로 책준형을 확대했다.

이 같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의 스트레스테스트에서 신탁사들이 버티는 것으로 나오는 주요 이유는 낮은 부채비율과 지주사들의 지원 여력이 고려됐기 때문이다.

14개 신탁사의 평균 부채비율은 지난해말 기준 52%로 높지 않은 수준이다. KB부동산신탁이 200%로 가장 높고 대한토지신탁(96%), 한국토지신탁(84%), 무궁화신탁(81%) 순이며 나머지 10곳은 50% 미만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비금융 부동산신탁사들이 차입형 토지신탁을 주로 했다면 위험성이 더 큰 책준형은 대부분 금융지주계열 신탁사들이 들어갔다”며 “다만 이들은 지주사 등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해 우리자산신탁과 신한자산신탁은 각각 지주사로부터 유상증자와 대출 방식으로 2000억원 가량의 지원을 받았다.

그는 “상황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고 시장의 걱정도 어느 정도 맞는 얘기”라며 “신평사의 자료 분석에 따른 우려도 잘 알고 있지만, 신평사는 일부 업체의 제한된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반면에 금융당국은 전체 업체의 세세한 자료를 바탕으로 스트레스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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